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쪽 눈만 뜨고 있나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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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쪽 눈만 뜨고 있나

2017.01.23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시 한 편이 있지요. 여러 번 원문을 찾았지만 시인의 이름과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실패. 하지만 ‘임팩트’가 강해서 내용은 머릿속에 남아 있네요.

‘몽골 사막 어딘가를 지나는데, 마을도 인적도 없고, 사방에 모래뿐인데, 갑자기 두 사내가 나타났네. 한 명은 뙤약볕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며 모래를 파내 수로 같은 걸 만들고, 한 명은 그 옆 작은 트럭 작은 그늘 속에서 인부가 게으름 피우는지 감독하고 있구나! 일하는 사람에게 배려는 없고, 더운 날씨에 불만만 보이는 표정! 아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한 명이 일을 해도 감시·감독이 붙는 슬프고도 더러운 세상!’ 

틀릴 수도 있는,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산문(散文)으로 다시 작문한 탓에 산만하고 길어졌지, 원시(原詩)는 이보다 훨씬 짧고, (당연히) 훨씬 시적이었지요. 사막을 여행하다가 잠깐 스쳐 지나간 풍경에서 인생의 슬픈 본질을 찾아낸 시인의 감수성에 놀랐고, 몇 줄 안 되는 짧은 시행 안에 ‘지배와 피지배’ ‘감시와 피감시’라는 삶의 기본 구조를 압축해 담아낸 시인의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제 기억 한구석에 그렇게 웅크리고 있던 이 시는 건설회사 다니는 사위가 출근한 며칠 전 어느 휴일날, 3~4년 만에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평소에도 저녁이 별로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던지라 집 나서는 사위에게 “휴일엔 쉬어야지. 무슨 직장이 그러냐”고 진심어린 위로를 했더니 “나가서 하청업체 일하는 거 지켜봐야 해요. 제가 직접 뭘 하는 건 아니고요”라는 대답이었지요. “다른 사람들도 나오냐? 현장 소장도 나오고?” “저 혼자만요. 공사 막판이라 인부도 한 명만 와요. 일 잘하는 사람이라 저도 안 나가도 되는데….”

그 다음 제 말은 제가 한 게 아니고 그 시가 한 것입니다. “감독하러 가는구나. 대충하고 일당만 받아갈까 봐. 그렇지? 공사 제대로 안 되면 준공 늦어지고, 원가 늘어나고…. 그래도 휴일이면 쉬어야지. 그 사람이나 너나 고생이다.” 하지만 사위의 대답은 시와는 달랐습니다. “아뇨, 감독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 일 제대로 안 하면 자기만 손해지요. 일한 만큼 돈 받으니까 더 열심히 하지요. 감독자가 없어도 현장은 돌아가요. 저는 혹시 빨리 일 마칠 생각에 무리하게 작업하다가 사고가 날까 봐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사고가 났는데 현장에 감독자가 없다면 우리만 혼나잖아요. 당국이나 언론이 우릴 그냥 두지 않을까 봐 나가는 거예요.” 

몽골 사막 두 사내 중 한 명의 얼굴에 겹쳐진 사위의 얼굴. 표정이 무심했습니다. “아, 그렇겠구나. 누군가는 지켜봐야 하는구나. 감시가 아니구나.” 문을 열고 새벽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위의 등 뒤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저는 ‘왜 사막의 그 사내를 악한 감시자로만, 갑과 을의 관계에서 야박한 갑이라고만, 뜯는 자와 뜯기는 자의 관계에서 악착 같이 뜯는 자로만 생각했을까, 내 시야는 왜 이리도 좁고 박해졌을까’라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삶의 측면은 다양하기만 한데….

지하철 안에서 화장하는 여인들을 꾸짖는 칼럼을 읽으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요. 필자가 남자인 이 칼럼은 “집에서는 뭐하고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입을 뾰족 내밀고 립스틱을 바르느냐, 분첩으로 얼굴을 토닥이느냐. 조신한 여인네는 그러지 않는다”며 ‘지하철 화장녀’들의 ‘방정하지 못함’을 마구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한참 뒤 어느 중앙 일간지 여기자가 자기 칼럼에서 “나는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 맞벌이하면서 아이들 옷 입히고 밥 먹인 후 가방 챙겨 학교 보내고 후다닥 일터로 나가야 하는 모든 엄마들, 여성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 거다”라고 쓴 걸 읽고는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 휴일 새벽에 사위와 말을 주고받으며 느꼈던 것이 이 여기자의 칼럼을 읽은 날에도 떠올랐다는 말입니다. 내 시야와 생각의 좁음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는 말입니다. 삶의 측면은 다양한데, 두 눈 가진 나는 한 눈으로만 세상을 봐왔구나, 내 삶만 생각해왔구나, 그동안 어떤 말, 어떤 글로 다른 이의 삶을 해(害)했는지 모르겠구나!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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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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