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2017.04.14
꽃이 벌써 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피고 싶었을까요? 예전엔 춘서(春序)라고 해서 봄에 꽃 피는 순서가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구마구 순서가 뒤바꾸어서 어느 꽃이 먼저 피어야 되는지 알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지금은 꽃 핀 다음에 잎이 나는 게 아니라 일단 꽃부터 피고 보는 녀석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남이 쓴 글을 읽어보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궁금해졌습니다. ‘너 참 잘났구나’ 하는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이 짧은 문장에 생각하다라는 말이 벌써 세 번이나 나오는데, 그걸 생각도 하지 않고 또 쓰다니!이런 걸 생각하게 만든 사람은 서울대 송호근 교수입니다. 그는 최근에 ‘강화도’라는 소설을 냈습니다. 신헌(申櫶·1811~1884)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와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 소설입니다. 기자들과 만났을 때 “학자가 소설을 쓴다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문사(文士)로서 소설은 다른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간 읽은 소설책 양이 5톤 트럭 하나쯤은 되니 소설 쓰기란 내게 굉장히 오래된 현재”라는 말도 했습니다.젊어서 소설을 쓰는 것은 요즘 말로 치면 버킷 리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송 교수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1978년 대학문학상에 평론으로 응모한 적이 있고, 1977년엔 ‘강적’(정과리 현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을 만나 떨어지고 1978년엔 당선됐다고 합니다. 그런 경력을 스스로 접고 사회학자로서 생각하고 글을 써왔지만 바탕에는 당연히 문학청년 송호근이 자리하고 있다가 이번에 ‘본색’을 드러낸 셈입니다. 그에게 소설 쓰기의 동력은 역설적으로 지난해의 국정농단, 탄핵 정국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고 흘러온 과거가 만들어낸 ‘누추한 미래’를 고민했고, 봉건과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 신헌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유학자이자 무관, 외교관이었던 신헌은 조선 측 협상 대표로 나서 1876년 조·일 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맺은 인물입니다.송 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1876년은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여러 국제적 압력과 위치, 내부 논쟁의 출발점이자 기원입니다. 송 교수는 왜 이런 현실이 계속 반복되는가,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소설로 물어본 것이고, 신헌은 날아오는 창을 붙잡고 자신이 쓰러지면서 창이 조선의 깊은 심장에 박히지 않도록 한 사람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문무를 겸비한 유장(儒將)이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그 기원을 더듬어 보면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는 거지요.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2010년 8월 정년 퇴임한 김민환 전 고려대 교수도 4년 전 역사소설 ‘담징’(서정시학 펴냄)을 낸 바 있습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학자 생활 29년 6개월 동안 공저를 포함해 18권의 책을 냈지만, 첫 소설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학(고려대) 다닐 때부터 소설 쓰는 게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운동을 하면서 ‘감상적’이라는 건 치명적인 한계였고, 그때부터 문학적 감수성을 억눌러왔다”는 거지요. 이들은 왜 소설을 썼을까? 두 사회학자들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은 문학청년의 꿈을 남 몰래 키우고 가꿔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여기(餘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본인들은 절대로 그게 아닙니다.나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소설이라고 발표했는데도 왜 사람들은 자꾸 자기의 말과 눈으로 소설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요? 내가 쓰고 싶은 건 역시 역사 속의 인물입니다, 최근 읽은 글을 통해 발견한 어떤 분과, 그 삶의 언저리에서 함께 괴로워하고 신음하면서 한많고 어려운시대를 살아간 인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와 그림으로 서로 우정을 키우고 남들 모르게 조선이라는 시대를 나름대로 의미 있게 넘어간 지식인 두 명입니다.이들의 삶을 재현해내고 제대로 소설을 쓰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생각만 그렇지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이 급해지고 소설을 쓴 학자들이 부러워집니다. 다만 내가 소설로 되살리려 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글 잘 쓰고 소설에도 능한 어떤 분이 소재를 가져가 버리면 안 되니까. 그래서 요즘도 늘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게 어떤 인물인지 부디 짐작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