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포레의 엘레지 Gabriel Faure 'Elegie': VIDEO


Gabriel Faure 'Elegie'

 

예술관에 대한 차이로, 아니 어쩌면 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합의나 일치를 이루지 못했을 것 같은 두 음악가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와 요하네스 브람스 이야기다. 실제로 당대의 청중과 비평가들은 바그너파와 브람스파로 서로 갈라져 격렬하게 논쟁하고 또 싸웠다. 


그러나 이 위대한 두 작곡가는 정확히 딱 한 지점에서는 일치했다. 그들은 보불전쟁을 전후로 일어난 민족주의의 열기 혹은 광풍에 편승하여 ‘독일 민족의 위대한 승리’를 찬양하는 작품을 여럿 써냈다. 물론 두 사람이 남긴 관련 음악 중에 지금도 연주되는 작품은 단 한 곡도 없다. 정복 전쟁을 찬양하고 게르만 민족의 위대한 승리를 소리 높여 부르짖었던 그 주제의 천박함이 음악적 완성도까지 심하게 해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을 선포하는 빌헬름 1세)


보불전쟁(Guerre franco-allemande de 1870), 즉 당대 유럽 최고의 강대국 프랑스와 독일의 신흥 강국 프로이센 간에 일어난 전쟁에서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은 영원한 유럽의 자존심 프랑스를 무참히 꺾는다. 그러면서 독일 내에는 ‘게르만 민족주의’가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때는 1870년 7월이었다. 프랑스는 당시 급부상하던, 심지어 오스트리아 제국마저 패퇴시켰던 북독일의 신흥강호 프로이센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누구나 프랑스가 이길 줄 알았다. 당시 프랑스의 유력지 <르 피가로>는 아예 승전이 확실시 된다며, 전선의 병사들에게 보낼 담배와 브랜디 모금운동을 펼치는 등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전쟁은 프랑스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고, 베르사유 궁전 내에서 제2 독일제국이 선포되었다. 


프랑스는 좌절하고, 독일인들은 열광했다. 보불전쟁의 기획자 비스마르크는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들의 정복 전쟁은 ‘부패하고 유약한 프랑스에 대한 고결한 독일정신의 승리’로 미화되었다. 


그러나 그건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전쟁은 그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작업이며, 전쟁은 전쟁일 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은 작곡가가 있었다. 보불전쟁의 그 참혹한 ‘죽음의 진흙탕’ 속에서 영혼에 깊숙한 상처를 입었던 프랑스의 가브리엘 포레였다. 


포레는 보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운명적인 이 전쟁에 참전했다. 전장에서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전쟁에는 단 한 톨의 낭만도 존재하지 않음을. 전쟁이란 그저 파괴와 살육의 연쇄일 뿐임을. 전장에서 돌아온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전쟁은 예민한 그의 지성과 영혼을 파괴했고, 그는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된다. 


(포레 <엘레지>, 첼로 쟈클린 뒤 프레, 피아노 제럴드 무어)


그래서일까, 포레의 음악은 그리고 포레의 슬픔은 언제나 ‘개인적’인 태도로 가득 차 있다. 그건 전쟁터에서 느꼈던 그의 공포와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 있을 것이다. 반전이나 세계평화주의 같은 거대한 이념이나 주장을 펼치기 전에, 실존적인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우선은 슬프고, 아프며, 또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레는 항상 자신의 슬픔을 내밀한 고백록처럼 조심스레 펼쳐보이곤 했다. 


(가브리엘 포레, 1845 – 1924)


포레의 <레퀴엠>은 거창하지 않다. 엄숙하지도 않다. 슬프고 개인적이며, 심지어 유약하다. 그러나 그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준다. 전쟁은 포레의 세계를 파괴했고, 그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고요한 평화와 안온한 휴식을 끝없이 갈망했다.


 

(포레 <레퀴엠> 중 ‘Pie Jesu’(자비로우신 예수여), 카운터 테너 필리프 자루스키)


아버지의 죽음과 직면해 절절한 심정으로 <레퀴엠>을 써내려간 그 순간에도 그는 ‘진노의 날’ 같은 장엄한 형식미를 일부러 삭제하고, 오히려 평화와 안식의 음률만을 써내려갔다.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대한 지옥, ‘전쟁’을 이미 경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 이미 젊은 시절 영혼이 한번 죽어버렸던, 포레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선택지였는지도 모르겠다.


(포레 <레퀴엠> 중 ‘Libera me’(구원해주소서), 바리톤 다비트 비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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