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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만이라도 제대로 바꿉시다.
2017.05.02
첫인상은 5초 안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사람뿐 아닙니다. 기업체와 관공서도 첫인상이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그 첫인상은 빌딩을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경비원이 결정합니다. 경비원이 방문객에게 친절하지 않은 곳은 그 빌딩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도 대체로 그런 성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등·하교 때, 학생들이나 심지어 학부모에게까지 거칠게 대하는 경비원이 있는 학교는 교사들도 대체로 그러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가 학교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그 학교 급식의 질(質)입니다. 대한민국 학교 급식의 끼니당 비용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같은 돈을 내는 급식인데도 학교마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사진은 필자의 두 자녀가 다니거나 다녔던 학교의 급식입니다. 첫째가 다녔던 학교는 일명 ‘신의 급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끼니 질 좋은 급식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둘째가 다니는 학교의 급식은 아무리 봐도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수와 싸구려 냉동식품을 튀겨서 나온 듯한 작은 커틀릿에 역시 싸구려 식재료로 만든 수프, 그리고 너무 조금 배식한 샐러드까지 어느 것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게 생겼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둘째가 다니는 학교의 급식비가 첫째가 다녔던 학교보다 끼니당 몇 백 원 더 비싸다는 것입니다. 학교 급식은 시중의 식당과는 다릅니다. 비싸고 음식 맛도 형편없는 식당을 찾는 손님은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다릅니다. 학생들은 주는 밥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점심 값으로 4,800원을 내고 1,000원어치도 안 되는 밥을 먹게 되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리가 있어 보이는데, 리베이트나 상납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불법행위가 없으면 공권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대놓고 이런 급식을 먹이는 거겠지요. 이러한 비리는 내부자의 제보로 세상에 드러나는데 문제는 공익제보자가 받는 탄압입니다. 충암고 급식비리를 제보한 A 교사, 하나고 입시비리를 알린 전경원 교사가 그 예입니다. 두 분 모두 공익제보 후에 학교재단으로부터 갖은 고초를 겪었으며 그 고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난 2015년, 참여연대가 이분들에게 의인상을 수여했지만 수상 경력이 이분들의 생업을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 결정이 내려져도 조직에서 눈밖에 난 개인이 거대한 조직의 힘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공익제보자를 조직에 해를 끼친 인물로 간주하는 우리사회의 낡은 프레임도 문제입니다. 이러한 낡은 생각들을 빠르게 청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는 기득권에 대한 견제를 통해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을 하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다면 잘못을 목격하고도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오히려 조직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 할수도 있겠지만, 대의를 위해 작은 욕심을 버리고 오히려 위험한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법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대부분이 기득권인 이 나라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 리 없습니다. 심상정 후보가 며칠 전 전통시장에서 한 유세의 일부입니다. “상인들이 ‘장사 때려치울 수도 없고 빚만 늘어가니 고민이다’합니다. 조금만 장사 잘 되어도 임대료가 팍팍 올라갑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씀 들어보셨죠? 국회에서 이렇게 임대료 상한제 같은 것 빨리 제도화해서 함부로 못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각 당이 국민 앞에서는 다 똑같이 약속해 놓고 법안 처리는 안 합니다. 왜 시장에 와서는 약속하고 국회에 가서는 나 몰라라 할까요? 그 국회의원 대다수가 건물주이기 그렇습니다. 단순합니다.” 다시 학교 급식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일년에 몇 번씩 급식비리 사건이 터집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빈도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건이 터지면 식재료 납품업체와 영양사만 입건되고 조사를 받습니다. 몸통은 따로 있는데 꼬리만 자릅니다. 사립학교의 급식비리는 단언컨대 재단의 문제입니다. 비리를 저지른 재단을 퇴출하는 강력한 법안을 만들면 되겠지만, 국회의원 중 사립학교 재단의 자녀를 비롯한 친인척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의 통과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어서 사립재단의 비리에 대한 공정한 처분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그러니 잘못을 해 놓고도 반성하기는커녕 꼬리 자르듯 직원 몇 명 해고하고 공익제보를 한 직원은 갖은 핑계를 대서 해임 통보를 하는 악행을 편안하게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우리를 감히 건드릴 수 있겠어?”라는 듯 교육계에서 갑질을 하고 살고 있는 겁니다. 또한, 이런 학교는 학생들을 대체로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니,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귀하게 여긴다면 애초에 이런 점심을 주지 않겠지요. 그리고 이런 학교의 경우 교사들도 교육에 열성이 있지 않습니다. 열정이 있는 교사라면 이런 비리를 보고 침묵하지 않았겠지요. 더 나아가 이런 학교의 경우 급식비리만 있지 않을 겁니다. 나쁜 짓은 하나를 하면 꼬리를 물고 더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입시 비리, 성적 비리 등등 학생들을 위한 보편적 교육보다 재단의 영달 그리고 궁극적으로 재단 패밀리의 이익을 위한 불법과 편법에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다른 사람이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 같이 아파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는 살기 바빠서 그동안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왔더니 세상이 너무 엉망이 되었습니다. 촛불의 힘이 대통령을 탄핵했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엔 촛불로 어두움을 밝혀야 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공익제보자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신분과 신변을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이를 시행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는 시민의 힘에서 나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제대로 법안을 발의하는지 또는 좋은 법안을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해야만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믿고 쓰는 가전제품이 아닙니다. 가끔씩 물도 줘야 하지만 썩은 가지는 과감하게 쳐내야 하는 농작물 같은 존재입니다. 관심을 가지지 않고 며칠만 방치해도 농사가 엉망이 되듯 정치하는 사람도 시민의 감시가 느슨해지면 딴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학교급식 문제 하나만 근본적으로 해결해도 우리 교육의 고질적 병폐를 넝굴째 뿌리뽑을 수 있습니다. 대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교육 공약이 너무 거창합니다. 대통령이 될 분들이니 큰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작은 것 하나만 근본적으로 해결해도 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작은 공약이나 큰 공약이나 일하기는 마찬가지인데 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걸림돌은 교육공약의 상당 부분을 교육계 전문가의 도움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스님이 제 머리를 깎겠습니까? 숲만 보고 나무를 보지 않는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公約)은 그래서 공약(空約)이 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필자는 제 둘째 아이가 졸업 전에, 첫째 아이가 먹었던 것처럼 정성이 깃든 맛있는 급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는 정상적인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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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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