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인사 파행, 누가 과학계를 망치나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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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인사 파행, 누가 과학계를 망치나

2016.12.28

요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제대로 굴러가는 곳이 있기나 한지 찾기 힘듭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엉터리 짓을 하는 힘센 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요즘처럼 과학계의 인사가 헝클어진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9월 1일 갑자기 사퇴했습니다.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둔 때였습니다. 스스로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정부의 압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습니다. 이 사태는 10월 이화여대 입시 비리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사퇴 후 후임 인선에 들어갔습니다. 10명이 이사장 공모에 응했습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혜 의혹과 직결된 이화여대 김경숙 신산업융합대학장의 남편 건국대 어느 교수가 공모에 지원했습니다. 과학분야라 하기 어려운 축산분야 교수가 이사장 공모에 나선 것이고, 이는 '최순실 추문'의 일부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과학계가 들썩댔습니다. 그는 부적격 처리됐습니다. 다시 공모가 진행됐고 후임이 올 때까지 넉 달 공백이 생겼습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선임도 안개 속에 있습니다. 공모 과정에서 이미 누가 내정돼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평가원 이사회는 이사 13명이 참석하여 새 원장 선출 투표를 했고, 과반 표를 얻은 현 박영아 원장을 차기 원장에 재선임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이사회가 원장 승인을 요청지만, 미래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결정을 미뤄오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연임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평가원이 출범한 뒤 이사회가 올린 원장 후보를 주무부처가 승인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고,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이 결정에 불복하여 박영아 원장은 미래부 최양희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는데, 산하기관장이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도 처음입니다.

과학 분야의 부끄러운 낯

최근 몇 가지 사태에서 드러난 과학계 모습은 낯 뜨겁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 때를 보죠. 정부에 초기 대응능력이랄 게 없었습니다. 발생 지역이나 발생한 병원 같은 기본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아 온 국민이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외국인이 나라 전체를 감염지역으로 오인하게 했습니다. 외국 관광객이, 환자가 발생한 지역만 조심하면 될 것을, 아예 우리나라에 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국민 경제가 어려운 판에, 정부가 경기를 더욱 얼렸습니다. 그 뒤 감사원은 초동대응 부실 책임을 물어 질병관리본부장 같은 실무 관련자 16명을 징계하도록 요구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그때 지휘를 맡았던 문형표 전 장관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갔습니다. 시민단체들은 문형표 전 장관을 직무 유기로 고발했습니다. 이들은 “메르스 사태로 국민 건강 망쳐놓고, 국민 노후를 망칠 문형표를 즉각 처벌하고 해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금은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으니, 시민단체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올해에 와서야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우리에게 뼈아픈 기록입니다. 소비자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익만을 챙긴 기업, 학자나 연구자로서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렸던 학자, 안전 관리에 무능하고 안전 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정부기관, 이들 탓에 선량한 우리 국민이 아프고 죽어갔습니다.

전문가 지도자로서 자질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재앙을 던졌습니다. 그 재앙은 선량한 국민을 덮쳤습니다.

과학계 인사 감시와 평가 체제 갖추어야

과학분야에서 지도자는 자기 분야를 통괄할 수 있는 전문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전문지식은 자기의 연구 실적이나 경력으로 객관적으로 증명돼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자질도 지녀야 합니다. 이런 자질이 있는지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평가할 수 있고, 마련된 임명 절차를 따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겁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숨은 손이 제멋대로 휘둘렀습니다.

우리는 인사가 잘못됐음에도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엉터리 인사를 임명해도 과학계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원자, 추천권자, 인사권자, 그리고 감시자가 각자 제자리에서 제구실을 할 때 과학계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습니다. 임명권자나 승인권자가 적임자를 뽑아야 합니다. 개인 정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 당연한 게 안 되고 있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임명하려 할 때 나섭시다. 정부의 인사는 그 분야의 전문 단체와 시민 단체가 감시하고 평가합시다. 지금까지의 인사 관행을 바로잡읍시다. 전문가가 전문가답고, 과학자가 과학자다워야 합니다. 과학계가 과학계답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멍듭니다. 과학계도 인사가 만사입니다. 과학계도 촛불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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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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