5월의 뉴욕, 양키 스타디움(Yankee Stadium)에서


뉴욕 양키스의 브롱스 폭격대(Bronx Bombers) 위용 늘 회자돼

본부석 쪽 300달러가 훌쩍 넘고, 내야도 5~70% 정도 가격


영화배우 같은 외모

라트비아의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뉴욕에서 갈라 콘서트


   몇 년 만에 다시 양키 스타디움에 앉았다. 맨해튼의 북쪽 브롱스에 위치한 이 구장은 ‘The National Pastime’이라 불리는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여가용 관람 스포츠인 메이저리그 야구를 대표하는 구장이기도 하다. 한때 양키스의 화려 찬란한 멤버들은 ‘제국’이라는 칭호까지 얹을 정도였으며, 그들의 애칭인 브롱스 폭격대(Bronx Bombers)의 위용은 매년 성적과는 무관하게 어떤 집요하고 성실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양키스와 얽힌 수많은 알레고리와 추억, 영광과 좌절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미국인들의 대중문화 속에서 –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혹은 소설과 희곡에서 반복적으로 되뇌어지고 있는 것이다. 


Yankee Stadium source POPULOUS

edited by kcontents


여하튼, 다시금 양키 스타디움에 오니 역시나 묘한 기분이 앞선다. 우선은 이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고 야구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본부석 쪽은 300달러가 훌쩍 넘고, 내야도 거기의 5~70% 정도 가격이다. 여행객으로 와서 한두 번 기념 삼아 오는 나야 그렇다 치고 도대체 오페라 티켓 만큼이나 비싼 야구경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러오는 이 사람들은 대체 뭔가. 하긴 스파이크 리 감독이 환한 표정으로 사이드라인에 앉아 있는 NBA 뉴욕 닉스의 티켓값은 경우에 따라 몇 백 만원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현장’이 좋은 건 야구나 교향곡 콘서트나 오페라가 모두 같다. 양키 구장에서는 구내매점과 식당마다 대형 스크린을 걸어놓고 TV 중계화면을 보여주는데 당연히 지금 바로 옆에서 펼쳐지는 실제 야구경기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공연예술 또한 그렇지 않던가. 아무리 애를 써봐야 레코딩이나 영상물로 담긴 오페라와 클래식 콘서트는 실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전에는 실제 무대에 못 미쳐서 문제였다 - 가령 음질이 모노였던 시대가 있었고, 클래식 음악 특유의 넓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충분히 담지 못하던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반대로 소리나 영상이 너무 좋아서 문제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많은 콘서트와 오페라가 이미 영상과 음반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당일 날 전혀 들리지 않았던 콘트라베이스의 약음이 들리기도 하고, 실제보다 훨씬 음압이 높게 잡힌 어떤 성악가의 뚜렷한 음성 등이 청각적인 쾌감을 강하게 주기도 한다. 솔직히 기분은 썩 좋지 않다. 그건 모두 첨단의 레코딩 기술이 만들어낸 허상 내지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은 실제 공간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아무리 좋은 오디오를 가져다 놓고 이 소리가 과연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에서 울리는 그 소리와 얼마나 동일한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고민하고 따져봐야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 오디오의 사운드와 극장의 실제 어쿠스틱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다. 마치 우리가 눈으로 즐기는 경치와 렌즈를 통해 투영되는 사진 예술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듯이 말이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라트비아의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는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핫한 소프라노이다.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의 부인이기도 한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뛰어난 외모를 지녔으나 오히려 클로즈업 카메라가 난무하는 이 시대의 첨단 테크놀로지 때문에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는 성악가일 것이다. 


그녀는 표정 연기가 많은 가수가 아니다. 그래서 카메라로 한껏 줌인 한 그녀의 오페라 무대는 왠지 모르게 뻣뻣하고 어색하게 보인다. ‘아, 연기를 못하는 소프라노인가’ 이렇게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제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미세한 표정연기 보다는 전체적인 실루엣 액션이 중심이 된다. 극장에서 보는 그녀는 영상물 속의 오폴라이스보다 몇 배나 더 매력적이고 연기도 뛰어나다.


뉴욕의 이번 갈라 콘서트에서 그녀는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불렀다. 다가올 뉴 시즌 2017/18 시즌 메트의 대표 레퍼토리로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원래는 독일의 최고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커플을 이뤄 세기의 ‘선남선녀 토스카’를 노래할 참이었지만, 이제는 유럽 대륙 바깥으로 나가기 싫다는 카우프만이 갑자기 공연을 캔슬해버렸다. 결국 오폴라이스 그녀만이 무대 위에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게’ 될 것이다.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 실황)


양키 스타디움에 갑자기 삭풍이 불기 시작했다. 먹고 있던 필리치즈 스테이크 박스에 담긴 감자튀김 몇 개가 하늘을 날아 다닌다. 춥고 어수선하다. 그런 날씨에 아랑곳 않고 마운드 위에 선 왕년의 에이스 C.C.사바시아는 무뎌진 자신의 공에 기도하듯 혼을 주입해 던진다. 느린 구속과 시원찮은 회전수의 공은 보는 이를 극도로 불안케 만든다. 놓칠세라 상대팀 토론토의 매서운 타격은 한때 최고 투수였던 이 노장 선수의 영혼까지 붕괴시켜버릴 기세다. 야수들의 본능끼리 일대일로 부딪히는 무시무시한 긴장감이 온 그라운드를 휘감고 돈다. 케이블TV의 야구중계로는 도저히 느낄 수가 없는 ‘타는 목마름’이다. 아, 그래서 이 비싼 돈을 주고 앉아들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양키즈의 야구는 한 편의 오페라였다.


출처 발코니

케이콘텐츠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