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돈대에서 보는 국가안보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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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돈대에서 보는 국가안보

2017.04.27

최근 48번 국도에서 달리기 시작한 3000A번 2층 볼보 새 버스를 타고 강화도에 갔다가 대선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습니다. ARS로 연령대를 찍으니 조사대상이 아니라며 끊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답니다. 덕분에 탄핵 뉴스에 질려 매스컴의 대선 보도를 거의 외면하고 지내다가 텔레비전 토론을 보게 되었습니다. 각본 없는 최초의 스탠딩 토론이라서 기대도 했지만 지지율을 고려하지 않은 5명의 무더기 출연은 자유방임적인 진행을 악용한 난타전으로 민낯을 까면서 세부적인 국가 비전의 검색 기능을 상당히 파묻어 버렸습니다.  

내란·외환의 죄 이외에는 형사적 소추가 금지돼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헌재가 미리 유죄로 단정하여 ‘파면’한 후 치르는 대선이니 후보들을 나무라기에 앞서 국정 혼란을 예방한다면서 졸속 판결, 졸속 경선, 졸속 대선을 유발한 헌재를 탓해야죠. 야권은 탄핵을 예상하고 진행해왔지만 여당은 그럴 수 없었으니 출발부터 좌익 양강 구도로 기운 운동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안보 정세가 엄혹합니다. 북 핵실험 임박설 보도가 나왔고 트럼프 미 행정부의 부통령은 아시아 첫 방문국으로, 국방·국무장관은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잇달아 찾았습니다. 최신예 전폭기에 핵추진 잠수함, 항공모함 등 미국의 핵심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출동하고 있습니다. 중국군, 러시아군도 한반도 주변에 증강 중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의 소개까지 준비한다고 해서 한반도의 위기를 부추긴다고 비판받죠.

한반도의 위기는 특히 작년 봄 북한의 대통령 탄핵 사주·선동과 난수 방송,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으로 증폭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북에 비해 비대칭 무기가 열세인데도 미국에 의존해온 안보 감각 때문인지 천하태평처럼 보입니다. 자위 능력도 없는데 전작권을 빨리 환수하자고 외친 후보도 있죠. 후보들의 입으로 자주 국방의 구체안을 듣지 못했습니다. 국정원 강화는 좌우 후보의 견해가 딴판입니다. 대선 최고 이슈인 안보관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국방부 장관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할 수 있어도 대통령은 북한이 대화의 상대방이라 쓸 말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고 주적이 없다면 왜 60만 대군이 필요하냐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으로 북한에 그간 6,160억 원의 현금이 들어가 핵 개발 자금이 되었다며 작년에 공단 문을 닫았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개성공단을 2,000만 평으로 늘리면 우리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주장해 북한 일자리 창출이냐는 반론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확대하면 북으로 들어갈 돈이 100억 달러라고 합니다. 만약 강행한다면 북한 통치자금 증액과 핵개발 가속화, 유사시 근로자의 인질 위험 외에도 동맹국인 미국, 유엔 제재와의 충돌은 필지의 사실입니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도 과거 개성공단 10개를 만들자고 주장했었습니다.

사드 배치 논의에 중국과 대화가 필요했다는 식의 말은 동맹이 아닌 나라에 우리의 안보를 위한 의견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진핑은 방한 때 명나라와 조선군이 일본에 맞서 함께 싸웠다고 말했지만 60여 년 전 6·25 당시 국군이 북진하여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으며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목전에 두었을 때 이를 가로막은 것이 중공군입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나중에 취소는 했지만 집권하면 초대 평양 대사가 되고 싶다는 말도 하여 헌법을 부인하는 고려연방제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죠.

한국에 사드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 미군사령관이 말한 것은 3년 전입니다. 사드 배치 결정은 통진당 해산, 개성공단 폐쇄, 전국교원노조의 법외 노조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와 함께 공적으로 꼽히고 있죠. 사드 장비가 반입되고 부지가 미군에 인도되었으니 설치와 운용은 시간문제인데 아직도 현지에서 반대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후보들은 토론에서 배치의 큰 원칙에는 동의한 듯해서 다행이지만 언제 또 말을 바꿀지는 모릅니다. 국방부는 그간 당당하게 했어야할 한미동맹의 상징인 사드 배치에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란 모호성으로 혼란을 키운 듯합니다.  

요즘의 정치권과 일부 국민을 보면서 나는 조선시대의 왕을 생각합니다. 특히 국가안보를 강화한 숙종입니다. 숙종 하면 전에는 사극의 장희빈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북한산이나 강화도 나들길에서 이 임금을 평가합니다. 숙종은 농번기를 피해 석 달도 채 안 돼 강화도 해안선을 빙 둘러서 일종의 소규모 성채인 돈대(墩臺) 48개를 대개 3~4킬로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축조했습니다. 원형 또는 장방형의 돈대는 대략 180도 이상의 시야로 해안을 감시할 수 있는 해안선 돌출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와 인력, 폭약에만 의존하는 공법으로 한 곳의 넓이가 몇 백 평이 되는 높은 돈대를 일거에 세운 것입니다. 각도의 승군 8,900여 명과 어영군 4,200 명이 동원되었고 부족한 돌과 목재는 인근 섬에서 캐어다 썼습니다.

강화 나들길에서 그간 스무 개 정도의 돈대를 답사했습니다. 화강암의 크기가 1입방미터라면 무게는 2톤이 넘는다는데 어떻게 그런 높은 곳까지 날라다가 쌓았는지 조상들의 지혜와 노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방어의 요충지에서 나라를 지키자는 일념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화돈대와 미루지돈대는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부의 여장(女墻)이나 막사, 출입문은 없어졌고 입구에 문설주를 세웠던 돌에 판 홈이 남아 있습니다.  

돈대의 축조는 속전속결이었습니다. 고려 39년간의 천도 항몽기에 몽골군은 철군의 조건으로 강화성의 완전한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시늉만 내자 몽골군이 참관하여 완전히 부수는 것을 확인하고 철군했습니다. 이런 주변국의 간섭 가능성도 숙종이 속전속결로 시행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대동문, 대남문, 대성문, 중성문, 가사당 암문…, 등산인들에게 친숙한 북한산성도 숙종이 쌓았습니다.

강화도 돈대나 사드나 외적의 침입을 막자는 동일한 목표입니다. 숙종의 후손들은 왜 이렇게 의견이 갈려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공영 라디오에 나온 사람이 사드가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사드가 모든 미사일을 방어할 수는 없지만 존재 자체가 억지력이죠. 자력으로 방어 무기를 가질 능력이 없다면 동맹국의 힘을 빌어 지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이죠. 홍준표 후보는 전술핵 재배치까지 내걸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 번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한미동맹이 우리와 지구 최강의 국가를 파트너가 되게 한 덕입니다. 5월 9일 탄핵으로 비롯된 대선은 자유민주체제를 지키는 마지막 체제전쟁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유권자들이 우리가 처한 존립 기반과 안보 현실을 잘 직시하여 누가, 그리고 어떤 정책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가려내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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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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