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꿈을 현실로..."항공기 설계·초정밀수술법 개발"


VR "꿈을 현실로 바꾸다"


게임으로만 보지말라

가상 자동차 사고 실험때

멀미가 날 정도의 충격

실제상황 수준으로 발전

상상력이 경쟁력이다


한국 VR체험관 가보면

엔터테인먼트만 수두룩

산업 적용 등 시야 넓혀야


   가상현실(VR) 안경을 쓰자 눈앞에 오렌지주스를 만드는 커다란 공장이 나타났다. 병을 세척하고 주스를 넣은 뒤 뚜껑을 닫는 모든 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장 라인 건너편에 빈 공간이 보였다. 물량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라인 증축을 요구했다. 곧바로 눈앞에 새로운 라인이 만들어졌다. 프랑스 파리 남서쪽의 작은 도시 벨리지. 이곳에 위치한 프랑스 기업 다쏘시스템 본사에는 이처럼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가상현실 속에 만들어 놓은 항공기 내부를 사람들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모습. 항공사들은 일반인들의 반응을 파악한 뒤 비행기 내부 설계를 시작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다쏘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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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VR 체험방'이 아니다. 아르노 말레르브 다쏘시스템 PR디렉터는 "오렌지주스 공장은 VR지만 프랑스에 있는 실제 기업의 공장 라인과 똑같다"며 "그 기업은 VR 속에서 라인을 설계하고 공장을 증축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했다"고 설명했다. 버튼을 누르자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콩코드 광장이 나타났다. 


VR 속에서 순간이동은 불가능하지 않다. 광장 한가운데는 프랑스 자동차 제조 기업인 시트로엥이 만든 'D3'가 놓여 있었다. VR 속에서 차량의 색은 물론 헤드라이트 모양까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조이스틱 버튼을 누르자 빠른 속도로 차량이 움직였다. 전속력으로 달려 광장 벽에 부딪치니 멀미가 날 정도의 충격이 기자에게 전달됐다. 눈이 보낸 정보를 통해 뇌는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정작 다리는 가만히 있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무인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모습. 실제 사람과 똑같은 가상의 사람을 태워 자동차를 디자인한다. 

가상 자동차 충돌실험으로 탑승자 부상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 [사진 제공=다쏘시스템]


말레르브 매니저는 "시트로엥은 실제 자동차 충돌실험을 다쏘시스템의 가상현실을 이용해 테스트했다"며 "차량 재료의 물리적 성질을 입력하면 얼마나 파손되는지, 차량에 탑승한 사람은 어떤 피해를 입는지 등을 실제와 동일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절약된다. 


지구가 가득 찼다. 인구는 70억명을 넘어섰고 도시는 건물과 사람들로 숨 쉴 틈조차 없다. 물리적인 공간은 한계가 있다. VR는 다르다. 무한한 사이버 세상에 인간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만들어 넣을 수 있다. 


VR 기술 벤처기업인 폴라리언트의 장혁 대표는 "현재 디스플레이, 컴퓨터 분석 기술 등의 발달과 함께 VR가 다양한 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며 "단순히 게임뿐 아니라 의료를 비롯한 전 산업에 VR가 적용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가상현실과 관련한 게임, 체험방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프랑스는 VR를 전 산업으로 확장시켰다. 다쏘시스템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총 16개의 3D, 시뮬레이션 회사를 인수해 자동차 및 항공기 제작에 사용됐던 설계 프로그램인 '카티아'와 연계하기 시작했다. 


다쏘시스템은 VR 속에 싱가포르를 옮겨 놓은 뒤 도시 효율화 작업을 시작했다. 인간의 심장과 혈관을 그대로 모방한 VR 속에서는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북극에 있는 빙하를 아프리카로 끌고 와 물부족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2010년께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엔지니어, 과학자 등 200여 명의 전문가가 매달렸지만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쏘시스템은 가상현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실험을 재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최적의 방안을 찾으면 실제로 빙하를 끌어오는 작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가상 세계는 더 이상 공상과학(SF)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3D 가상현실을 통해 그들이 설계한 콘셉트와 운용 절차를 테스트하고 소비자들은 실제와도 같은 상황에서 제품을 시험한다. 


서명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건설 분야에서 VR를 활용하면 공기 단축은 물론 도면으로만 봐야 했던 건축물을 일반인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며 "VR 활용 기술은 이제 막 시작됐는데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만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가전업체 밀레는 지난해 VR에서 세탁기를 개발했다. 디자이너가 세탁기를 디자인한 뒤 이를 VR에 띄워 놓는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물론 라인 설계자, 마케팅 업무 담당자들이 물리적인 공간 제약 없이 VR 속에서 만나 제품을 논의한다. 기존에는 디자인이 끝나면 제조라인 설계, 이후 테스트 제품 생산 등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쳐야만 했다. 세탁기가 갖고 있는 재질과 전자부품 등의 특성을 입력하면 실제 작동할 때 얼마나 큰 진동이 발생하는지도 V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의 테슬라로 꼽히는 미국의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패러데이 퓨처'는 지난해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에 시제품 'FF제로1'을 선보였다.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뒤 6개월 만의 결과물이다. VR에서 설계를 했기에 가능했다. 삼성SDI,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기업들도 다쏘시스템의 디지털 공장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VR 내에 가상 공장을 만들었다.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에 거쳐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장비 도입이나 작업 프로세스 수정 없이 최고의 품질을 개발할 수 있는 데이터를 선택한다. 


전문가들은 2010년 3D TV 개발로 시작됐던 VR 산업이 기대와 달리 사라졌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설명하반신이 마비된 환자가 가상현실을 비롯한 외골격 로봇을 이용해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10개월간 훈련한 끝에 이 환자는 운동능력이 향상됨은 물론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다. [사진 제공=사이언티픽 리포트]


서영배 수석연구원은 "당시 VR를 단순히 콘텐츠를 꾸미는 것으로만 생각했기에 산업이 크지 못했다"며 "VR를 지원할 수 있는 기술력이 과거와 비교해 성장한 만큼 시야를 넓혀 다양한 산업에 적용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은 "VR 속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거침없이 성장한다"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쥐고 있는 자가 새로운 세상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벨리지(프랑스) = 원호섭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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