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의 숨은 배경"


조형래 산업2부장 조선일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 5월 무렵,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게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삼성이 아버지 시절 비약적인 성장을 한 데 대한 찬사보다도 순환출자 구조를 이용해 계열사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해왔고 한국 사회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목소리가 이 부회장에게는 더 크게 들렸던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가까운 사람들에게 "(LG그룹처럼) 완전한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것은 힘들겠지만 순환출자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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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은 확장 지향적이고 매사에 거침이 없었던 아버지와 달리, '삼성의 나라' '삼성공화국' 같은 비판에 기겁했다. 해외 언론에서 "한국 사람들은 삼성 래미안 아파트에서 삼성 스마트폰의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삼성 냉장고에서 아침을 꺼내 먹고 삼성 자동차를 타고 출근해 삼성 PC를 켜며 일과를 시작한다…"는 유(類)의 기사를 보면 질색을 했다고 한다. 사업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는 암 2기, 삼성중공업은 영양실조" "삼성의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는 식의 충격 발언으로 끊임없이 임직원들을 채찍질하며 전(全) 계열사를 끌어왔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챙길 여력도 없고 제대로 경영할 수도 없는 회사를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은 경영자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삼성의 비(非)주력 계열사들을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삼성종합화학이나 삼성토탈 같은 알짜 계열사마저도 한화그룹으로 헐값에 넘겼고, 삼성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하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이나 광고회사 제일기획도 매각하거나 매물로 내놨다. 1등 삼성에서는 과거 상상할 수 없는 계열사 매각과 구조개편에 대해 내부에서는 "독설(毒舌)로 임직원들을 닦달했던 이건희 회장보다도 이재용식 글로벌 스탠더드가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직원 30만명이 넘는 다국적 기업으로 변한 상황에서 과거의 일사불란함을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최근 특검 수사의 단초가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도 크게 보면 이런 배경하에서 진행된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 산정 때 주가만을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삼성물산의 프리미엄을 더 인정했더라면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사태는 막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면서도 "두 회사의 합병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며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항변한다.


삼성의 항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삼성전자나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단순히 지분 몇 퍼센트를 더 갖고 있다고 해서 경영권 승계가 더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율이 삼성 대주주의 두 배도 넘는 데다 블랙록 같은 세계적인 펀드가 주요 주주이다. 스마트폰 한 모델만 망쳐도 회사 전체가 흔들리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오너라고 해도 실적이 나쁘거나 임직원들의 신뢰를 잃으면 똑똑한 주주들이 그냥 놔두지 않는다.

조형래 산업2부장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0/20170220028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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