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경제적 효과 이모저모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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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경제적 효과 이모저모

2017.01.16

십년 전쯤 학회 참석차 짧은 일정으로 서울에 온 지인 일본인 교수가 드라마 ‘대장금’ 세트장을 찾아가보고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겠노라는 말을 듣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년 봄, 수업을 듣는 중국 학생의 발표에 따르면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중국 내 인기가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중국의 주요 콘텐츠 제공업체에 한국의 생방송 시간에 맞추어 그 드라마를 보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며 유로 가입자가 몇 개월 사이에 약 5백만 명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대중음악 (K-Pop), TV드라마 및 오락 프로그램 등이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한류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여파를 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서울 명동 인근의 화장품 매장과 백화점들이 중국, 일본 여성 고객들로 넘쳐나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류가 한국의 상품 수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수출 호조로 엄청난 호황을 누린 화장품산업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관련된 학술적 연구도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화와 무역의 교차, 혹은 문화재의 교역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여러 나라의 미술관에 소장·전시되고 있고, 수백 년 전 이탈리아의 명장들이 만든 현악기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국제기구인 유네스코(UNESCO)는 문화상품의 국가 간 거래의 편의를 위해 문화상품의 분류체계를 정리해서 발표해오고 있습니다. 표준화된 품목 분류체계(HS코드)는 각 물건에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데 단위가 길수록 더 세세히 분류된 품목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HS97은 예술품 및 골동품 품목군(群)을, HS970110은 회화·데상·파스텔 품목입니다. 

문화상품 무역에 대한 많은 국내외 연구는 유네스코분류 자료를 사용합니다. 상당히 세세한 이 자료는 유형재(有形財)인 품목들이 세관의 통관절차를 밟으며 남는 부산물입니다. 한류 초창기에는 무형재(無形財)인 방송콘텐츠도 HS 코드가 부여되는 DVD 등의 형태로 거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집계와 기록이 어떻게 남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무형재로 구성된 한류의 특성을 간과하고 유네스코품목의 수출로 한류를 측정하면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미국이 중국이나 일본 이상의 한류수출 대상국이 됩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미국의 동종 영화·TV드라마 제작사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그림 (HS970110)을 미국에 많이 수출해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왜곡입니다. 

근래 구설수에 올랐던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콘텐츠 제작 및 수출업체들을 대상으로 2004년 이후 매년 설문조사를 실시해 수출입 및 관련자료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품목 자료에 비해 기간이 짧고 연간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일반적인 한류의 개념에 부합하는 무형재 자료를 포함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근 필자도 여러 자료를 사용하여 한류수출이 50개국에 대한 한국의 소비재 수출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는 연구를 했는데, 대체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공장설비와 같은 자본재를 포함하는 전체 수출이 아니라 소비재수출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외국의 소비자가 본인이 사용하는 가전제품 등을 구매할 때 한류를 접한 경험이 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론에 따른 것입니다. 유사 제품이 드라마에 등장하며 나타나는 간접광고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한 것입니다. 

문제점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전제품, 승용차 등 오래 쓰고 가격이 비싼 제품들을 지칭하는 내구소비재수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류수출이 매우 활발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내구소비재수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반면, 한류수출이 많지 않고 지리적으로 먼 북미 및 유럽 국가에 대한 수출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구소비재수출의 지역적 분포만 감안하면 한류가 수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외 여건이 안 좋을수록 더 다양하게 경제의 숨통을 찾아야 합니다. 한류의 확산으로 한국제품에 대한 인식이 호의적이고, 구매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동아시아지역의 소비자들에게 우리 기업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내구소비재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수입품에 대한 장벽이 높아질 가능성을 생각하면 동아시아지역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길게 보면 한류의 구성도 더 다양하고 풍부해져 해외에 알려지는 문화 상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우리도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나 한류 진출국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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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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