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이 정상화될 때까지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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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이 정상화될 때까지

2017.01.24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습니다. 하나씩 정상화로 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최순실 추문’으로 묻혔던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상화는커녕 더욱더 비정상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청와대가 대법원장을 사찰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3권이 나뉜 민주국가에서 사법부 수장이 감시받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헌법재판소장을 만나 헌법심판 결정방향을 논의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실제 헌재의 결정과 정부의 후속 처리는 수첩에 적힌 대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고, 사법부의 행태를 반성해야 하는 법원 내부에서 판사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헌법재판소 안에서도 목소리가 별로 없습니다. 자성하고 바로잡을 대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와야 정상일 겁니다. 법조계의 목소리도 조용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광우병 촛불 집회 관련 재판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 시끄러웠던 것과 비교됩니다. 방침에 어긋나게 수사하거나 판결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엉뚱한 자리로 옮겨가야 했다고 하니, 내부 사람들은 이미 순응한 것일까요?

사법부가 독립하여 공정하게 재판하고, 그 결과에서 사법정의를 확인할 수 있어야 사법부를 믿습니다. 대법원장 사찰, 청와대 비서실장과 헌법재판소 협의, 전관 비리, 현관 비리와 같은 사건 때문인지 우리 사법 신뢰도는 세계 42개 나라에서 39번째로 밑바닥에 있나 봅니다. 비정상입니다.

문화예술계를 감시하는 명단(블랙리스트)이 드러났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 입맛에 따라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창의력을 바탕으로 창조경제를 이루겠다는 정권에서 창의성을 죽이는 짓을 했습니다. 어이없는 비정상입니다.

전문분야는 그 분야 전문가가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전문가는 세부에 강한 사람입니다. 세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전문가라 할 수 없습니다. 전문분야에서 원론적인 개론을 얘기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사고가 생겨 수습하려 할 때 "한 사람 희생자도 생기지 않게 빈틈없이 수습하라"고 지시하는 지도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당신은 이 일, 당신은 저 일, 옆에 있는 당신은 무엇을 하라"고 가닥을 잡아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원론만 얘기하는 윗사람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문분야에도 창의력이 중요합니다. 전문 분야에서 창의성은 갑자기 나오지 않습니다. 예전에 그 전문 분야를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창의성이 좋다는 주장에 따라 전혀 무관한 분야의 사람을 등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착상에는 그 분야를 모르는 사람에게 참신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발적인 참신함은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참신함이 필요하지만 엉뚱한 참신은 일을 망칠 수 있습니다. 전문 분야의 기본 지식에서 나오지 않은 참신함은 위험합니다.

전문분야에서 전문가가 자리 잡지 못하면 재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상한 인사 이면에는 저런 감시명단이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계 명단이 드러났지만, 다른 분야는 어떨까요? 과학기술계, 금융계, 군대 등 각 분야에 사람을 임명할 때 청와대가 승인해야 한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우리나라 공공 부문 인사, 나아가 중요한 대기업의 인사에도 이런 명단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듭니다. 감시자 명단은 문화예술계에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인사가 잘못됐을 때도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 나서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엉터리 인사를 임명해도 조용히 있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원자 추천자 인사권자 그리고 감시자가 각자 그 자리에서 제구실할 때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임명할 때 사사로운 이해관계가 작용하면 안 됩니다. 부적합한 사람을 임명하려 할 때 감시합시다. 정부의 인사를 그 분야의 전문 단체와 시민 단체가 감시하고 평가합시다. 인사가 정상화돼야 우리 사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널린 비정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여전히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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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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