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찬란한 봄의 노래



4월의 찬란한 봄의 노래


   독일의 모 항공사 비행기를 타게 되면 은근히 시간이 잘 가는 걸 느낀다. 음악의 본고장이어서 그런지 기내에는 최신 클래식 음반들이 항상 서비스 되고 있다. 오페라 한 두 작품, 유명 아티스트의 최신 독집들, 교향곡과 실내악 음반 등을 오가다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source Arras France Tourism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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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몇 트랙 들었던 음악을 여행에서 돌아와 아예 음반으로 구입한 적도 많다. 그런데 대개 하늘에서 듣던 것보다는 별로다. 그 항공사의 B브랜드 헤드폰은 절묘한 ‘조미료 사운드’(?)로 유명하다. 모난 곳은 부드럽게, 모자라고 부족한 소리는 티 안나는 부스터로 절묘하게 밸런스를 잡아준다. 공명감도 살아 있고, 섬세한 사운드를 연출하는 솜씨도 참으로 교묘한데 특히 성악 쪽이 훌륭하다. 그러나 같은 음악을 집에 있는 풀 레인지 오디오로 들으면 깜짝 놀란다. 마치 환한 조명 아래 어쩔 수 없이 드러난 민낯처럼, 연주의 장단점이 가감 없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하긴 지난 여름에도 여기에 속았다. 꽤나 고가의 오페라 전곡 음반을 하나 구입했다가 지금은 잘 듣지도 않고 서재에 던져둔 채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


그러나 여기, 대단한 성공사례도 하나 있다. 프랑스의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Natalie Dessay)가 노래한 프랑스 가곡집이다. 언젠가 스쳐 지나갔던 음반이지만 별달리 주목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 비행기에서 들었더니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드세이 특유의 화사한 파스텔톤의 음색, 정묘한 프랑스어 딕션, 거기에 더해진 그녀 특유의 얕고 아슬아슬한 호흡 – 이것이 오히려 덧없이 피어난 청초한 꽃처럼 그녀의 노래를 지극히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음반의 타이틀 곡은 포레의 <꿈꾸고 난 후에 Apres un reve>. 프랑스의 이름난 바리톤 제라르 수제의 유려한 목소리로 듣던 것을 이제는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듣는다. 환하게 펼쳐진 4월의 봄날, 이제는 5월 대신 ‘계절(季節)의 여왕(女王)’ 자리를 대관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황홀한 순간에 드세이의 목소리로 포레의 가곡을 듣고 있다.


(포레 <꿈꾸고 난 후에 Apres un reve>,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피아노 필리프 카사르 Philippe Cassard)


간절하고 허무한 프랑스어의 부서지는 듯한 아련함을 느끼고 있자니, 남자의 목소리로도 한 곡을 더 듣고 싶어진다.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다. 유부녀가 된 샤를로테 앞에 선 청년 베르테르는 절망과 좌절, 끔찍한 자기혐오, 그녀에 대한 여전한 사랑과 미련 속에서 참혹한 고통을 느낀다. 품 속에 접어두었던 어느 옛 시인의 시를 읽어 내려가자 그것은 곧 프랑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찬란한 테너 아리아가 되었다.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미풍이여?” 



(마스네 <베르테르> 중 베르테르의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미풍이여? Pourquoi me reveiller’)


우리는 지금 한 해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서 있다. 사라져가는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고 싶어진다. 찬란한 봄의 노래를 찾아, 오늘도 여기저기를 헤매는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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