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한국의 궤도 수정을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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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한국의 궤도 수정을

2017.04.18

1786년 9월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 괴테는 그해 11월 1일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로마 땅을 밟은 그날 기행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마침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 생각한다.”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고 합니다. 평생 살 집 한 간 마련하려고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모든 걸 털어서 가족과 함께 세계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사는 세상 밖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을 수 있고, 괴테처럼 (유럽)문명의 시원(始原)을 찾아보려는 탐구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목표와 계획이 뚜렷하다면 누가 어디로 여행한들 부러워할 일이지, 탓할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는 건 주머니 사정입니다. 개인 주머니도 그렇고, 나라의 주머니도 그렇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관광수지는 적자를 면해 본 적이 없습니다. 2007년에는 무려 10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해 외래관광객은 644만 명, 수입은 61억 달러였는데 해외여행자는 1,333만 명, 지출은 169억5천만 달러였습니다. 2009년에는 12억 달러(외래관광객 781만 명, 수입 98억 달러; 해외여행자 949만 명, 지출 110억4천만 달러) 정도로 적자 폭을 줄였으나 2015년에는 다시 64억 달러(외래관광객 1,323만 명, 수입 151억 달러; 해외여행자 1,931만 명, 지출 215억3천만 달러)의 적자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외래관광객 수도, 해외여행자 수도 해가 갈수록 꾸준히 늘고 있지만 터무니없이 헤프던 해외여행자들의 씀씀이는 1인당 1,100달러 수준에서 안정(?)되어간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여행 초기에는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동구매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을 지나야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즐기는 참다운 여행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외래관광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여행에 나선 관광객이라면 설레는 마음에 우선 갖고 싶은 물건, 사고 싶은 물건에 끌리겠지요. 그런 단계를 지난 외국인들을 두 번, 세 번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관광 자산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정서와 정성일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야말로 관광 입국의 왕도가 아닐까요. 

소수이긴 하겠지만 국제공항에서 외국 손님에게 바가지요금을 물리는 택시 기사 얘기를 심심찮게 듣습니다. 가짜 명품 장사 얘기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한다면 두 번 다시는 관광 장사를 기대할 수도 없겠지요. 그러니 이곳 물정 모르는 관광객에게 옴팍 바가지를 씌워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다 밑바닥까지 촘촘한 그물로 싹쓸이해 고기의 씨를 말린 후 빈 그물을 건지며 신세타령하는 어리석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일본 엔화의 약세로 중국과 일본 관광객이 현저히 줄어 우리 관광계가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최근 오사카를 다녀온 지인은 쇼핑 거리 도톤보리(道頓堀)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의 입술연지 하나를 골랐다가 계산대를 점령한 중국 관광객의 긴 줄에 기가 질려 포기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원래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명소를 안내하던 관광 가이드 송설애(가명) 씨는 벌써 몇 달째 우리나라 관광객을 이끌고 일본 명소를 돌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관광계의 한숨이 깊어지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지난해의 관광 성적표도 보나 마나입니다. 2016년 외래관광객 수는 1,724만 명, 해외여행자 2,238만 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015년의 씀씀이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적어도 50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사드를 구실로 중국이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듯이 그런 횡포를 당한 나라가 우리뿐만은 아닙니다. 일본은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시비로, 대만은 ‘한 개의 중국’을 부정하는 민진당 [民主進步黨]소속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집권으로 양안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의 보복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는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센카쿠열도 국유화를 선언한 직후 엄청난 반일(反日) 시위가 일어났고, 중국 정부는 관광은 물론 민간 교류까지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중국 내 일본 기업의 공장이 불타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폭행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만 역시 중국 정부에 의해 관광 여행이 제한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 등 여러 나라의 관광객 유치에 힘써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비자 규제를 대폭 완화(면제 또는 간편화)하고, 면세품목을 늘리고, 항공과 크루즈 노선을 늘리며 다른 관광 시장을 적극 개척한 것입니다. 특히 대만은 차이잉원 총통 집권과 동시에 국가발전전략의 핵심으로 ‘신남향정책(新南向政策)’을 채택, 아세안 10개국, 남아시아 6개국, 호주, 뉴질랜드 등 18개국과의 비즈니스와 관광 등 상호교류를 강화했습니다. 대만 행정원은 이 같은 노력으로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이들 지역의 경제성장 호조로 앞으로의 전망도 낙관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성공적으로 관광수지를 개선해 나간 두 나라의 관광 정책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차제에 우리의 관광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핵심 과제는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 수요를 전 세계로 두루 넓히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외래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고유의 색깔과 향과 맛이 무엇인지를 찾아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 인사동 골목에 줄지어 선 국적 불명의 잡화점, 분수 모르는 음식점들을 보면 낯이 뜨거울 정도입니다. 수원 화성에서나 경주 불국사에서나 아무 특색 없이 똑같은 기념품을 보게 된다면 식상하고 사고 싶은 생각도 멀어질 것입니다. 먼저 각국 여행자별로 우리나라의 어느 곳을 무엇 때문에 얼마나 자주 찾아오고 어디에 머물며 어떤 상품을 구매하고 어떤 느낌으로 돌아가는지, 세심하고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안심하고 편안하게, 쉽게 오가고, 머물 수 있는지, 그런 정보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전파된 한류의 효과를 십분 살려 관광 한국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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