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에 대한 추억 몇 가지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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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소리에 대한 추억 몇 가지

2017.03.30

고향 동네에는 높이가 100m도 되지 않는 뒷동산이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일제강압기 때 세운 오포대가 있습니다. 높이가 7m 정도 되는 오포대는 사다리가 있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사각형의 함석지붕 밑에 사이렌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덩치가 큰 5, 6학년 학생들은 사이렌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한눈에 훤히 보이는 동네 앞 들판을 감상하고는 했습니다. 

농번기 때는 정오가 되면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립니다. 사이렌 소리는 동네 앞 들판이며, 멀리는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까지 울려 퍼집니다. 논이나 밭에서 일 하시는 분들은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집에서 싸 가지고 간 점심을 먹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연장을 챙기십니다.

동네 어디에 불이 났을 때는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울립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의용소방대원들은 생업에 종사하시다가 불을 끄는 도구나 소방수레를 끌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중학교는 오포대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사이렌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수업 도중에 사이렌 소리가 들면 교실 안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창문 밖을 바라봅니다. 창문 밖으로 자기 집이 보일 리는 없지만, 자기 집에 불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불안해합니다. 

장마나 태풍 때 하천물이 범람하여 둑이 무너질 기미가 보이거나, 저수지 둑이 위험해 보일 때도 사이렌이 무섭도록 요란하게 울립니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어른들이며 청년들은 물이 넘치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어느 해인가 동네 앞을 흐르는 하천 둑에는 시뻘건 황토물이 금방이라도 둑을 밀어 버릴 것처럼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천 건너편 낮은 지대에 있는 논들은 이미 물에 잠겨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강물처럼 엄청나게 흐르고 있는 많은 물에 놀랐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광경입니다.

그 흔한 면서기들의 얼굴은 안 보였습니다. 구장이나 노인분들이 앞장서서 지시를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장대 줄기로 쏟아지는 소나기에 아랑곳없이 가마니에 모래를 채우고, 그것으로 둑을 높이고, 돌멩이를 들어 나르고, 삽으로 가마니와 가마니 사이에 흙을 채워 놓느라 정신없이 일하던 광경은 훗날 생각해 보니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하나로 뭉쳐 헤쳐 나가는 민족성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봄날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5교시 수업에 나른하게 졸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렌 소리는 여느 날과 다르게 숨이 막힐 정도로 더 악을 쓰며 울어 댔습니다. 긴장이 팽팽하게 고여 있던 교실 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사이렌 소리에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들어오셔서 잔뜩 굳은 얼굴로 창문 앞에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던 과학 선생님께 뭐라고 속삭이셨습니다.

과학 선생님은 이내 성급히 나가시고, 담임선생님이 지금 무장공비가 이 지역에 나타났다. 청소도 하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가라고하셨습니다. 조회가 끝나면, ‘때려잡자 공산당!’ 이라는 구호를 합창하거나, 공산당을 쳐부수자는 웅변대회를 수시로 열어서 반공교육에 세뇌가 되어 있던 학생들은 서둘러 책가방을 챙겼습니다.

그즈음 울진이며 삼척 지역에 자주 무장공비가 출현했습니다.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 산골 마을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말은 너무 두렵고 무섭게 들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하교 후에 축구며 탁구를 치다 늦게 하교를 하던 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빠져나간 운동장에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군인들을 가득 태우거나 전투경찰복을 입은 경찰을 태운 트럭들이 줄을 지어서 학교 앞 도로를 지나쳐서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모두 길가에 나오셔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트럭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무장공비 출현 사건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중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고 산에서 땡땡이를 치다 거짓 신고 한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한 학생은 지역의 국회의원 막냇동생이며, 저하고 같은 반 학생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튿날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무장공비가 나타났다고 면 소재지를 긴장감으로 몰아넣었던 학생의 신고 정신이 너무 투철하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신고 정신이 투철한 학생에게 표창하시기로 했다며 손뼉을 쳐주라고 하셨습니다. 덧붙여서 만약 진짜로 무장공비가 우리 지역에 나타났으면 어떡할 뻔했느냐며 여러분들도,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학교나 파출소로 신고를 해야 한다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학생들은 거짓말을 한 학생에 대해서는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는 무장공비가 우리 지역에 출현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손바닥에 아프도록 손뼉을 쳤었습니다. 

지금도 오포대는 건재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소나무가 작아서 오포대가 한눈에 보였었는데 지금은 소나무들 키가 커서 마을에서는 오포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이들도 뒷동산에 오를 필요가 없어서 뒷동산 꼭대기에 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포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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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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