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어디로 가고 있나 [김영환]



www.freecolumn.co.kr

언론은 어디로 가고 있나

2017.02.08

편파 보도가 문제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때 탄핵 반대를 적극 비호하여 학계에서도 비판을 받은 한국방송공사(KBS)가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론사 노조가 탄핵 운동의 핵심 세력인 민노총 산하라고 하더라도 탄핵 보도의 편파성은 너무 심해 ‘사실 전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언론의 사명을 잊고 있습니다. 후일 국내외의 언론학자와 정치·사회학자들은 ‘선 탄핵의결 후 죄목 엮기’ 같은 한국의 박 대통령 탄핵 재판 과정과 이와 관련한 한국 매스컴의 보도 양상을 꽤나 연구대상으로 삼을 듯합니다. 

지난달 29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해 굳은 동맹관계를 재확인했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국가 정상들에게 통화한 순서 중 손가락 안에 꼽힌 것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보루인 우방이 탄핵사태로 상황이 혼미해지는 것을 바랄 리가 없어 서둘렀을 것입니다. 매티스 국방장관이 취임 후 첫 순방국가로 한국을 고른 것도 동맹 강화의 굳은 의지의 표시라고 미 국방부는 말했습니다.

이날 MBC는 “황 권한대행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만나길 바란다며 긍정적으로 화답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강제 시청료를 징수하는 KBS는 무슨 이유인지 “탄핵 국면으로 당분간 정상회담이 어려워진 만큼, 한미 양국은 장관급 채널을 적극 가동해 북핵 문제 등에 대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라며 국무총리실의 보도자료에도 들어간 정상회담을 빼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설 직전 대통령이 지상파와 종편, 신문을 제쳐놓고 한국경제 주필이 활약하는 인터넷 매체인 정규재TV와 탄핵 후 첫 단독회견을 하자 “매스컴은 자살이냐, 타살이냐”라는 최근의 극단적인 언론 비아냥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언론사들이 받아쓸 수밖에 없었던 이 회견은 유튜브에서 200만 조회를 넘겼습니다. 대통령은 탄핵이 “오래 전부터 기획되었고 누군가가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거짓으로 산을 이루었다’는 표현도 썼습니다. 이는 한계를 모르고 증폭돼온 ‘~알려졌다’의 홍수 같은 기사들 때문이겠죠. 매체들은 탄핵을 기정사실화한 듯 ‘벚꽃 대선’ ‘빨라진 대선 시계’ 운운했고 예비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일 보도하여 국민들에게 ‘조기 탄핵 인용’을 세뇌하는 듯합니다. 

대통령이 무슨 유럽연합도 아닌데 최순실 씨와 ‘경제공동체’라고 쓴 것은 ‘국정농단’ 만큼이나 가공할 조어의 공격 프레임으로 보였습니다. 특파원도 없는 매체가 확인이 불가능한 독일의 사정당국을 빙자하여 최씨의 재산이 10조원, 독일에만 수천억 원이라는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죠. 2015년 포브스의 세계 갑부 순위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96억 달러로 112위입니다. 10조 원의 재산은 이 회장과 거의 동급입니다. 최씨의 재산이 이 정도라면 아무리 숨기려 해도 국세청 고액납세자 순위에 들었을 것입니다. 동정민 동아일보 파리특파원은 지난 연말 한국에서 보도되는 것과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본 실상은 너무나 다르다는 일종의 '정유라 취재 후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무슨 압력을 받았는지 곧 삭제했습니다. 퍼나른 SNS에는 살아있습니다. 

요즘 5,000개가 넘는 인터넷 매체들이 하루 한 가지씩만 ‘~카더라’ 식으로 쓰고 이를 주고받는다면 무수한 조합의 허위 기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남의 기사를 베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xx일보가 보도했다’라고 하면 매체들이 오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당신이 눈으로 봤어?” 기자 초년시절 선배들한테 들은 질책입니다. 

헌재의 강일원 주심은 국회 소추위가 제출한 언론기사까지 전부 탄핵의 증거로 채택한 데 대해 대통령 대리인단이 “언론기사는 오보가 많으므로 기사 자체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항의하자 “이런 기사가 났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일방적 재판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국회에게는 대통령 탄핵을 의결한 핵심문서인 탄핵소추사유서도 다시 쓰라고 허용합니다. 반면 조작 보도 의혹이 있는 태블릿PC는 국민들을 거리로 내몬 탄핵 광풍의 진원임에도 관련성이 없다며 변호인단의 증거채택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최초의 사건에서 언론사 사주들과 기자들이 스릴을 느끼며 파도타기라도 즐기는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들은 너무했다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주장이 더욱 터무니없다고 느껴집니다. 

요즘 혹한기에도 주택가, 버스정류장 등에서 편지 봉투 속에 담은 만 원권 지폐 여러 장을 까보여 주며 구독을 읍소하는 신문 판촉요원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판매 부수 격감으로 추락하는 언론사들의 실상 같죠. 언론이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리는 데는 크게 기여했지만 이후 탄핵 의결과 집회 보도, 수사, 재판 등 여러 면에서 공정한 감시와 비판을 매우 상실한 데서 오는 외면일 것입니다. 

텔레비전 뉴스들도 편파와 조작 의혹으로 시끄럽죠. 작년 12월 언론단체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라는 조작 보도 의혹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와 징계를 요청했지만 방심위는 30일의 시한이 지났어도 심의를 해태하고 있습니다. 박효종 위원장은 모종의 압력을 받는 건지, 아니면 탄핵 결과를 기다리는 건지 버팁니다. 직무유기에 격분한 여성들이 위원회가 입주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위원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지난달 퇴임한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은 신속하고 공정한 탄핵재판으로 3월 13일까지 결론을 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말 잘했다!”와 “무슨 권리로 나갈 사람이 시한을 못 박느냐? 국회와 짜 맞추었냐?”는 격한 비판도 일었죠. 신속과 공정을 원한다면 ‘탄핵의 스모킹 건’이라고 자랑한 태블릿PC도 얼른 증거로 채택하고 방심위도 심의를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검찰이 못한다면 태블릿PC를 국과수에서 검증해야 후유증이 줄어들 것입니다. 

탄핵으로 불안정하다고 하는 것은 요직에 박힌 인간들이 월급 값을 못하며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한 제구실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핵 여부를 가름할 중대한 업무에 모두 협조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누드화까지 표현의 자유라며 국회 구내에서 전시하는 ‘똥통 정치판’에서 봐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조직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정치색을 덧칠하지 말고 길게는 탄핵의 법정 시한까지 법규대로 다 해서 한 치의 미련도 역사의 짐으로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절실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역사는 기록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변환기에서 최대의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무서운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