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중고 오리엔트 시계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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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중고 오리엔트 시계

2017.01.10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입니다. 아버지께서 중고 오리엔트시계를 사오셨습니다. 한 살 위인 형하고 나는 상상하지도 못한 선물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산골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손목시계를 찬 학생은 한두 명에 불과했었기에 너무 좋아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릴 정도였습니다.

형하고 나는 손목시계를 자랑하고 싶어서 일부러 밖에 나갔습니다. 3월이면 쌀쌀한 날씨입니다. 손목시계가 잘 보이도록 소매를 걷고 괜히 장터를 걸어다녔습니다. 손목시계를 본 또래들이 몰려와서 한 번만 자기 손목에 차 보겠다며 앞을 다투어 부탁을 했습니다.

손목시계를 한 번 차 봤다고 해서 고장이 나거나 흠집이 날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행여 흠집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 손으로 옮겨지는 손목시계에서 시선을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손목시계를 차고 잠을 자야 하느냐, 머리맡에 두고 자야 하느냐로 고민을 했습니다. 손목에 차고 자다가 잠결에 방바닥에라도 내치면 유리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눈을 감으니까 찰칵찰칵 시계 초침이 가는 소리가 너무 정겨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안 살림이 자식들에게 손목시계를 사줄 만큼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중고 시계지만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30원 하던 시절에, 가족이 두 달 정도 먹고살 만한 돈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 형제가 중학생이 됐다는 점에 굉장한 자긍심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학생들의 삼분의 일 정도가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습니다. 학교가 산골에 있는 탓에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는 학생들은 거의 손목시계를 찼습니다. 손목시계의 가치는 그만큼 하락이 됐고, 중고 오리엔트시계는 더 이상 소중한 애장품이 되지 못했습니다. 

방수가 되지 않아서 아침에 세수를 할 때 벗어 두었다가 그냥 학교 가는 날도 드물지 않았고, 친구 집에 벗어 놓고 그냥 와서, 그 다음 날 돌려받기도 했습니다. 

손목시계는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유용한 물건이었습니다. 손목시계가 있어서 약속 시간에 늦어 본 적이 없고, 읍내라도 나가서 걸어가면 지금 몇 시나 됐냐고 시간을 물어 보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알려주면 괜히 어깨가 뿌듯해지곤 했습니다. 

요즘에는 1,000원 상점인 다이소에 가면 자장면가격하고 같은 시계도 팝니다. 중국산이기는 하지만 방수기능도 있어서 예전의 오리엔트 손목시계 보다 훨씬 기능이 좋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시절하고 같은 점이 있다면 요즈음도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괜찮은 명품 시계의 가격은 백만 원을 쉽게 넘습니다. 재산 증식용이기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손목시계는 파텍 필립 Ref.1518 이란 시계입니다. 이 시계는 지난해 11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필립스 경매에서 약 130억 원에 낙찰이 됐다고 합니다.

손목시계의 순기능도 변했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을 벗어나서 부의 상징으로 변해버리면서, 손목시계를 차는 층과 차지 않는 층의 생활패턴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의 어원으로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은 1초, 30초, 한 달처럼 우리가 말하는 물리적 시간을 뜻합니다. 카이로스 시간은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을 말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의 시간은 여유롭게 흘러갈 것이고,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사람의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갈 것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은 낭만을 모른다는 말과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모바일 리서치 케이서베이에서 조사한 결과 20대가 10~60대 중 가장 행복감이 낮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행복감이 낮은 것에 대해 몇몇 응답자들에게 이유를 묻자, 진로 선택과 취업난과  스펙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방황하는 20대가 늘어가고 20대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당장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졸업 후 앞날을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최근 출판계 동향이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20대 자기 계발서가 많이 나왔던 반면 현재는 20대를 위한 심리학 서적이 많이 발간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20대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꿈이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 대표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예로 들지 않아도, 이 땅의 성공한 분들은 대부분 꿈을 잃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들입니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국가 9급 공무원 시험은 지난해 54대 1을 기록했습니다. 언론에서는 한 술 더 떠서 2배 연봉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시급 6,030원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선호하지만, 정규직 중소기업체는 바라보지도 않는 20대들이 많습니다.

중고 오리엔트시계를 선물 받고 설렘을 주체할 수 없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절의 20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직업이 다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일이든 열심히 일을 해야 먹고 살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시절 중고 오리엔트 시계도 밥만 주면 명품시계처럼 시간은 정확하게 알려줬습니다. 명품시계만 시계고, 싸구려 시계는 시계가 아니라는 관념을 털어내지 못하는 이상,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은 요원하기만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게스트칼럼 / 양혜은

번외의 인간

얼마 전, 마지막 대학 시험을 치르면서 제 인생은 ‘번외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번외는 ‘계획에 들어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대학 생활을 돌아보니 학기별로 두 번의 시험을 치르고 발표와 리포트 과제를 수행하는 학사 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친구들은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학 교육은 고등학생 때와 다를 것 없는 수행평가의 연속입니다. 사소한 차이라면 수업 교재가 더욱 비싸고 두꺼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대학 교육은 학생들을 사고하는 인간이 아닌 계획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줍니다. 주차별 강의계획서에 따라 체계적인 일정 정리를 잘할수록 학점이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주지 않는 교육을 배움이라고 말하긴 싫습니다. 특히, 시험 범위를 완벽하게 외우고 나서 암기 테스트를 받는 무의미한 시험이 싫증 납니다.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한 교수님이 모든 학생이 완벽한 답안을 써서 성적을 주기 힘들다는 이유로 추가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모두가 완벽한 답안을 제출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사고력이 아닌 암기력을 요구하는 시험 문제를 냈고 모든 학생이 열심히 그 답안지를 외웠기 때문입니다. 취업의 관문에서 학점 또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점수에 연연하는 삶은 자신을 작게 만들 뿐입니다.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사실은 공평하지만 ‘모두가’, ‘적당한 노력의 정도’로 잘 받을 수 있는 성적은 어쩌면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물론, 저에게는 잊지 못할 수업들 또한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은 부족한 대답을 하면서 사고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학업과는 관계가 없었지만 ‘첫사랑 경험 쓰기’나 ‘유서 쓰기’와 같은 값진 과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업은 이론에 대한 일방적인 지식 습득으로 전공에 대한 역량을 키우기에도 부족하고 교양수업의 경우에도 토론과 논술 수업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에 있어 객관적인 요소가 많을수록 채점이 효율적일 뿐더러 성적에 대한 이의 제기도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리고 점수를 최우선으로 둔 사람들이 많아져버리니, 사람의 가치까지도 점수로 판단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열심히 학교를 다니진 않았습니다. 봄이 오면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서 꽃을 찾아 떠났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에게는 학교 밖이 훨씬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스무 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귀한 딸이 아닌 대접도 받아보았고 사회에는 예의 없고 성난 사람들 또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미팅을 해보면서 사람을 사귀고 재밌게 노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설픈 공부를 해보겠다고 들어간 학회에서는 고마운 은사님들과 배울 점 많은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만남들이 저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저에게는 여러 가지 숫자들이 남았습니다. 학점을 비롯한 토익 점수, 자격증 개수, 인턴 경험과 경력 기간 등등. 이 숫자들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저를 치장해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숫자를 맹신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를 35점 맞고 어머니의 서명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 담임선생님에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취업을 앞두고 저는 다시 점수로 평가될 예정입니다. 서류전형과 토론 면접, 인·적성 검사를 통해 경쟁자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 가치는 아무도 점수로 매길 수 없다는 걸 새기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미래와 행보는 아무도 예상 못하는 번외의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양혜은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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