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도질당한 도서관 문화의식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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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질당한 도서관 문화의식

2016.12.30

올해는 인기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 배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배구는 1895년 미국 매사추세츠 홀리요크 YMCA의 체육 지도자 윌리엄 G. 모건(William G. Morgan, 1870~1942)이 농구보다 좀 더 일반인들이 쉽게 배워 즐기도록 고안해낸 스포츠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1916년 서울 종로 YMCA에서 역시 미국인 운동부 지도자인 바이런 P 반하트(Byron P. Bahnhart, 한국명 潘河斗)가 처음 이 스포츠를 소개한 것이 우리나라 배구의 기원입니다. 

어제 2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추계예술대 창조관에서 우리나라 배구 100년 역사를 총정리한 책자 『한국배구 100년』의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원로들의 얼굴엔 남다른 감회가 피어오르는 듯했습니다. 홍안의 소년 시절 배구공을 쫓아다니며 열정을 쏟던 기억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겠지요. 

우리 배구 100년 역사를 책자로 엮어내자고 앞장선 이들 역시 배구 원로들이었습니다. 국내 배구를 관장하는 스포츠단체 배구협회가 영락해 책 한 권 엮어낼 형편도 못 되자 원로들이 팔을 걷고 나섰던 것입니다. 후배들도 십시일반 힘을 보태 근 1년의 산고 끝에 어렵게 책자는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후배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책을 펼쳐 놓고 덕담을 나누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제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원로 배구인들이 "잘 만들었다. 수고 많았다"고 칭찬할 때마다 오히려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꼬박 한 해 걸려 이렇게 아귀가 맞지 않는 책을 만들어 내다니, 자책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렇게 부실한 자료밖에 구할 수 없었던 현실에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배구협회 운영에 관계했거나 배구경기 취재 경험을 가진 선후배 다섯 사람이 연초부터 책 만드는 일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출발부터 난항이었습니다. 당연히 있으리라 기대했던 자료들이 망실되고 증발되어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1년 간의 산고 끝에 빛을 본 『한국배구 100년』

한때 정·재계 실력자들이 살림을 맡아 아쉬울 것 없던 배구협회는 후원 기업들이 떠나가고 프로 연맹이 독립해 나가며 빈 껍질만 남아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료들마저 제대로 간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를 온통 소란 속에 몰아넣은 ‘최순실게이트’가 세상에 노출된 계기의 한 가닥은 알고 보면 체육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승마협회처럼 회오리에 직접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배구협회 역시 게이트 주역들의 서슬에 못 이겨 강제된 변화의 와중에서 지금껏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당연히 배구 100년사 발간의 주체가 되어야 할 배구협회가 실제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주요 스포츠 경기를 취재, 보도해온 신문사의 자료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쇄 매체의 쇠락으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거나 사옥을 옮겨 다니다 보니 무슨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기사 스크랩북에서 발행 날짜를 확인한 사진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도서관뿐이다 싶어 국립중앙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진을 쳤습니다. 실제로 제본된 신문 원판에서 많은 자료를 찾아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쩌면 하나밖에 없을 그 신문 원본들이 이곳저곳 찢겨나가 흉한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소위 글을 보고 쓰는 사람들의 소행이란 말인가?’ 처음엔 너무 기가 막혀 신문을 펼쳐 놓은 채 직원에게 달려가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도서관엘 드나들며 그런 상황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문은 칼로 잘려나가고, 또 어떤 신문은 볼펜 심으로 짓이겨져 잘려나가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본관과 초현대식 디지털도서관 모습. 그러나 번드르르한 건물, 호화스러운 시설이 문화 수준을 말해 주는 건 아닙니다.

중대 사안이 보도되었을 바로 그 날짜 해당 지면이 휑하니 잘려 있을 때, 높은 관심을 모았던 중요 대회의 예선 경기 스코어를 하나하나 애써 찾아내 환성을 지르다가 마지막 결선 스코어가 잘려나갔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낭패감이란. ‘아, 이게 고려 팔만대장경, 조선왕조 500년 실록을 자랑하는 나라의 후손들이 지닌 의식 수준인가?’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3개월 정도로 예상했던 자료 수집은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도록 목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8월이 다 갈 무렵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자료수집에 매달리다가는 해 안에 책을 낼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정리하고, 원고를 써 나가면서 보충하자.’ 그러나 더 이상의 자료 보충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회는 순위만 있고 경기 스코어가 없고, 어떤 대회는 예선 경기 스코어는 있으나 결선 기록이 없고, 어떤 대회는 A그룹 스코어는 완벽한데 B그룹 스코어는 터무니없이 부실하고.

군데군데 잘려나간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철의 참혹한 모습

그나마 성한 기록은 책에 담고, 이빨 빠진 기록은 CD에 담아 작업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고를 마감하면서 아쉽고 미안한 마음에 ‘부실한 경기기록을 계속해서 찾아내 보충해 주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글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한 해 동안 꽤 많은 날들 늦은 밤까지 기초자료 정리, 수백 장의 사진 점검, 1천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 작성에 매달렸습니다. 배달 도시락을 지겹도록 먹어 보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라 작업실에서 가까운 추계예술대 게스트하우스의 냉방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책이건만 보람과 자부심 대신 아쉬움과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스트레스의 후유증인지 지금껏 귀울음[耳鳴]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의 찢어진 신문철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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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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