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사퇴와 관료의 한계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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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퇴와 관료의 한계

2017.02.03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대권 레이스에서 갑작스레 중도하차를 선언했습니다. 그가 대선행보를 취해오긴 했으나 공식 출마를 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이 정당 저 정당을 기웃거리며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다 그만둔 것이므로 사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날 사퇴발표 기자회견에서 그는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를 받았으며,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의 명분은 실종됐다”고 했습니다. 참모들에게는 “정치참여는 가장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사실 반 전총장이 대권행보에 나선 것은 지난 1월12일 귀국한 후 20여 일에 불과합니다. 그가 대권후보로 국내 언론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두 번째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이었으므로 2년이 넘었습니다. 그무렵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유엔사무총장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라며 국내정치와는 거리를 두어오다가, 지난해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첫 번째 행사로 언론인 단체인 관훈클럽 임원들과 제주도에서 간담회를 가지면서 대권도전 의지를  좀 더 명확히 했습니다. 

그 때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대한민국 시민이 되는 내년에 할 일을 고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2017년 실시되는 한국 대선 출마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면서 국내 언론들에 대서특필됐습니다. 

작년 말 뉴욕에서 한국기자들과의 사무총장 이임회견과 인천공항에서의 귀국회견에서 “조국의 발전을 위해 제 한 몸 불사르겠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를 하겠다”는 발언은 작년 5월의 “할 일을 고민하겠다”는 발언에서 조금 나아간 것처럼 들렸습니다. 

관훈클럽은 귀국 후 대선행보를 시작한 반기문 전 총장을 지난달 25일 관훈토론회에 다시 초청했습니다. 자신의 대선행보와 관련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의지표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언론도 토론회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습니다.

그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고, 모든 정치세력들을 상대로 세확장을 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마방식에 대해선 창당, 기존 정당 입당, 제3지대에서의 ‘빅텐트’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대권도전을 최종 결심한 것은 작년 말이었다며 아직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 않은 처지임을 되풀이 강조했습니다. 국내 사정을 파악한 후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신중함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내공을 갖춘 준비된 후보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퇴를 정치권과 언론의 비협조 탓으로 돌렸으나 자신의 준비부족 탓도 커 보입니다. 그가 내세운 ‘정치교체’ 선언은 언뜻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교체한다는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으면 그것은 실체가 모호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창당 입당 빅텐트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방법론을 귀국 후에 찾으려 했다면 정치를 너무 안이하게 여긴 것입니다. 적극적인 도전의지를 밝힌 작년 5월부터 준비를 해서 귀국 즉시 가동시켰다 해도 빠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탄핵정국으로 자신의 원래 구상이 헝클어진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분열로 갈 곳을 잃었다면 창당에 나섰어야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깃발이 없이 남의 집을 기웃거리다가는 모두에게 외면당할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측대로 된 것입니다. 

그의 사퇴의 변 가운데 ‘보수의 소모품이 될 수는 없다“ ”보수만을 위해 일할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지도자가 되겠다며 ’진보적 보수‘를 자처했습니다.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그것이 가능한 구상인지를 먼저 생각했어야 하고 어떻게 가능한지를 말했어야 합니다. 팽목항 방문이 그것을 위한 행보였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진보 보수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했을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나는 제도입니다. 진보가 야당 후보에게 선점됐고 보수가 완전 망가진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보수의 개혁과 보수(補修)’여야 했을 것입니다. 대안도 없는 대권도전은 꽃가마나 타야 가능할 뿐입니다. 

유엔사무총장 10년의 경험이 국익에 기여가 되는 길은 대통령이 아니라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겠다는 결정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원로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을 원로로 남기를 바랍니다. 

반기문 전 총장의 중도 사퇴는 관료의 정치가 변신의 한계를 보여준 또 하나의 예입니다. 여권에선 반 총장의 빈자리를 메울 사람으로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황 대행 본인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신중히 생각할 문제라고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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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대한언론인회 주필,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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