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도 아름다운 사회여야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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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도 아름다운 사회여야

2017.01.04

해외여행 중 미술 애호가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현대미술가 중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필자는 몇몇 작가와 함께 르네 마그리트(Ren Magritte, 1898~1967)를 거명했습니다. 그러자 방문한 그 도시에서 마침 초현실주의(surrealism) 대표 작가의 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면서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고는 모임의 참석자 대부분이 전시회를 다녀왔다며, 필자에게도 꼭 시간을 내 찾아갈 것을 적극 권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작가와 필자는 1970년대 한 전시장에서 각별하게 만났습니다.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둘러보다 문득 담배 파이프를 그린 작품 앞에 섰습니다(사진 1). ‘이미지의 반란(The Treachery of Image)’(1929)이라는 제목으로 캔버스가 꽉 차게 멋진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 밑에 작은 글씨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써 놓았습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니? 게다가 제목이 ‘이미지의 반란’이라니? 필자는 작품 근처를 서성이다가 “그렇지, 파이프는 그림일 뿐 파이프 자체는 아니지” 하면서 ‘이미지의 반란’이란 화제(畵題)를 이해했습니다. 창작 예술의 기본인 ‘발상의 전환’의 본보기를 본 것입니다. 

그런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전이니 당연히 놓칠 수 없었습니다. 찾아간 전시장에서 이번에는 두 신사가 큰 거울 앞에 서 있는 작품 ‘복제는 금지다(La reproduction interdite)’(1937)를 만났습니다(사진 2). 작품을 보는 순간 제목과는 무관하게 “그렇지, 저런 거울(鏡)이 필요해” 하는 조용한 탄성이 나왔습니다. 뒷모습도 비출 수 있는 거울…. 

뒷모습이란 맥락에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필자는 다른 문화권에서 살며 겪는 크고 작은 오해가 흥미롭기도 해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에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느냐고 가끔 물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한 미국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뒷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출입문을 통과할 때 뒤에서 바짝 따라 들어가다가는 대부분 봉변을 당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겠지요. 서양 문화권에서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혹시라도 누가 따라오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것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습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 사회의 ‘뒷모습 살펴보기’를 생각하면, 비록 출입문에서 펼쳐지는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를 갈 때의 상황만 봐도 우리와 서양 문화권의 생활 풍습에 차이가 많이 납니다. 
유럽에서는 이사를 가는 경우, 그간 살던 주거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야만 합니다. 다음 입주자가 벽면이나 바닥을 크게 손볼 필요 없을 정도로 청소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원상 복구 차원에서 보수와 정리도 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은 입주계약서에 명기되어 있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의 관습은 거주하던 공간을 나올 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입주 계약에도 이와 관련한 항목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입주자는 새로 들어갈 공간의 벽면과 바닥을 손보며 꾸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뒷모습보다 앞모습을 중시하는 우리네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살펴봐도 앞사람과 뒷사람 간의 행동 반응에 문화권의 차이가 있듯이 사회생활이라는 유기적 공간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자기보다 약하고 뒤처진 자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아주 약하다는 것입니다. 

근래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회자되는 ‘갑질 행태’도 그 한 예입니다. 이는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결과라며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옆 사람과 함께 뒷사람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될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자기 뒷모습도 앞모습만큼이나 ‘아름답게’ 챙겨야 합니다.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행태, 그 결과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부끄러운 행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루빨리 앞모습뿐만 아니라 뒷모습도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길 갈망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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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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