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떠나는 골프 꿈나무들..."숨막히는 학사관리"


정유라 편법 · 특혜사건 '불똥'

숨막히는 학사관리에 불만 

초·중·고 전국대회 출전 횟수 한해 최대 4회로 엄격 제한 

결석일수도 15일까지만 '빡빡'  

"수업 없는 주말대회까지 출전 통제하는 건 비상식"

지방대회 참가 선수 '반토막'


   “골프를 포기할까 생각 중이에요.” 


프로골퍼 지망생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J씨(52). 지난달 28일 경기 용인에서 열린 한 초등학생 골프대회에서 만난 그는 “요즘 매일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탱크’ 최경주(47)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꿈이라는 아들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아서다.


지난달 28일 경기 용인시 한 골프장에서 열린 초등학생 골프대회에서 학부모들이 자녀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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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그 양반 때문이에요.” 옆에 있던 또 다른 골프맘 Y씨(45)가 거들었다. 무슨 얘길까. 


승마 특기자였던 최순실 씨 딸의 고교 편법 졸업과 대학 특혜입학 사건의 불똥이 골프로 튄 것이다. 출석과 시험관리는 물론 전국 대회 출전 횟수까지 제한하는 등 학사관리가 ‘어느 날 갑자기’ 빡빡해졌다. 학부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진 분위기다. 이들은 “유망주였던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학생 대여섯 명이 고민 끝에 이미 골프를 그만뒀다”고 전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골프선수는 올해부터 학기 중 연 최대 4회까지 전국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출전하려면 학교장 친필 사인도 필수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 학기말 고사에서 최저학력(학년 평균 성적의 50% 이상) 기준을 넘겨야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결석 일수도 최대 15일(지역마다 약간 다름)까지로 엄격히 제한됐다. 대개 방학을 앞뒤로 끼고 떠나는 해외전지훈련이 앞으로는 힘들어진 배경이다. 공부를 못하면 운동도 할 수 없게 원천봉쇄한 셈이다. “아이들의 학습권 보장 차원”이라는 교육당국의 설명에 대한 골프맘들의 반응은 뾰족했다. ‘골프머신’이 아니라 ‘공부하는 스포츠인’이 되라는 취지라는데, 왜 학부모들이 난리일까. 


6년차 골프대디 K씨(48)가 나섰다. 그는 “출석 일수를 정확히 체크하고, 시험도 정확하게 보게 하면 되는 일을 대회출전 횟수까지 간섭하는 건 월권이라고 보는 게 학부모들의 생각”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학기 중이라는 이유로 수업이 없는 주말대회(방학은 제외)까지 출전 제한 대상에 포함한 건 기본권 침해라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본질은 학사관리를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학습권이 있듯, 기본권 차원의 결석할 권리도 있다는 걸 무시한다는 게 문제입니다.”(Y씨)


규정 출석 일수 3분의 2 이상을 채우면 상급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는 만큼 3분의 1 이내에서는 결석할 권리도 있다고 봐야 한다는 논리다. 이렇게 하면 연간 얼추 60일 정도의 결석권이 산출된다. 이 범위 내에서 나쁜 성적을 감수해서라도 운동에 ‘베팅’하겠다는 자율선택까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몇몇 학부모는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J씨는 전했다. 


출전 횟수 제한은 엉뚱한 곳으로도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대회마다 선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좋은 성적을 낼 대회를 골라 출전하려다 보니 경쟁자의 출전 여부를 체크하는 눈치작전이 이전보다 극심해졌다. 수십개 대회 가운데 최상의 컨디션과 만만한 경쟁자 출전이라는 두 조건을 충족시킬 ‘빅4’ 대회를 골라야 한다. 이른바 ‘출전 테크’다. 


실제 이미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작거나 이동 거리가 먼 지방 대회는 출전 수 규모가 반토막 났다. 박인비(29) 유소연(27) 등 세계적인 골퍼를 배출한 제주도지사배 주니어골프대회는 700여명이 몰리던 지난 대회와 달리 올해 340명만 출전했다. 대한골프협회 측은 “신청자가 적어 예선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선을 하는 것으로 대회방식을 막판에 바꿨다”며 “초반에 출전자가 적으면 하반기에는 반대로 쏠림 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망주 발굴을 위한 기업 후원 대회는 무산될 위기다. 이달 말 열리는 D대회는 지난해 150여명이 신청했지만 올해는 현재까지 신청자가 30여명에 불과하다. 잘 알아주지도 않는 유망주 발굴대회에 선뜻 거금을 내놨던 기업은 뻘쭘해진 상황이다.


J씨는 ‘최후의 선택’을 조만간 내릴 작정이다. 이민이냐, 골프 포기냐 중 한쪽이다.


“공부 더 하라는 건 100% 찬성이에요. 하지만 쉬는 날까지 통제하겠다는 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이에요. 이민가서 다른 나라 국기 달고 올림픽에 나서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현장에서 만난 한 교육 전문가가 말했다.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이라면 갈 길은 가야죠. 이상한 건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면서도 운동할 기회를 넓힐 방법이 있는데도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한다는 겁니다. 출구를 막는 토끼몰이 대신 합리적 대안과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요.”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2010년 504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던 초등학교 골프선수는 지난해 404명으로 20%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1654명이던 고등학생 선수는 1049명으로 37% 급감했다.

이관우 레저스포츠산업부 기자 leebro2@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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