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기득권, 더러운 기득권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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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기득권, 더러운 기득권

2017.03.17

경기 남부지역에 사는지라 서울 갈 때는 광역버스를 탑니다. 노선번호가 4자리 숫자인, 빨강색 버스 말입니다. 이걸 타면서 기득권에 대해서 더 알게 됐습니다. 

광역버스 좌석은 39인석 혹은 45인석입니다. 5명이 앉는 제일 뒷줄 빼고는 둘씩 앉도록 되어 있습니다. 먼저 탄 사람들은 좌석 한 개를 통째로 차지합니다. 2인승 좌석을 혼자 앉아 가면 다리도 꼴 수 있고, 삐딱하니 앉아서 창밖 고속도로 변, 산과 들에 나른히 번지는 봄기운을 즐길 수도 있단 말입니다.

이렇게 좌석을 하나씩 차지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타는 사람들에게 자기 권리를 행사/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통로 쪽에 앉으면 뒤에 탄 사람들은 그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광역버스는 앞뒤 좌석 사이가 비좁아, 서 있던 사람이 창 쪽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옆으로 서서는 앉은 사람(기득권자)의 무릎이 자신의 대퇴부나, (키 작은 사람의 경우) 엉덩이 혹은 배 아래 부분을 강하게 누르는 불쾌감을 견디면서 밀고 들어가야 합니다.

앉은 사람도 편한 것만 아닙니다. 그 역시 엉덩이를 들썩여 허리를 세운 후 다리를 모은 채 몸을 비틀어야 합니다. 시선이나 코가 들어오려는 사람의 엉덩이나 그 반대편으로 향하게 되는 걸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거기 앉으면 운신이 비교적 자유로운 ‘개활지(통로)’를 서울까지 한 시간 가량 이용할 수 있다는 이득 때문에 그런 불편을 견디는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몸을 비비적거리면 버스 뒤편으로 들어가려는 뒤따르던 사람들로 통로는 막히고, 버스 출발은 늦어집니다. ‘몇 초 상관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 하실 수 있지만 늦은 건 늦은 거지요. 그 알량한 기득권 때문에.

더 웃기는 건 창 쪽에 앉은 사람도 가방이나 백팩을 이(악)용해 기득권을 행사하는 겁니다. 옆자리에 그것들을 놓고는 나중 탄 다른 사람들이 아예 자기 옆에 앉을 생각을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나 짐 있거든요. 좀 편히 가야겠어요!’라는 표정을 얼굴에 써 놓고는 눈을 감은 채 팔짱을 굳게 낍니다. 입술도 꾹 다뭅니다. 뒤에 탄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려는 시늉을 하면 잠깐 눈을 치켜뜨고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은 후에야 가방을 치우고 안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합니다. 정말 때려주고 싶고, 혼내주고 싶은 장면이지요.

그러고 보니 기득권은, 결국, 자리다툼이네요.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혼자 더 오래 앉아 버티는 것, 이 자리다툼은 여탕에서도 심한가 봅니다. 늦겨울 날씨가 스산하던 어느 주말 목욕을 갔던 아내가 얼굴이 약간 부은 채 돌아왔습니다. 날씨 때문에 사람이 평소 주말보다 많아서 빈자리가 없었답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여유가 있어 앉았더니 멀리 온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주인’이 어느새 나타나 자기 자리라며 비키라고 하더라는 거지요. 아내가 물러서자 주인은 다시 온탕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아, 기득권! 신문사에 있다가 사업을 하겠다며 그만둔 선배를 만났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어디에 구멍을 파 봐도 이미 다 자리를 잡고 있더라고. 그 구멍에 나도 좀 들어가겠다고 아무리 해 봐도 비켜주지 않는 거야. 어떤 뿌리에도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더라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들의 말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기득권’입니다. 토론회건 인터뷰건 말할 자리만 있으면 ‘기득권 철폐’가 입에 오릅니다. 기득권의 종류도 참 많습니다. 산업화 기득권, 민주화 기득권, 동종교배 기득권, 진보 기득권, 보수 기득권, 수구 기득권, 87체제 기득권, 강남 기득권, 노조 기득권…. 또 전번 대선에서 기득권 철폐를 주장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청산되어야 할 기득권이라며 다른 이들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기득권 하나가 물러났나 했더니 새로운 기득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공격하는 이들도 다음에는 기득권자가 되겠지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절대 기득권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버스좌석 기득권, 목욕탕 기득권 등 포기해도 될, 양보해도 될, 그 따위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버스 안과 목욕탕 속에서 꿈틀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알량한 기득권이 종국에는 더러운 기득권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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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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