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업(大業)에게 또다시 속을 수야!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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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업(大業)에게 또다시 속을 수야!

2017.01.25

- 정보 실명제, 사실 확인 장치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이 최근 미국에 이어 독일에서 가짜 뉴스(fake news)를 걸러내는 시스템을 가동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19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 “점증하는 증오 연설과 폭력, 허위 뉴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무차별적인 가짜 뉴스 전달로 선거의 판을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을 수사하던 FBI 요원이 살해당했다.” 이런 정도의 보도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보았다면 믿고 싶지 않아도 표심이 적잖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독일은 가짜 뉴스 규제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 생산자에게는 최대 징역 6년, 이를 싣거나 옮긴 매체에게는 건당 50만 유로(약 6억3천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페이스북의 조처도 실은 이런 독일 정부의 경고에 따른 것입니다. 독일은 총선에서 러시아가 주요 정보 해킹과 거짓 정보 유포로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을 지원하고 선거판을 흔들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선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유력 언론들도 가짜 뉴스 퇴출을 위해 담당 부서를 만들거나 상호 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합니다. 독일뿐이 아닙니다. 유럽 각국에서 가짜 뉴스의 폐해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10월 총선을 앞둔 체코 정부는 대응센터를 만들어 인터넷상에 확산되는 허위 정보를 조사하고,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포를 차단할 계획입니다. 영국 민간단체 '풀팩트'(Full Fact)는 자동으로 사실 여부를 체크하는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르몽드도 가짜 뉴스 선별을 위한 부서를 신설하고, 거짓을 걸러내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SNS의 편의성은 만천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천리만리 떨어진 사람과 언제든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동시 소통이 가능합니다. 반면 그런 편리한 기능을 악용해 이웃을 이간하고 속이고, 사회와 국가를 갈등과 혼란에 빠뜨리는 폐해도 적지 않습니다.

SNS나 포털을 이용해 거짓 정보를 실제 뉴스로 위장해 유포하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 제작을 돕는 앱도 공개되어 있고, 이를 업으로 삼는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흥미 추구가 아니라 분명한 악의를 가지고 특정인이나 단체, 때로는 자신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편을 헐뜯는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보기술은 이제 천국이 아니라 재앙을 부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거짓 정보, 가짜 뉴스의 폐해는 이미 우리 사회도 멀미가 날 만큼 겪어온 터입니다. 특히 선거에 나선 입후보자가 스스로 거짓 정보나 가짜 뉴스를 퍼뜨려 상대를 헐뜯거나 그 추종자, 또는 사주받은 자들이 총대를 메고 거짓 정보,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이나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미약하기만 합니다.

이름처럼 그 자신으로서는 대업을 이룬 김대업(金大業, 1961년~ ), 대선 후보 아들이 병역 비리를 저질렀다는 거짓말로 아들을 군에 보낸 분노한 어머니들은 물론 온 국민을 상대로 희대의 사기를 쳤습니다. 설훈(薛勳, 1953년~ )이란 국회의원은 대선 후보의 거짓 수뢰 의혹을 퍼뜨려 정국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업은 짧은 형기조차 다 채우지 않고 모범수들의 가석방 틈에 끼여 풀려났습니다. 설훈도 보은성 사면 복권으로 10년의 피선거권 박탈 기간을 2년으로 탕감받았습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선거 당시 경쟁 후보가 미국 국적 취득 의혹이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고발당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혹 제기가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사후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선고유예 판결을 했습니다. 

먼저 치고 빠지면 그만입니다. 하물며 허위 사실을 세상에 널리 전파한 언론 매체의 책임은 따져볼 것도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땅은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의 온상으로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보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편의성의 향상과 더불어 폐해의 파급도 확대일로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역작용에 대한 우려나 예방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2004년 국내에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언론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게시할 때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2년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공익의 효과도 미미하다’며 위헌결정을 내렸습니다. 

“문창극은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더라. 그러니 친일분자임이 틀림없다.” “문재인이 6·25 때 거제 포로수용소의 인민군 포로 아들이래.” “박원순의 할아버지가 남로당 거두 박헌영이라던데.” “반기문이 꽃동네 할머니를 죽일 뻔했대!”

최근까지 SNS나 언론 매체의 여러 채널을 통해 우리 귀와 눈을 어지럽혀 온 거짓 정보들입니다. 단순한 농담이나 와전, 오보가 아니라 누군가를 음해하기 위한 악의적이고 야비한 거짓 정보,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당사자는 정당한 평가의 기회를 잃게 되고 인격적으로 매장되며, 유권자는 올바른 판단과 선택의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공직 선거에 나선 인사라면 당연히 자신의 능력은 물론 인성과 덕성을 드러내 경쟁하는 게 정도입니다. ‘남 헐뜯는 거짓 뉴스를 만들어 떠드는 데 맛 들이고 기쁨을 찾는 건’ 반기문 총장 말처럼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이 할 짓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중간 토막만 잘라내 편의대로 인용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근거가 불분명한 말을 입맛대로 퍼 옮기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우리 사회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고 신뢰할 수 있는 언론 매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팩트가 확실한 뉴스 보도조차 선정주의 경쟁에 몰두해 사실에 의견의 살이 붙고 근거가 희박한 억측, 의도적인 해석이 뒤섞이면서 결국은 사실과 거리가 먼, 과장·왜곡 보도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단순 사고가 은밀한 공작으로 둔갑하고, 공개적 계획에도 음모의 의혹이 따라붙습니다. 그러한 보도 행태가 시청자, 독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자극해 사회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천안함 참사, 4대강 개발, 세월호 비극, 사드의 효능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진실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온갖 의혹과 비난과 원망과 분노의 함성만 가득합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우리 사회에도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를 걸러내는 확실한 장치가 절실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사회악을 격리하고 추방하는 엄격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공익을 위해 표현의 자유와 책임, 그 균형의 추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강조하고 책임은 외면하는 풍조 속에서 표현의 자유로 얻게 되는 공익,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허위·왜곡 보도로 야기되는 여론의 오도나 사회 갈등·혼란으로 저해되는 공익의 무게가 어떠한지, 하늘나라 판사님들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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