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카테고리 없음|2017. 5. 14. 11:24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행복해지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해지는 것과 사랑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랑받을 때의 황홀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현실은 사랑받고 행복하고 싶으면서도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출처 e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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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행복해서 두려워’ 같이 지금 행복한 만큼 곧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불길함을 느끼거나 심한 경우 나는 행복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등 즐거움을 금기시 하는 현상(taboo on pleasure)이라고 불린다.


비슷하게 평소에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게 느껴지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 관계가 깊어지기 시작할 즈음 기쁨 못지않게 두려움이 컸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이 날 잘 모르고 그러는 걸 거야, 알게 되면 금방 마음이 변할 거야 등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나쁜 일들부터 상상하고, 결국 아무 관계도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보호하기를 선택했던 적이 있다. 그 결과 나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나쁜 일들을 막겠다며 소중해질 수 있는 관계들을 뻥 차버렸다. 하지만 당시 내게는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따라서 사람들도 곧 마음이 변하고 말 거라는 생각이 기정 사실처럼 느껴졌다.


이런 현상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있다. Paul Gilbert 와 동료들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222명의 대학생들과 59명의 심리상담사(therapist)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타인에게 사랑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타인이 친절하게 대하면 경계심이 느껴지고 당황스럽거나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고,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또한 누군가 친밀감을 표현할 때 나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되면 실망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아무 이유 없이 잘해줄 리 없다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불신도 함께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타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로부터 사랑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도 높은 상관을 보였다는 것이다. 즉 타인으로부터의 따듯함과 친절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따듯한 태도를 취하기 어려워하고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에 대해 너그럽고 따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약해지는 지름길이며 행복함을 느끼게 되면 금방 안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며 나로부터든 남으로부터든 자신을 향한 따듯함 전반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자신이 행복하고 기뻐하길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그 원천이 무엇이든 자신에 대한 따듯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자신이 행복해지는 걸 허락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줄 모르는 사람들은 타인의 사랑 또한 잘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지의 효과가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들보다는 비판적인 사람들에게서 ‘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나머지 조건 없는 친절을 받더라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설마, 진심이 아닐거야. 나의 단점들을 보고나면 마음이 바뀔 거야.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잘 해주는 걸 거야’ 같은 생각들이 빠져들기 때문에 조건 없는 친절을 조건 없는 친절로 받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베베 꼬였을 뿐인데 ‘역시 이 세상은 각박해. 나에게 진심으로 따듯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단정짓고 만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타인의 사랑까지 가짜라고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사람들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있어서 상대가 귤을 던졌는데 내가 그걸 탱자로 받으면 결과는 탱자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굴러들어온 행복을 뻥 차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만약 불행하다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정말 행복과 사랑의 총량 자체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귤을 모두 탱자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스스로에게 행복과 따듯함을 허락하고 있는가?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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