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7주기… '대변인' 이기식 前 해군작전사령관



"천안함 46용사는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다"

軍과 국민들에게 北정권 실체 침묵의 증언

유족들이 진짜 애국자

해군과 국가 원망않고 오히려 軍을 위로해

3代가 해군가족

선친·부인·아들까지 해군에서 복무


  이기식(60) 전 해군작전사령관(예비역 중장)은 "천안함 46용사와 천안함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으로 두 동강 나면서 46명이 전사했지만 7년째 국군 장병과 국민에게 북한 정권의 실체를 알리고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을 심어주고 있으니까요. 2010년 5월 평택 2함대로 옮겨진 이후 현재까지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천안함 안보 견학을 했습니다. 제2함대 장병들은 출항하기 전 천안함을 생각하며 결의를 다집니다."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군 대변인 역할을 했다. “약 두 달 동안 하루 2~3시간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괴담이 진실을 덮었을 때였습니다. 북한 어뢰 공격으로 전사한 46용사와 실종자 수색작전 도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 김지호 기자


이 전 사령관은 평생 천안함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爆沈) 직후부터 약 두 달간 천안함 브리핑을 맡았다. 당시 합동참모본부에서 사이버·심리·전자전(戰) 등을 담당하는 정보작전처장(준장)으로 근무했는데, 이 전 사령관이 대(對)잠수함 작전 전문가라는 이유로 국민 앞에 서게 됐다. 천안함이 소속됐던 제2함대 사령관(소장)으로도 부임해 서해 영해 수호 임무를 맡았다. 올 1월 전역한 이 전 사령관은 전역식도 2함대에서 치렀다.


천안함 폭침 7주기를 맞아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는 "경기도 평택 2함대 근처 석정식당에서 점심 먹고 천안함에 가 보자"고 했다. 이 식당은 천안함 전사자 고(故)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66)씨가 운영하고 있다. 부산에 살던 유씨는 "아들이 그리워서" 2012년 2함대 앞에 식당을 차렸다. 3일 유씨는 이 전 사령관을 보자 "사령관님, 한 번 안아봐요" 했다. 유씨는 "천안함 사건 처음에 제일 많이 욕하고 원망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이기식 사령관이었다"고 했다. "아들 잃고 정신없는데 계속 TV에 나와서 천안함에 대해 얘기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참 고마워요. 2함대 사령관할 때도 그렇고, 요새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줘요." 이 전 사령관은 문규석 원사가 좋아했다던 제육볶음을 시켰다.


천안함 폭침 모습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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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브리핑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죠.

"사건 초기 천안함이 침몰해 바닷속에 있어서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가족을 포함해 전 국민이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제대로 몰라서 브리핑을 못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래서 거짓말한다고 비판받았습니다."


군 발표 내용이 자꾸 바뀌어 신뢰를 잃은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 어뢰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우왕좌왕한 면이 있었습니다. 군사 작전이 기밀에 속하는 내용이 많아서 공개 여부를 두고 시간도 걸렸지요. 군이 국민에게 빨리 알려줘야겠다고 판단해서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나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군이 자성해야 할 부분이고, 이후 훈련과 보고 체계가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합니다."


사건 발생 며칠 만에 북한 소행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지 않았습니까.

"단편적인 증거들이 나왔지만 완벽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신중해야 했습니다."


어느 때 가장 힘들었습니까.

"천안함 괴담이 확산됐을 때죠. 좌초설, 기뢰 충돌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부터 자작극이라는 의견까지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라 할 수 있는 북한 어뢰 추진체를 발견했고, 인양된 천안함 모습에서 어뢰 공격 흔적을 발견했는데도 괴담이 수그러들지 않더군요. 한국·미국·영국·호주·스웨덴 등 5국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 조사단이 결론을 내렸는데도요. 지금도 괴담이 진실을 덮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 전 사령관은 2011년 1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제2함대사령부 사령관직을 수행했다. 그는 이때부터 천안함 유가족뿐만 아니라 제2연평해전 유가족도 만나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 기습 공격에 맞서 싸우다 우리 승조원 6명이 전사했는데, 이들이 타고 있던 참수리 357정(艇)도 2함대 소속으로 2함대사령부에 전시돼 있다.


전사자 유가족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군요.

"네. 그런데 이분들이 오히려 군을 위로해 주십니다. 해군과 국가를 원망하지 않고요. 모든 장병을 동생, 아들, 딸처럼 대해 주세요. 천안함 46용사 중 전사자 6명의 시신을 못 찾았지만 그 유가족분들이 산화했다고 동의해 영결식을 함께 치렀어요. 이분들 모두 진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오열하는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 출처 구국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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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기억에 남는 유가족이 있습니까.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예요. 그분은 '나는 아무것도 배운 것 없는 시골 노인네'라고 하지만 정말 애국심이 투철한 분이죠. 유족 보상금으로 받은 1억원을 해군에 내놓았고, 해군이 이 돈으로 3·26기관총 18대를 마련했습니다. 제 전역식에도 오셨는데, 저만 보면 그렇게 안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2함대 사령관으로 있을 때 각오가 남달랐겠군요.

"저보다 2함대 장병들의 결기가 더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작전에 투입되면 다시 못 돌아올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합니다. 2함대는 북한과 가까워서 근무 강도가 높은데도 한 번 2함대 복무했던 장교는 다시 돌아오려고 하죠."


2함대 사령관 이후 해군사관학교 교장도 맡았지요.

"그때 정원의 10%는 학교장 추천을 받은 수험생 중 2박3일 면접이 당락을 좌우하는 특별전형 제도를 만들었어요. 수능 점수는 보지 않고요. 국가관과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이 장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해사는 정원의 30%를 이 같은 방식으로 뽑고 있다.


이 전 사령관은 3대(代) 해군 가족이다. 아버지는 해사 4기 고(故) 이흥섭 대령이다. 3형제 중 장남인 이 전 사령관은 해사 35기이고, 막내 이기남 중령은 해사 38기다. 이 전 사령관의 아들은 해군에서 병사로 복무했다. 이 전 사령관의 부인 김태숙(56)씨도 해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 전 사령관은 "아버지 임종을 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했다. "아버지는 6·25 때 해사 생도 신분으로 서해 압록강 부근 신미도 전투에 참전해 북한의 소련제 야크기 1대를 격추하는 공을 세웠어요. 이승만 대통령에게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죠. 2013년 3월 13일 이 훈장을 해군사관학교에 기증했어요. 아버지는 병상에 계셨는데, 저는 임무 수행 중이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기증식에 참석했죠. 그날 아버지 병세가 갑자기 위독해져서 운명하셨어요. 가족 모두 임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천안함 폭침 이후 책상 위에 천안함 46용사와 실종자 수색작전 도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 사진을 두고 있다. 그는 "2함대 구호가 '싸우면 박살 내자'인데, 앞으로 후배 장병들이 북한군을 박살 내는 그 순간까지 앨범을 치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현석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7/20170407017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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