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실 문화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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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마실 문화

2017.02.07

잊혀 가는 우리말 중에 ‘마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마실’이라는 단어는 충청, 경상, 강원에서 사용하는 ‘마을’의 방언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지역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웃에 놀러 갈 때 ‘마실 간다’ 라고 말합니다.

요즈음처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흔하지 않던 시절의 겨울밤은 고래 심줄처럼 질기기만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낮보다 더 긴 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녁을 드신 아버지는 문풍지 사이로 찬바람이 솔솔 파고드는 뒷문 앞에 앉으셔서 넉넉한 얼굴로 담배 한 대를 피우십니다. 

담배를 피우신 후에는 가족들에게 어디를 갔다 온다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십니다. 달빛을 밟거나, 달빛이 없는 밤에는 어둠을 더듬어 동네 사랑방으로 향하십니다. 

방바닥이 뜨끈뜨끈할 정도로 군불을 땐 사랑방에는 일찍 저녁을 드신 분들이 팔베개하고 누워서 천장을 멀뚱히 쳐다보고 계시다가 천천히 일어나 앉으십니다.

사랑방 문화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 시대의 사랑방은 남자들의 침실이자 거실이고 서재였으며 응접실 역할을 했던 공간입니다. 

근대의 사랑방은 조선 시대 선비들처럼 풍류를 즐기며 벗과 더불어 시를 읊고 담소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마을 공동체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정보 교류의 공간이자, 여가 시간을 마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은 지난해의 농사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년에는 어떤 밭에 어느 곡물을 심는 것이 좋은지 서로들에게 자문하기도 합니다. 읍내나 면 소재지 장터에서 들은 곡물이나 가축의 시세를 비롯하여 새로운 소식을 듣기도 하고, 마을에 사는 어느 집 자식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탓하기도 하면서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시간을 보냅니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동네 어른들과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시다가 밤이 깊어서야 잔기침을 하며 마당으로 들어오십니다.

이튿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사랑방에서 전해들은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어느 집 자식 누구는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안 해서 혼났다고 하더라, 누구는 장날 콩 두 말을 판 돈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 라는 말은 살아 있는 가정교육이 되기도 합니다. 

어른들만 마실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면 방을 혼자 사용하는 친구 집으로 마실을 갑니다. 요즘엔 마실을 가려면 미리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보내서 방문 사실을 알리고, 친구의 허락이 떨어져야 약속 시간에 맞춰서 갑니다.

그 시절에는 사전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작정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의 주인은 혼자 무엇을 하고 있다가 불쑥 들어서는 친구를 가족처럼 받아들입니다.

시골이라서 도시처럼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습니다. 거리가 좀 먼 곳은 인적이 없는 고개를 넘거나, 산 너머에 사는 친구 집을 콧노래를 부르며 갑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마실을 간다고 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몇몇 친구들이 저녁마다 모이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집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할 때는 진지하게, 지난여름 실수로 겪었던 곤란한 상황은 웃음으로, 누군가의 아픔은 안타까움으로 받아들이며 우정을 나눕니다.

밤 시간이 이슥해지면 배가 고픕니다. 양식이 귀한 시절이라서 어느 집이나 고구마 농사를 넉넉히 짓습니다. 수확한 고구마를 안방구석에 수숫대를 엮어 만든 고구마광에 겨우내 보관합니다. 거기서 가져온 생고구마를 깎아 먹거나, 텃밭에 묻어 둔 무를 꺼내 와서 먹습니다. 

무를 깎아 먹고 나면 방귀가 잘 나옵니다. 누가 소리 없이 방귀라도 뀌면 인상을 쓰지 않습니다. 그것도 재미있다고 너도나도 코를 싸매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웃어 젖힙니다. 

밤이 늦어 집에 가려고 방문을 열면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방문을 닫고 방바닥에 벌렁 누워서 그냥 잠들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의 여가 문화였던 마실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려는 방편만은 아니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의 근간을 지켜주는 힘의 원천은 공동체 문화였습니다. 마실은 공동체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에도 방 문화가 도심 넓게 퍼져 있기는 합니다. 예전처럼 정감이 넘치는 사랑방이 아닙니다. 피시방, 소주방, 마사지방, 키스방 등 돈을 지급해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입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가시는 곳은 도시나 농촌이나 경로당입니다. 경로당에서도 예전의 마실처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예전의 추억을 잊지 못해 속마음을 털어놓기라도 하려면 상대방에서 굳게 마음의 빗장을 걸고 맙니다. 

마실 문화가 사라진 것은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텔레비전이니 라디오, 인터넷 등의 영향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가족 체계가 무너지고 핵가족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사회에 무관심하고 이웃들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원인은 일등 지상주의와 승자독식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일등과 승자는 경쟁을 통해서 결정이 됩니다. 그 경쟁이 정당하게 이루어지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불합리한 시스템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즈음 공중파는 물론이고 종편 방송까지 경쟁적으로 최고의 점수를 얻는 가수를 뽑는 서바이벌식 경쟁이 주요 방송 시간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문학인이라고 해서 시는 물론이고, 소설, 희곡, 평론까지 잘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가수도 그렇습니다. 가수라고 해서 토로트에서 팝송은 물론이고 샹송이며 칸초네까지 완벽하게 구사를 해야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장르를 무시하고, 투표를 하는 선호층을 무시하고, 프로 방영시간 대의 주시청자층도 무시하고 즉흥적인 방법으로 일등을 결정한다는 것은 정당한 경쟁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공정과 평등 사회를 선도해 나가야 할 방송에서 이처럼 불합리한 방법으로 일등 지상주의와 승자독식주의를 선도하고 있으니 마실 문화가 피어날 수는 없습니다. 

마실 문화가 꽃피던 시절에는 고독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웃과의 다툼이 끔찍한 사건으로 비화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개인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갈등과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014년 2월에 일어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마실 문화의 실종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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