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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국가 개혁이다(2)
2017.04.03
두려운 ‘괴물’ 검찰
어느 방송인지 기억이 없습니다만 얼마 전 tv에서 영화 ‘검사외전’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검찰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과의 유착, 암투, 비리 등 숨겨진 검찰의 지저분한 면을 보여줍니다. 내용은 검찰이 제물로 삼았던 전직 동료 검사가, 자신을 기소한 검찰의 갖은 협박과 방해를 무릅쓰고, 감옥에서 재심을 이끌어 낸다는 지극히 평이한 권선징악의 어쩌면 뻔한 이야기입니다.많은 시청자들은 그러나 ‘검사외전’을 보며 일부 검사들이 우리 사회를 할퀴고 긁고 꼬집어서 생긴 생채기와 흉터를 떠올렸습니다.검찰은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과 허점이 많은 재정신청 제도로 자신들의 잘못과 무능 혹은 비리를 제도적으로 덮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해자는 바로 국민입니다. 기소권 독점의 폐해는 널리 알려져 있고, 꼭 필요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연계되어 있어 거론치 않겠습니다.재정신청은 검찰이 가진 기소 독점권의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훌륭한 취지입니다만, 허점 때문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합니다. 재정신청은 지방검찰이 불기소한 것을 고등검찰청에 항고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는 고등검찰도 지방검찰처럼 역시 무혐의를 하거나, 또 하나는 고등검찰이 지방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결과가 잘못되었다며 수사를 다시 하라고 내려 보냈는데도 지방검찰이 다시 무혐의했을 때입니다.재정신청은 이런 경우에 고소인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구제 수단입니다. 고등법원은 검찰청의 사건 처리가 적절하지 않았다면 검찰에게 재판에 회부하라고 명령합니다. 검찰은 명령이 내려오면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사건은 무혐의 처리했던 바로 그 검찰청으로 다시 내려보내지고, 재판에서 공판은 그 검찰청 소속 검사가 담당합니다.그러니 공판을 담당한 검사는 자기가 속한 검찰청의 잘못,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무능, 또는 모종의 비리 등을 재판에서 성실하게 밝힐 수가 없을 겁니다. 자기 조직을 스스로 흠집 내는 결과니까요. 그렇다고 고소인이 유죄의 증거를 제출할 권리도 없습니다. 증거 제출은 검찰이 합니다.전에는 재정신청 사건을 특별검사가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검찰(통치권자일까요?)이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사건이 늘어나자, 특별검사 제도를 없앴습니다. 법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인권을 보호하려던 기본 취지와는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를 두고 검찰은 그렇지 않다거나, 억울하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제는 스스로 내어놓을 때가 됐습니다.별건 수사와 기획수사 관행도 이참에 없어져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우선 수사를 개시하여 온갖 방법으로 혐의를 닦달합니다. 검찰은 의도했던 것이 밝혀지지 않으면 수사 중인 사건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것으로 기소를 해 왔습니다. 아예 없으면 미안하다는 공식 사과도 없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고요.압수수색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으로 집행합니다만, 걸핏하면 벌이는 통에 도가 지나치다는 말들이 나돕니다. 지금 검찰은 많은 기관과 기업과 개인의 은밀한 정보까지도 압수수색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국민들은 검찰이 이 정보를 순진하게 가지고만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중앙정보부가 비난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킵니다.검찰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며 역점사업으로 시작한 영상녹화 조사 시설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습니다.이런 일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숱하게 등장합니다. 당시 여러 기록과 정황을 보면 옥리들이 강압으로 수사하고, 여차하면 매로 다스리고, 관련 없는 주변 인물까지 잡아다가 겁주고 조사하고, 심한 경우에는 조서를 조작하는 등 인권침해를 그야말로 밥 먹듯 했습니다.세종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형사재판에서 글을 몰라 억울하게 당하는 백성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일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대표적인 것은 집현전의 학자 일곱 명이 낸 상소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들은 세종에게 죄수들이 “초사(招辭: 자기의 범죄 사실을 진술한 조서)를 읽고서 허위인 줄을 알면서도 매를 견디지 못하여 그릇 항복하는 자가 많다”며 “형옥(刑獄 형벌과 감옥)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이 옥리(獄吏)의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은 신 등은 그 옳은 줄을 알 수 없사옵니다.”며 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합니다.이때뿐만이 아닙니다. 현종 때는 형옥이 엄격하지 못하자 옥리가 죄인과 짜고 다른 사람을 가두고, 죄인이 마음대로 집에 드나들게 했습니다. 옥리를 우선 파직하고 죄상을 추궁하여 심문케 했습니다.어디선가 읽은 각목위리(刻木爲吏)란 말이 생각납니다. ‘옥리를 심하게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무를 깎아 옥리의 형상을 만들어 저주한다’는 뜻입니다. 힘없는 순진무구한 백성은, 온갖 강압으로 없는 죄도 만들어 낸 옥리가 정말 미워, 옥리의 형상을 깎아 놓고 두고두고 저주를 퍼부었을 겁니다.검찰은 오랜 역사의 기록을 거울삼아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오로지 균형 잡힌 저울과 길이가 변하지 않는 자(尺)로써 수사하고 기소하는 관행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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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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