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5분, 퇴원 2시간 - 응급실 12시간의 악몽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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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5분, 퇴원 2시간 - 응급실 12시간의 악몽

2017.02.13

열흘 전이었습니다. 두부김치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오붓하게 아내와 저녁을 먹고 나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오른쪽 등허리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생소한 통증이라 긴장되긴 했지만 ‘이러다 말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는 통증의 강도가 더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참다못해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자리에 누웠지만 통증은 더 심해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되어갑니다. ‘아, 내가 이 밤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불과 한 시간 전에는 등이 아프다는 필자를 보며, “에구 엄살은, 애 낳을 때는 얼마나 아픈지 알아? 하여튼 남자들은 아픈 거 참는 거는 참 못해.”라며 핀잔을 주던 아내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필자의 상태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내 친구의 남편은 유정우라는 비뇨기과 의사인데 필자와도 알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유 원장은 밤사이 진통을 좀 참아내고 내일 아침 일찍 자신의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밤사이 통증이 심해지면 집 근처 큰 병원의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도 고려해야 할 거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밤중에 아파서 응급실에 가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을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응급실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정말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에는 응급실 구석에서 침대가 나길 기다려야 하고 다행히 침대를 확보해도 밤중에 의사선생님을 만나려면 최소한 한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는 날이 밝아서야 받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통증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어서, 결국 밤 12시 30분 아내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이제 병원에 도착했으니 이 통증이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안도감이 통증을 더 무섭게 키우는 역할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속된 말로 ‘정신 줄을 놓으니’ 그 무시무시한 요로결석의 통증이 엄습해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의 기억은 매우 가물가물합니다. 일반적인 진통제로는 통증이 완화될 기미가 없자 모르핀이 투여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르핀이 투여되어도 한동안 통증은 계속되었고 결국 한 번 더 모르핀 처방을 받고 나서야 통증이 눈곱만큼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로 간신히 가라앉힌 통증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어쩔 줄 몰라 할 때, 젊은 당직의사가 찾아왔습니다. 

“요로결석인데, 교수님이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 환자 스스로 결정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신마취를 하고 내시경 수술로 돌을 바깥으로 꺼내는 겁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약 기운으로 정신이 몽롱하고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치료할지 스스로 결정을 내리라니? 환자가 의사인가? 스스로 치료법을 결정하게?’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내가 “체외 분쇄하는 방법이 있지 않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수술이 됐든 체외 분쇄가 됐든 아침이 돼야 가능하니까. 아침에 CT결과를 보면서 교수님과 상의하라며 당직의사는 돌아갔습니다. 

약 기운에 잠을 자다가 통증이 몰려오면 깨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온다던 교수님은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오전 중에 오실 거라고 합니다. 밤 12시에 응급실에 실려 왔는데 아침 8시까지 수액과 진통제만 투여받고 정작 치료를 책임질 교수님은 언제 보게 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CT상으로 볼 때, 돌이 3.8mm 정도로 작은 데다 위치가 골반 뼈에 가리는 곳이라서 체외분쇄시술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백OO 교수님은 어떻게 아세요?” 아침 9시 30분쯤 당직의사보다는 조금 더 선배로 보이는 의사가 CT화면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백 교수님을 직접적으로 아느냐? 어떻게 아느냐 등등 정작 진료와 상관없는 질문에 더 힘을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백 교수님께 필자의 상태를 보고해야 하니 두 분이 어떤 관계인지 알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유정우 원장이 필자의 상태를 백 교수에게 물어본 모양입니다. 결국 백 교수 덕택에 조금 더 일찍 의사의 설명을 듣게 된 셈입니다. 

대한민국의 고질병 중 하나는 엘리트 집단일수록 ‘빽’이 있으면 일처리가 매우 매끄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길거리 구두 수선점에서 “나 아무개인데 내 구두 먼저 닦아줘.”라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텐데, 병원이나 관공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길거리에는 넘쳐나는 도덕이 엘리트 집단의 문턱은 못 넘어가고 있으니 염병할 일입니다. 특검에 출석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최순실에게 “염병하네!”라고 일갈한 분은 청소 노동자였습니다. 그리고 최순실에게 온갖 특혜를 주고 같이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청소 노동자는 감히 올려다보기도 어려운 지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 있지 말고 빨리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 대학병원에서 필자에게 계속 전신마취를 하고 내시경 수술을 하자고 권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CT 화면을 확인한 유 원장이 충분히 체외 분쇄로 결석을 빼낼 수 있으니 지체 없이 자기 병원으로 오라고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원은 5분도 안 걸린 응급실이 퇴원은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퇴원 확인서에 교수님의 사인이 필요한데 교수님이 바쁘시다는 겁니다. 밤새도록 만나고 싶었지만 결국은 못 만났던, 그래서 진료도 받아보지 못한 교수님의 사인을 기다리며 아픈 배를 부여잡고 두 시간을 넘게 퇴원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는데 몸이 불편한 필자는 따질 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험처리에 필요할 것 같아서 받은 입·퇴원 확인서에는 ‘상기 환자는 요관의 결석으로 2017년 2월 1일 입원하여 수액 치료 후 특별한 합병증 없이 경과 호전하여 2017년 2월 1일 퇴원함. 합병증, 병발증 및 미발견증 발견 시 추가적인 진단을 요함’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확인서의 맨 아래에는 본 적도 없는 교수님의 이름과 사인이 있었습니다. 진료 소견만 본다면 필자는 치료가 끝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퇴원 당시 결석은 여전히 요관을 막고 있어서 근본적인 치료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경과 호전하여 퇴원을 시켰다니 ‘이렇게 쉬운 장사가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 받기를 원해서 수액과 진통제로 통증을 완화해 준 다음 퇴원조치를 하였음’이라고 명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학병원의 자존심 때문에 입퇴원 확인서 작성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생길지도 모를 분쟁에 대비해서 서류상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중에 보험사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경과 호전하여 퇴원함’이라는 문구를 보며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만 12시간을 대학병원서 별다른 조치 없이 시간을 보내고 유정우 원장이 운영하는 비뇨기과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결석의 크기는 6mm 정도로 응급실에서 얘기한 크기보다 훨씬 컸습니다. 치료를 받으니 정말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요로결석은 치료 전과 후가 천지차이라는 것입니다. 죽을 듯이 아프다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것이 이 병이었습니다. 그러니 응급실에서 밤새 아팠던 경험이 너무 억울한 겁니다. 그리고 또 화가 나는 것은 이렇게 쉽게 체외분쇄술로 치료가 되는데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후, 사흘 동안 입원할 뻔 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요로결석으로 평생 처음 대학병원 응급실을 경험하면서 생긴 질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왜 심야에는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대증요법으로 시간만 보내게 하는 걸까요? 밤새도록 환자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환자의 가족은 그 모습을 보며 노심초사하는데 그 고통스런 시간을 줄여 줄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요? 

둘째는, 왜 내시경 수술을 권했을까요? 요관으로 직접 수술도구를 삽입해서 돌을 꺼내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회복을 위해서는 사흘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는데 환자의 시간과 편의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체외분쇄 같은 쉬운 시술을 먼저 시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학병원 의사의 기술이 동네 병원 의사보다 못하기 때문은 아닐 텐데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드는 방법을 고집한 속내가 따로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필자의 응급실에서의 경험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죽을 만큼 아프게 놓아뒀다가 환자가 “어떻게든 빨리 치료해주세요.”라고 말하게 해서 병원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수술동의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보수를 많이 받는 이유는 자신들이 공부를 많이 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여가 크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필자와 건강보험공단이 응급실 비용으로 백만 원에 가까운 돈을 낸 이유는 고급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인데 그들은 너무 쉽게 그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수술을 권했습니다. 필자가 의료지식이 전혀 없고 주변에 아는 의사가 없었으면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누웠을 겁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좇느라 약자를 수탈한다면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되지 못합니다. 유기적으로 서로 얽혀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떳떳하게 돈을 버는 방법은 ‘자신이 번 돈만큼 세상을 이롭게 한 대가’로 돈을 벌게 될 때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많이 배우고 높이 올라간 사람들일수록 그러지 않는 것 같아서 참으로 답답합니다.   

그날 밤 필자의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잠을 설쳤을 텐데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인내해 주신 옆 침대 환자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부실한 남편 때문에 밤새도록 창가에 앉아서 떨면서 간호하느라 정작 남편은 멀쩡해졌는데도 일주일 동안 몸살을 앓은 아내에게도 고맙고 미안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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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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