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넘치는 세상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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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가 넘치는 세상

2017.03.10

오래된 미디어 이론 중에 의제설정(Agenda-Setting) 이론이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의제가 공중, 즉 대중에 회자되는 의제로 발전한다는 이론입니다. 맥스웰 매콤과 도널드 쇼(Maxwell E. McCombs & Donald L. Shaw)가 1968년 미국 대선 때, 노스캐롤라이나의 채플 힐(Chapel Hill)지역에서 미디어가 다룬 중요한 대선 이슈가 대중에게도 그대로 중요하게 인식되더라는 사실관계를 증명하면서 꽤 중요한 미디어 이론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이론을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하면 미디어를 장악하면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과거 1980년대 언론 통폐합을 통해 미디어를 장악하고 이른바 ‘땡전뉴스’의 시대를 연 전두환 정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 관제 언론에 대해 대중은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통해 분명한 의사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이러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디어가 생산하는 뉴스의 상당 부분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거대 권력의 비리를 고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혹여 그런 시도가 있었어도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당시 TV 방송사는 KBS, MBC 두 곳, 신문사는 4대 일간지 정도만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언론기관이었으니 6개 정도의 언론만 장악하면 날아가는 참새를 제비라고 말해도 대중이 믿게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는 매체가 PC와 휴대폰으로 바뀌면서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영상을 촬영해서 매체에 올리는 일은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와 프로듀서 같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자신의 SNS계정이나 유튜브(youtube) 같은 개방형 플랫폼에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미디어의 공급자와 수용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역의제설정(Reversed Agenda-Setting)’ 같은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에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되어 주요 언론사에서 기사화됐던 지하철 개똥녀 사건이 역의제설정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당시 지하철에서 반려견이 싸 놓은 분변을 치우지 않고 무심하게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던 사건입니다. 의제설정과 역의제설정은 의제를 제시하는 주체가 주요 언론 매체인가 아니면 일반 대중인가에 의해 구분됩니다. 일반 대중이 설정한 의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주요 언론 매체에 소개되는 경우 즉, 의제설정과 반대되는 흐름으로 전개되는 경우를 역의제설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10여년 전에 역의제설정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의제설정의 객체인 뉴스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수많은 뉴스를 보면 출처가 어디인지 누가 취재를 했는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기사가 많습니다. 그리고 뉴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팩트(fact)가 제대로 체크되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이른바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짜뉴스가 역의제설정 과정을 거처 주요 언론사에서 다뤄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보통의 경우, 주요 언론사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과정을 거쳐 기사의 사실관계를 여러 차례 확인합니다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인이 인터넷에 기사 형식으로 올라온 가짜뉴스를 인용하는 경우엔 속수무책이 됩니다. 

대선 후보인 안희정 지사가 지난 1월 12일, SBS 라디오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현재 (반 전 총장 후임으로) 취임한 유엔 사무총장은 반 전 총장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명백하게 유엔 정신과 협약의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대에서 7대까지 모든 사무총장은 이 협약을 따랐다."고 말했다가 사실관계를 뒤늦게 확인하고 정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금지는 법적으로 규정화 돼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안희정 지사는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가짜뉴스를 보고 이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인 것은 실수를 바로 인지하고 정정했다는 점입니다.

가짜뉴스는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최근 스탠퍼드 대학에서 미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능력을 조사했는데 80%의 학생이 진짜와 가짜뉴스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뉴스의 형태를 한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광고, 캠페인, 정치적 선동 등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정보와 주장들이 뉴스의 형태로 미디어 소비자에게 전달됩니다. 이들이 뉴스 형태를 빌리는 이유는 자신의 주장에 신뢰도를 높이려는 꼼수입니다만 대중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또 그러한 능력이 있더라도 일일이 진위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짜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 데에는 기존 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신문의 전면광고는 비록 지면의 좌우측 상단에 전면광고라고 작게 고지되어 있어도 기사인지 광고인지 헛갈리게 작성된 경우가 많아서 대다수의 독자들은 기사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읽게 됩니다. 방송사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버라이어티 정보 프로그램의 경우 대여섯 개의 코너로 구성이 되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이른바 협찬 프로그램입니다. 예를 들어 노화를 예방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항산화 작용을 하는 아로니아가 소개되는 경우, 매우 젊어 보이는 한 중년 탤런트가 출연해서 아침마다 아로니아 가루를 물에 타서 복용하는가 하면 밥을 지을 때에도 아로니아 가루를 섞어서 짓습니다. 그러면서 "제 젊음 유지의 비결은 아로니아예요."라고 말합니다. 결국 아로니아 광고를 프로그램의 성격을 빌려서 하는 것인데, 채널을 돌리면 홈쇼핑에서 아로니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제품 광고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신문사나 방송사나 경영이 악화되면서 돈을 위해 자신의 고유영역 중 일정 부분을 협찬 제공사에게 넘겨준 셈인데, 미디어 수용자들이 이렇게 교묘하게 위장한 가짜뉴스와 가짜프로그램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습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주요 신문사나 방송사의 경우 아직까지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기사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로니아가 항산화 작용을 한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주장을 펴는 경우가 최근에는 너무 많아졌습니다. 특히 흑색선전이 만연하는 정치뉴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에서 유통된 가짜뉴스를 몇 개 살펴보면,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성명을 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IS에 무기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등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었는데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 없듯이 힐러리는 떨어지고 트럼프는 당선됐습니다. 이런 가짜뉴스가 회자되고 나면 가짜뉴스에 살이 붙으면서 더 큰 가짜뉴스가 생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국책(戰國策)의 진책(秦策)에 증삼살인(曾參殺人)이 나옵니다. 공자의 제자로 효성이 지극한 증자(曾子)가 살던 곳에 동명이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살인을 했습니다. 동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曾參殺人).”고 말하자 처음에는 자기 아들이 아닐 거라고 여겨 편안하게 옷감을 짰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같은 얘기를 했는데 그때도 증삼의 어머니는 믿지 않고 옷감을 짰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자 당황하면서 정말 아들이 사람을 죽인 것으로 여겨 문밖으로 나가서 사실인지를 확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삼인성호(三人成虎)가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공급하는 언론사만 600여 개가 된다고 합니다. 언제 이렇게 언론사가 많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치게 많은 뉴스 공급원이 난립하니 과도한 경쟁으로 기사의 클릭 수에 양심을 파는 경우가 허다해지고 언론인으로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뉴스공급자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사실처럼 퍼뜨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SNS를 통해 ‘~카더라’라는 이야기가 퍼지게 되면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 확인 없이 유포되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버렸습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의 가장 큰 이슈는 가짜뉴스 타파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의 악영향을 지켜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움직입니다. 프랑스 공영 AFP통신이 오는 5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해 구글의 후원을 받은 프로젝트 기구 '크로스체크'(CrossCheck)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가짜뉴스는 이제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과 배경엔 포털과 SNS로 재편된 미디어 체계의 변화가 있습니다. 뉴스를 접하는 창구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SNS망으로 변하면서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을 거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낮에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판결이 내려집니다. 결과가 어찌 내려지든 흔들린 나라를 다시 세우고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가짜뉴스에 대한 단호하고 지속적인 근절 의지를 온 국민이 가져야 하고, 변화된 미디어 체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견제장치가 필요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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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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