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권태준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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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권태준

2017.01.13

상도야, 나다.”

“어, 오랜만이다.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어. 요즘 어떻게 지내니?”

“어떻게 지내긴, 출근해서 전화하는 거야. 나 요즘 양천세무서에서 일해.”

“야, 그럼 우리 회사랑 가깝네, 점심이나 같이하자.”


외국계 회사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친구가 뇌종양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간 것이 7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친구는 수술 중 뇌출혈이 발생해서 재수술에 재수술이 이어지며 모두 6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턱을 수시로 드나드는 와중에도 문병을 간 필자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며, “걱정 마, 퇴원하면 당구나 한 게임하자.”라며 말했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질 않습니다.

수술 중 뇌출혈이 발생했으니 환자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의료사고임에도 병원 측은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이 환자에게 있고 병원이나 의사가 진료기록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작성해도 내부자의 양심선언이 있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의료사고 분쟁에서 환자나 환자 가족이 승소하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친구의 경우는 소송까지 가서 간신히 이기긴 했으나 배상금 천만 원을 받는 것이 전부였고, 그 돈은 고스란히 변호사 비용으로 나갔으니 결국 율사(律士)들 배만 채우고 만 꼴이 됐습니다.

왼쪽 눈의 시력을 절반 정도 상실해서 시야가 좁아진 데다 몸의 거동 역시 약간 불편해진 친구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야만 했고 자신의 경력을 살려 동종 업계에 이력서를 제출해 봤지만 면접을 오라고 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크게 낙심했지만,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어린 쌍둥이 딸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서, 가장으로서 일을 계속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고민 끝에 그가 결정한 것은 9급 공무원 시험이었습니다. 세무(稅務)직으로 선발된 후, 세무서에서 일을 하다가 몇 년 후엔 세무사 자격증을 따서 세무법인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이 오십에 젊은이들 틈에 끼어 행정고시도 아닌 9급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게 될 줄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 몰리니 자신이 살길이 이것밖에 없어 보였다고 합니다. 아홉 달을 공부하고 시험을 봤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친구답게 수석합격을 했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는 외국계 회사 전(前) 임원이 퇴직 후 9급 공무원이 됐다는 내용으로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 “40대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50대 이후에는 인생을 즐기며 유유자적할거야.”라고 얘기하던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50줄에 들어선 지금, 자신들이 말한 대로 은퇴를 해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친구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밀려나서 중년 이후의 생계를 고민하는 친구들은 은근히 많아졌습니다. 벌어 논 돈은 없고 쓸 곳은 여전히 넘쳐나는데, 다음 달 월급으로 이번 달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계획에 없던 퇴직은 그야말로 중산층에서 극빈층으로 곧바로 곤두박질치는 지름길입니다.

며칠 전 필자가 전한 뉴스에 의하면 한국 남자의 은퇴 연령은 60세이지만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은퇴 나이는 71.2세라고 합니다. 운 좋게 60세 정년을 채워서 은퇴를 하더라도 노동시장에서 10년이 넘게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생물학을 전공한 최재천 교수는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이 하나의 직업만으로 평생을 살던 시대는 끝났다고 얘기합니다. 몇 년 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여러분은 100세까지 살 겁니다. 하지만 회사의 정년은 60세입니다. 퇴직하고 40년을 그냥 놀면서 살기엔 시간이 너무 깁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큽니다. 따라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세대에는 평생 3개 정도의 직업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필자는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긴 해도 단순히 그냥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오래 잘 살기 위해선 준비를 잘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의 경우는 예고 없이 찾아온 뇌종양으로 일찍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입어서 누구보다도 재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제 2의 삶을 설계하며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고 있습니다. 9급 공무원 급여는 자신이 외국계 회사 임원으로 있으면서 받던 급여의 10분의 1이라고 합니다만, 중형 자동차를 처분하고 장애인이라 무료로 탈 수 있는 지하철을 타며 출퇴근을 하고 외식을 줄이는 등, 지출을 줄이며 알뜰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 년 후에는 세무사 시험을 볼 것이고 퇴직 후에는 세무법인을 만들어서 지금 중학교 1학년이 된 쌍둥이 딸들이 어른이 되면 이를 물려줄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현실로 이뤄지지 않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필자는 친구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찌 보면 필자가 은퇴 후에 맞이할 제 2의 삶을, 그 친구는 10년쯤 앞서서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절망 속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새롭게 도약하는 친구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느꼈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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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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