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갈라놓는 SNS격문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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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갈라놓는 SNS격문

2017.01.3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발한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났습니다. 촛불집회가 주말마다 10여 차례 계속되더니 이에 맞서는 태극기 맞불집회도 점점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촛불이나 태극기 중 뭐 하나만 든 것으로도 정치적 성향을 의심 받고 재단 당하는 극단적 이분 상황이 돼가고 있습니다. 

촛불 쪽의 근본적인 요구는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헌재를 겁박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직도 '즉각 하야'를 외치거나 탄핵과 직접 관계없거나 이미 사회적 법적으로 마무리된 문제 등 온갖 요구를 촛불에 한데 태워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촛불에 편승한 시위 양태에는 민주시민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태블릿PC가 방송의 조작이라고 주장하거나 이 모든 상황이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한 언론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대립이 심하다 보니 화해는커녕 이견을 인정하는 것부터 불가능합니다.  

광장의 대결도 심하지만 온라인, SNS상의 대립은 더 심합니다. 단체카톡방(이하 단톡방), 밴드, 카페, 페이스북 등등 어느덧 한국인들은 통신과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아주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그런 공간 중에서 의견 차이로 시끄러워지거나 싸움이 벌어진 곳이 많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 주장을 A, 그 반대 주장을 B라고 하고 말을 해보겠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동문들의 단톡방에 한 사람이 A를 주장하는 글을 띄웠습니다. 그 사람은 촛불집회에 열렬히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일장 연설도 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B를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이 쓴 글을 소개하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A가 B보다는 선배이지만 단톡방 참여자들은 대체로 B성향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둘은 카톡으로 말다툼을 하며 감정싸움까지 벌였는데, 화를 참지 못한 B가 단톡방을 탈퇴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얼마 후 B는 다른 회원에게 자신을 초청하라고 해 단톡방에 복귀했고, 둘 간의 직접적인 공방은 아니지만 이런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문들도 편이 갈리는 양상이 돼 버렸습니다. 동문 간의 우애와 친목 도모를 위해 개설한 단톡방이 본래 목적과 반대로 편싸움을 벌이는 정치 쟁론장으로 변하자 다른 동문들은 할 말이 있거나 올리고 싶은 글이 있어도 삼가거나 조심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입돼 있는 밴드 중 하나에는 매일같이 B의견을 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 말고 ‘좋은 글’이나 생활정보, 웃기는 동영상을 띄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은 드뭅니다. 그는 자기 글만 올리는 게 아니라 한번 읽어보라며 이곳저곳에서 받거나 퍼온 주장과 영상물을 끊임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조작된 사진까지 올라옵니다.  

그 밴드의 회원들은 대부분 60~70대여서 B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댓글을 달아 알은체를 하거나 찬성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뭐라 말은 하지 않지만 연일 올라오는 B주장과 격문(檄文)에 싫증과 염증을 느끼거나 그만해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나도 몇 번인가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댓글을 쓰려다가 말거나 개인적으로 카톡을 보내 설득할까 하다가 ‘내가 밴드에 안 들어가면 되지’ 하고 참고 있습니다. 밴드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이런 글 때문으로 보이는데, 회장도 총무도 자제를 요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이나 SNS상에서는 물론 오프라인 모임도 요즘은 참 행동하고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삼가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 줄 전혀 몰랐거나 짐작도 하지 못한 사람이 촛불이든 맞불이든 탄핵 국면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경 발언을 하는 데 놀란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전에도 오프라인 모임을 할 때면 동문들끼리 만나는 경우라도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시작하는데, 지금은 만나거나 앉으면 탄핵과 언론 이야기이니 전혀 언급을 하지 않기도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SNS공간을 원래의 개설 취지에 맞지 않게 자신의 주의 주장으로 도배질하는 것은 A든 B든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나 이념에 관한 문제로 한 번 금이 가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형성하고 다져온 공동체를 분열과 대립으로 망가뜨리는 건 생각이 모자라는 행동입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네 안 찍었네 하는 정치적 지지 차이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만나지 않는 형제를 알고 있습니다. 

탄핵심판 절차는 헌재의 여건 등으로 인해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되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정치적 주장과 요구를 개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개설·창립 취지가 정치적 목적이 아닌 공동체에서는 그렇게 주입식 도배질하는 식의 글을 올려 구성원들을 갈라놓는 일을 부디 삼가고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엔 대선 출마 예정자들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글을 밴드나 단톡방에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사람들까지 늘어났습니다. 내가 가입한 어느 동문 밴드에서는 모 인사의 후원조직에서 뭘 맡기로 했다는 후배가 그 인사를 열렬히 홍보하면서 다른 출마 예정자와 비교할 때 공약이 어떻고...등등을 하루가 멀다 하고 올려대고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선배 몇 사람이 충고와 지적을 하자 잠시 주춤하는 것 같더니 도로 그 모양입니다. 설연휴도 공휴일도 아랑곳하지 않는데 남들이 싫어하는 걸 그는 왜 그렇게 모르는 걸까요? 그러다가 자신이 지지하는 출마 예정자의 표를 오히려 깎아 먹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텐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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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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