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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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2017.05.18

광주민주항쟁 제37주년을 맞는 오늘 광주 망월동 민주열사묘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적으로 울려 퍼지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기념식부터 이 노래를 제창하도록 지시한 데 따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이던 2009년부터 합창 형식으로 불리던 것을 바꾼 조치입니다. 대통령선거를 통해 정권이 진보진영으로 넘겨지면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동안 기념식 참석자들이 합창단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부르지 않거나 자기 마음대로였으나 이제는 모든 참석자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구태여 합창이니, 제창이니 하고 구분해 놓은 자체가 어색합니다. 

합창과 제창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옳으냐 하는 것을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5·18 기념식을 공식 주관하기 시작한 1997년부터 제창으로 불리다가 보수성향인 이명박 정부 들어 합창으로 바뀐 데도 정권의 역학관계가 작용했던 것입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올해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토록 하겠다”는 선거운동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지금껏 5·18 기념식 행사를 주관하면서도 이 노래의 제창을 반대했던 박승춘 보훈처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가치판단 문제라기보다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선택의 문제겠지요.

그렇더라도 이 과정에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극력 반발하는 이유입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이지요. 하지만 지난날 제창이 합창 형식으로 바뀔 때도 똑같은 식이었습니다.
설득과 화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다음에 정권이 다시 바뀌게 될 경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위상도 또 바뀔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이 노래로 인해 과거 정부에서 갈등과 마찰이 빚어졌듯이 앞으로도 논란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권력의 논리’만이 앞세워질 뿐입니다. 

초년병 기자 시절이던 1980년대 중반,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 노래로 시위가 시작했고, 또한 이 노래로 시위가 끝났습니다. 광주민주항쟁의 눈물자국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을 때였지요. 갓 삼십대에 들어섰을 무렵이어서 그랬을까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뿌듯한 공감대에 휩싸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노랫말 자체가 숙연하고도 처절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렇다면, 어째서 이 노래를 두고 지금과 같은 갈등이 생겨난 것일까요. 무엇보다 운동권의 단골 노래가 됐다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대학가 시위에서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에서도 빠지지 않는 노래가 되었으니, 가히 민중가요라고 칭할 만합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로서야 그만큼 처지가 절박하기 때문에 머리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나선 것이겠지만 일반 시민들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시위대의 행렬로 도로 통행이 막히고 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이 불만입니다. 시위의 순수성이 훼손된 데다 갈수록 양상이 과격해짐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시위대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이 노래에 대해서도 덩달아 거리감을 두게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정해 놓고도 그 상징 노래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편협했다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보수진영 인사들 가운데서도 이 노래의 제창에 찬성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5·18관련 단체들도 자기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야 합니다. 항쟁 당시 시민들에 대한 발포 명령자와 헬기 기총소사 책임자가 가려진다면 법규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앞서가는 것입니다. 사회적 합의와 설득을 거친 뒤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우선은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위안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나도양지꽃 (장미과) Waldsteinia ternata

따스한 봄 햇살 받으며 신기(神氣) 서린 검룡소 길을 오르는데 
초록색 이파리 위에 윤택 있고 샛노란 꽃잎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높은 고산지대에서 드물게 피는 나도양지꽃이라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신령스러운 검룡소 물줄기 계곡에서 귀하고 고운 꽃을 만났으니 
커다란 횡재를 한 듯했습니다. 
   
검룡소는 52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한강의 발원지로서
이곳에는 신령스러운 용이 산다고 하여 검룡소(儉龍沼)라 불렀다 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석회암반 지하수가 솟아올라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가
구불구불 파여서 흡사 용이 용틀임을 하는 형상입니다.
주위 암반에 물이끼가 푸르게 자라고 있어 신비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 길에서 만난 꽃입니다.
   
나도양지꽃은 양지꽃과 비슷하면서도 양지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관령, 발왕산, 오대산, 설악산 등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서 주로 자랍니다.
잎이 3출복엽이라서 3~9개로 구성된 양지꽃의 깃꼴겹잎과 크게 다릅니다. 
3출복엽의 작은 잎은 거꾸로 된 달걀모양이고 잎자루가 짧으며 
잎은 상반부에 결각의 톱니가 있고 하반부는 밋밋합니다. 
가운데 끝부분의 잎은 3개로 갈라지고 양쪽 잎은 2개로 갈라집니다.
   
꽃은 5~6월에 피며 양지꽃 모양인데 양지꽃보다는 둥글고, 넓고, 
크기가 더 큰 편이어서 쉽게 구별이 됩니다. 
잎과 잎 사이에서 나온 꽃줄기에 노란색의 꽃이 1~3개씩 달립니다.
잎의 톱니가 가지런한 양지꽃보다 결각이 심하고 수술이 매우 많은 꽃입니다.
  
(2017. 5. 2 태백시 금대봉 검룡소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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