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초등학생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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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초등학생들

2017.03.16

동네 큰길 코너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습니다. 2월 마지막 일요일 날 그 카페에서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카페에는 사람이 거의 가득 차 있었습니다. 창가에는 여느 카페나 마찬가지로 대학생 또래의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펴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공부를 하는지 뭔가에 몰두했습니다. 홀 안에는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들, 동네 아줌마들이 잡담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옆 자리에 아이들 넷이 각자 종이를 펴놓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노트북을 펴놓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니 앳된 초등학생 얼굴이었습니다. 

내가 의아스러워 지인에게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초등학생이 카페에 오네요?”
“요즘 아파트 단지 근처 카페엔 초등학생들이 끼리끼리 카페에 와서 논답니다.” 
나는 처음 듣는 일이었습니다. 생소한 광경이라서 내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습니다. 

한 아이가 내 곁을 지나가기에 말을 걸었습니다. 

“너희들 초딩이니?” 

“아니요. 중학생이에요. 1학년.”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카페에 와 봤니?”

“예. 친구들이랑 와요.”

“카페가 놀기 좋니?”

아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카페도 다른 장소와 마찬가지로 세태를 따라 진화하게 마련입니다. 이제 웬만한 카페는 고객 취향에 맞춰 실내 디자인도 합니다. 창 측으로는 혼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젊은이들에 맞춰 놓았습니다. 길고 넓은 테이블을 들여 놓아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얘기할 수 있게 만든 곳도 많습니다. 

도서관 열람실같이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 카페에 들어가서는 앉을 곳을 고민해 찾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노트북을 열어 놓고 이어폰을 낀 젊은이 옆에 앉아서 떠드는 건 왠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젊은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아서 옆 좌석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페의 이런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 카페 손님은 의외였습니다. 나중에 식구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들도 카페에 초등학생이 간혹 출몰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과거의 기준을 마음에 두고 살게 마련입니다. 30년 전에는 그게 불편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게 천천히 변했으니까요. 오래된 기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자라나는 세대들이 기성세대의 경험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접했습니다. 그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IT기기가 고속으로 진화하는 시대. 스마트폰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PC시대에 자란 아이들과 사고체계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초등학생 때 어디가서 놀았냐고 물어보면 PC방에서 게임하던 기억을 말합니다. 지금 초등학생들은 다른 유혹이 없다면 게임을 하기 위해 PC방에 꼭 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카페처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주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빌딩이 생기면 어김없이 들어서는 것이 프랜차이즈 카페입니다. 또 골목마다 생기는 게 작은 카페입니다. 커피만 하더라도 종류를 나열하기에 메뉴판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산 원두커피가 이름을 알 수 없이 수두룩합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밖에 익숙하지 않지만 대학생들은 좋아하는 커피를 다양하게 주문합니다. 

대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은 카페에서 요기를 거뜬히 해결합니다. 이미 카페는 커피 집을 넘어선 지 오래됩니다. 아이스크림, 빵과 과자류, 팥빙수, 각종 음료수를 다양하게 진열해 놓고 있습니다. 쓴 커피 맛을 알 것같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도 먹을 것이 많습니다.

이런 먹을거리도 초등학생을 쉽게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겠지만 어떤 카페는 그들을 불러들이는 감성적인 유혹의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하는 대학생부터 수다를 떠는 아줌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있는 카페 분위기에 초등학생들이 어울려보고 싶은 호기심은 아닐까요. 그래도 카페에 출입하기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진화한 카페 분위기에 익숙한 젊은 부부들은 초등학생 자녀들의 카페 출입을 어두컴컴한 PC방 가는 것보다 관대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카페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세월은 참 빠르게 흐르고 라이프스타일도 급속히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밀레니엄 21세기”를 떠들어 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7년이 지났습니다. 2000년에 태어난 청소년이 내년이면 대학생이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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