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속의 촌철살인 [김홍묵]


www.freecolumn.co.kr

우화 속의 촌철살인

2017.02.17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우화를 읽고 들어 왔습니다. 우화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인간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우화는 도덕적 명제와 인간의 행동원칙을 예시해 주는 짧은 얘기 속에 강력한 경구를 던져 주는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BC 6세기 그리스의 이솝(Aesop)을 효시로 시작된 우화문학은 17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우화 작가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1695)에 이르러 전성기를 이뤘습니다. 오늘날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 이솝과 라 퐁텐의 우화 몇 토막을 되씹어 봅니다.

# 원숭이와 고양이

원숭이와 고양이가 한 주인 밑에 살았습니다. 원숭이는 무엇이든 훔치려고 했고, 고양이는 쥐잡기보다 치즈에 더 눈독을 들였습니다. 어느 날 식모아줌마가 화롯불에 밤을 묻어 놓고 잠시 자리를 떴습니다. 밤을 먹고 싶어 죽겠는데 불속의 밤을 꺼낼 방법이 없자 엉큼한 원숭이가 고양이를 치켜세웠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네 솜씨를 보여줄 때가 왔다. 발이 빠른 너라면 분명히 밤을 꺼낼 수 있을 거야. 하나님은 왜 내게는 그런 솜씨를 안 주셨을까?…”

우쭐해진 고양이는 칭찬을 듣고 뜨거운 재를 조심조심 헤쳐 겨우 밤 한 톨을 끄집어냈습니다. 옆에 있던 원숭이가 그 밤을 홀랑 집어먹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밤도 원숭이 몫이었습니다. 고양이는 화가 나서 원숭이와 옥신각신 다투었습니다. 이때 식모아줌마가 돌아와 야단을 쳤습니다. 둘은 허겁지겁 도망쳤습니다. 

라 퐁텐은 이 우화 마지막에 당시 국가 간의 각축을 빗댄 듯 이렇게 썼습니다.“대개 나라의 군주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역할을 혼자 맡으려고 하면 이익은 다른 왕에게 빼앗기고 골탕만 먹는다.”

# 늑대와 어린 양

어린 양 한 마리가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때 늑대가 나타나 내가 마실 물을 더럽히는 무례한 놈이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겁에 질린 어린 양은 온갖 변명을 하다가 ,스무 발자국 아래로 내려가서 물을 마시겠다고 사정했지만 늑대는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늑대는 어린 양에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작년에 내 욕을 한 놈이 너지?”

“작년에 아직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그럼 너의 애비나 형이나 너의 집 식구들 중 한 놈이 욕을 했겠지.”늑대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어린 양을 숲속으로 끌고 가 끝내 잡아먹었습니다. 

라 퐁텐이 살고 있던 당시는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전성기였습니다. 그 위세를 빌린 귀족과 승려들의 횡포도 극심했습니다. ‘가장 강한 자의 말이 가장 옳다’는 말로 결론지은 이 우화는 봉건시대 지배자의 압정에 시달리는 민중의 상황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사슴과 물거울

사슴 한 마리가 샘물에 비친 자기의 탐스러운 뿔을 바라보다가 낚싯대처럼 가느다란 두 다리가 눈에 들어오자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때 별안간 자신을 노리는 사냥개가 나타나 덤벼들었습니다. 사슴은 황급히 숲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아름답지만 무거운 뿔이 자꾸 나뭇가지에 걸려 방해가 됐지만, 밉게 생각했던 다리의 힘으로 사슴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제야 사슴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보기 싫은 다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눈을 팔고 이로운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세상사이지만, 그 아름다운 것이 가끔 우리의 원수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빛나는 모든 것이 반드시 황금은 아니다'라는 교훈입니다.

당시 루이 14세의 왕비는 그 미색과 권위가 천하에 떨쳤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권세의 자리에 앉은 자가 남의 눈에는 호화찬란한 생활을 하면서 행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비애와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간절하게 호소한 글귀가 있습니다. 라 퐁텐은 그 공허감을 사슴의 뿔로 표현했습니다.

# 쥐들의 회의

로테랄주스라는 고양이가 하도 많은 쥐를 잡아 죽이는 바람에 견디다 못한 쥐들은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이 나왔지만 결국 장로격인 쥐의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장로 쥐의 의견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것이었습니다. 고양이가 나타날 때엔 방울소리가 날 것이니 방울소리를 듣고 모두 피하자는 것입니다.

모두들 묘안이라 박수를 치며 그 의견에 찬성했지만 문제는 실행 방법이었습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 하는 것입니다.

“난 못해, 그러다가 잡아먹히게.”

“나도 안 해, 바보같이 그런 짓을 왜 해.” 

결국 모든 쥐들이 회의장을 떠나 버렸습니다. 입으로만 민생 안보를 외쳐 봤자 실행 방법이 없으면 헛짓입니다. 헛소리만 늘어놓는 장로 쥐가 아무리 많아도 평화와 행복은 멀다는 라 퐁텐의 교훈입니다.

# 농부와 여우와 늑대

쟁기질을 하는 소가 말을 듣지 않고 삐뚤빼뚤 설치는 바람에 곧은 이랑이 하나도 없자 화가 난 농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못된 놈의 소야! 너를 늑대에게 주어버리겠다. 네놈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마침 지나가던 늑대가 이 소리를 듣고 밭 갈기를 끝낸 농부에게 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미친놈이 있나, 내 소가 어떻게 네 것이냐?”

농부는 펄펄 뛰었고 늑대도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싸움이 끝이 없자 둘은 재판관을 찾기로 했습니다. 떠돌이 여우가 그곳을 지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다투느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여우에게 일의 전말을 설명했습니다.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재판관이오.”

이렇게 자청한 여우는 농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줄 테니 나와 내 아내에게 닭 한 마리씩을 주겠소?”

농부는 여우가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우는 이번에는 늑대를 따로 불러 농부가 당신을 쫓아주면 나에게 엄청나게 큰 치즈를 주겠다고 했다며 그 치즈를 보러 가자고 꼬드겼습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면 당연히 보답을 하시겠지? 그 치즈를 보고 싶으면 날 따라오세요.”

여우와 늑대는 함께 떠났습니다. 드디어 둘은 달밤에 한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늑대 친구, 저 우물 바닥에 있는 멋진 치즈를 보라고. 우리가 치즈를 반씩 가집시다.”

우물 속에 반사된 달은 둥글고 아주 멋진 치즈였습니다. 여우가 늑대에게 우물 속 치즈를 가져오면 된다고 했지만 늑대는 의심이 났습니다.

“그런데 치즈가 너무 커서 혼자 들고 올 수 없겠군. 네가 먼저 내려가면 내가 뒤를 따르지.”

여우가 도르래에 걸린 밧줄 끝에 달린 두레박 두 개 중 하나를 타고 먼저 내려갔습니다.

“이거 치즈가 너무 무거워 들어 올릴 수가 없군. 늑대 친구, 나 좀 도와 줘요”

늑대가 다른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자 가벼운 여우가 탄 두레박은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늑대는 아직도 우물 속에 갇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 당나귀와 여우와 사자(이솝)

한마을 친구 사이인 여우와 당나귀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자고 약속했습니다. 둘은 어느 날 숲속을 가다가 사자와 맞닥뜨렸습니다. 당나귀는 친구인 여우를 지키려고 싸울 태세를 갖췄습니다. 그러나 여우는 사자 앞으로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사자님, 저를 살려 주신다고 약속하면 저 당나귀를 사자님의 먹이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덩치 큰 당나귀 사냥이 힘들다고 생각한 사자는 일단 여우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여우는 당나귀에게 사자로부터 숨겨 주겠다고 감언이설로 속여 깊은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사자에게 당나귀를 잡아 드렸으니 자기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사자가 여우에게 달려들며 호령했습니다.

“자기 친구를 함정에 빠뜨려 죽게 만드는 배신자 놈과의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어!”

결국 꾀 많은 여우가 당나귀보다 먼저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희곡 <심벨린 Cymbeline>에서 '배반당한 자는 배반으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되지만, 배반자는 한층 더 비참한 상태에 놓여지게 마련'이라고 한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