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 전산지원 부서가 있었으면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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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에 전산지원 부서가 있었으면

2017.05.17

날을 잘못 고른 것일까요. 모처럼 찾아간 동네 주민센터가 한산합니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던 젊은 직원이 반색을 하며 맞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는 동안 따뜻한 차를 대접받기도 합니다. 덤으로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얻어듣기도 합니다. 

예전 관공서나 회사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발급받으려면 반드시 동사무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구청까지 찾아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동사무소는 언제나 민원인들로 북적거렸지요. 장시간 기다리다 보면 새치기로 시비가 벌어지고 고함소리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요즘엔 사는 곳과 상관없이 길 가다가도 가까운 주민센터 아무 곳에서나 필요한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이나 여러 공중 장소에 무인 민원서류 발급기계가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예 자기 집에서 개인 컴퓨터로 받을 수 있는 민원서류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주민센터가 크게 붐빌 이유가 없는가 봅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옛날 선비들이 글 쓰는 방에는 으레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가 갖춰져 있었지요. 좋은 붓, 좋은 벼루는 선비들이 가장 아끼는 소장품이자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문방사우가 우리 서재에서 아득히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손 안에 든 컴퓨터, 책상 위 컴퓨터가 온 세상을 연결하고, 사무 처리를 도맡아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편리한 인터넷 세상이지만 불편할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바로 그 인터넷 세상을 열어주는 컴퓨터가 이해할 수 없는 말썽을 부릴 때입니다. 젊은 사람들이라도 함께 살고 있다면 영민한 머리로 손쉽게 고치거나 친구들 도움을 받아서라도 간단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만 사는 경우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명색 ‘컴도사’라는 친구나 아들딸에게 전화를 걸어보아도 우선 용어부터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또 시키는 대로 해보아야 잘 되지 않습니다. 도리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무거운 놈을 들고 서비스센터를 찾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아침상을 물리고 컴퓨터를 켭니다. 일과의 시작이 이렇게 된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우선 메일을 열어봅니다. 어김없이 자유칼럼이 배달되어 있습니다. 기왕이면, 하고 자유칼럼그룹 홈페이지에 들어가 봅니다. 글자를 더 키워서 보는 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연재칼럼 첫머리에 어제 올린 칼럼이 그대로 있습니다. 바로 조금 전 메일로 확인된 오늘 칼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어렵게 인터넷 상단 ‘보기’라는 메뉴에서 ‘새로고침’을 찾아 클릭하니 그제서야 오늘 칼럼이 머리에 나타납니다. 칼럼을 읽기는 했지만 왜 꼭 ‘새로고침’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인지, 바로잡을 방법은 없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컴퓨터는 주인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여행 사이트를 한 번 열었는데 오늘은 저장해 두지도 않은 여행 사이트에 덤으로 호텔 예약, 콘도 안내, 여행 가이드 사이트들이 연달아 켜지고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열어본 가격 비교 사이트도 뜨고, 영문도 모르게 이곳저곳 인텨넷 쇼핑몰 홈페이지가 뜨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켜지는 동안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작업들은 꼼짝 없이 지체되고 맙니다. 

산에서 내려오다 예쁜 꽃이 있어 스마트폰으로 찍었습니다. 자유칼럼그룹 디카코너에 올리고 싶어 로그인을 하고 사진을 첨부해도 도무지 올라가지를 않았습니다. 끙끙거리다 포기하고 며칠 지나 다시 시도하니 웬일로 덜컥 사진이 올라갔습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그러나 사실 이런 예쯤은 애교에 불과합니다. 엊그제부터는 ‘랜섬웨어(Ransomware)라는 악성 프로그램이 전 세계 150여 개 나라에서 번지고 있다며 경고음이 요란합니다, 이에 감염된 공공기관과 기업 홈페이지들은 제 기능을 못해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된답니다. 개인 컴퓨터 역시 인터넷에 잘못 연결해 감염되면 모든 자료가 몽땅 암호화되어 열어볼 수 없게 된답니다. 이를 풀려면 돈을 내라고 협박한다니 백주 날강도가 따로 없습니다. 예방을 위해 인터넷을 차단하고 최신 버전의 백신을 내려 받으라는데 겨우 컴맹을 벗어난 수준으로는 두렵기만 할 뿐 처방 자체가 요령부득입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인터넷, 디지털시대라는데 주민센터에 전산지원 부서가 있으면 어떨까. 온 세상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마당에 집에서 개인 컴퓨터로 민원서류를 발급받는 방법, 컴퓨터 작업 중 발생하는 이런저런 문제를 지도, 상담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컴퓨터 초보의 어리숙한 생각일까요. 주민센터가 원래 주민의 편의와 복지를 위해 서비스하는 곳일 테니 지금 정말 제공해야 할 서비스 가운데 하나가 전산지원이 아닐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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