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예견 속의 불안, 미 금리인상
2017.03.13
소설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자신들을 우리에 가두었던 농장을 무력으로 점령한 동물들 중 돼지들이 특권층을 형성합니다. 혁명 전 평등을 강조하며 내세웠던 여러 행동강령들이 불편해지자 이를 수정하여 ‘동물은 다 평등하지만 일부는 더 평등하다’라는 길이 남을 명언 하나로 압축합니다. 미국의 금리가 이번 주 오른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나라마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는 각 나라의 경제 사정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니 이번 인상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그런데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은 동물농장 돼지의 경우와 같이 다른 인상보다 더 평등하다 할 수 있습니다. 동물농장 독재자 나폴레옹식 어법으로 말하면 미국 경제가 더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주택금융시장의 문제로 미국이 위기에 빠지자 세계경제도 뒤를 따랐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인상이 주목받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첫 번째는 오랜만에 인상된다는 것입니다. 2008년 말 미국의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0~0.25%로 내려간 미국의 정책금리는 2015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얼어붙었던 미국 경제를 해동하는 데 미국 사상 초유의 0% 금리만으로는 부족하자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시장에서 국채를 대량 매입하며 돈을 푸는 일(양적완화)까지 큰 규모로 벌였습니다. 점차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2014년 말 양적완화가 종식되고, 이어서 정책금리도 0%를 벗어나는 것이 다음 순서였습니다. 양적완화 종식 직후인 2015년 초부터 정책금리가 꽤 신속히 0% 괘도를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에 물가와 함께 고용상황이 중요한데 그 사이 뚜렷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2010년 거의 10% 가까이 치솟았던 실업률이 점차 개선되며 2014년에는 6%, 이듬해에는 5%대로 낮아졌습니다.2008년 이후의 적극적 대응책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불경기가 지속되어 혼이 난 중앙은행은 고용사정 개선에도 불구하고 회복세가 확실히 뿌리를 내렸는지 확인하려고 노심초사 금리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5년 말에 드디어 0.25% 인상합니다. 일단 시작되었으니 2016년에는 소폭의 후속 인상이 몇 차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실제 실업률은 2016년 중 조금씩 낮아지며 연간 평균이 4.9%까지 내려갔지만 기대와 달리 12월에야 0.25%의 인상이 한 번 이루어집니다. 고용과 더불어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에 대한 책임이 큽니다. 미국의 경우 연간 소비자물가증가율, 혹은 인플레이션이 그림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2%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경기 급락으로 2009~2010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값을 보이자 이런 추세가 일본에서처럼 장기화되어 디플레이션(負의 인플레이션)이 자리 잡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물가는 연 2% 정도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2017년의 고용과 임금 자료가 계속 양호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정책금리 인상의 조건이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온 세계가 미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결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의 금융시장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주식시장 월가(Wall Street)의 높은 지명도는 설명이 필요 없고, 미 달러화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 통화입니다. 미국의 금리는 달러화의 대차(貸借) 가격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좀 과장한다면 다음처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자금은 마치 배추나 반도체와 같은 표준화된 물건과 같습니다. 나라들 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자유롭다면 국제적으로 물건 값은 비슷해집니다. 그 비슷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제일 큰 도매시장의 영향력이 클 것입니다. 미국이 그런 큰 도매시장입니다. 이번 인상의 잠재적 영향력이 큰 것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공언하는 정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금을 낮추면서 사회간접자본투자와 국방비지출을 늘리겠다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수입은 줄고 지출이 늘면 국채를 발행해서 투자자로부터 돈을 빌려야 합니다. 이런 자금 수요가 커지면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단기 정책금리와도 성격이 좀 다른 장기 시중금리가 오르며 전체적인 금리상승추세가 자리 잡게 됩니다.금융시장이 외국투자자금에 더 개방된 나라일수록 미국 금리상승이 국내금리 상승압력 요인이 됩니다. 미국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자금이 미국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자금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 대응책이 될 수 있습니다. 혹은 국내 금리는 낮지만 향후에 환율이 변해서 나중에 투자자금을 회수할 때 환차익이 금리가 낮은 것을 보상하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작용이 있는 선택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금리인상과 같은 외부충격을 좀 완화하는 한 방도로 한국은행이 중기적 관점에서 채택한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좀 더 높게 잡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이 목표 물가상승률을 설정하고 있지만 왜 꼭 2%인가는 확실치 않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경제 부진이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입니다. 대신 그 목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물가상승이 목표를 넘어설 때 정책금리를 주저없이 인상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 입장에서 주변 상황이 좀 피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거 세계경제가 활황일 때도 많았습니다. 작금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도록 중지를 모을 때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