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 2016 ADEU 송년 음악


다사다난(多事多難) 2016 ADEU 송년 음악


  2016년을 떠나보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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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의 한 시대를 어루만져 줄, 귀한 음악들 몇 곡을 골라봤다. 온라인으로 준비한 작은 송년 음악회다.


첫 번째 곡. J.S. 바흐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mein Gott’

바흐의 <마태 수난곡> 제2부에 나오는 콘트랄토 아리아이다. 유대풍의 비가를 연주하는 솔로 바이올린,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이뤄진 현악부 그리고 통주저음(바소 콘티누오)이 함께 음악을 맡는다. 예수의 존재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괴로움과 자괴감, 속죄의 비원을 담아 노래하는 깊은 탄식의 음악이다. 애잔한 바이올린과 대비되는 비감한 알토의 음성이 가슴 깊이 내려 앉는다.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 Christa Ludwig


41세의 나이로 요절한 영국 가수 캐슬린 페리어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시대의 불안과 고요한 슬픔이 기도하듯 내재되어 있다. 그녀가 불렀던 말러 <대지의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영어로 노래하는 <마태 수난곡> 또한 신성한 슬픔과 인간적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콘트랄토 캐슬린 페리어 Kathleen Ferrier


두 번째 곡. 베토벤 <교향곡 제9번> 

베토벤의 아홉 번째 교향곡, 일명 ‘합창’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구축한 ‘빈 체제’가 붕괴일로를 걷기 시작한 1824년에 쓰여진 곡이다. 몇 년 뒤면 새로운 억압정치의 상징이던 빈 체제는 완전히 괴멸되고 유럽 전역은 혁명의 불길에 휩싸인다. 그 시대의 격동과 불안을 베토벤은 완벽한 형식미 속에서 터질 듯 포효하는 격정의 어조로 담아냈다. 


격진(激震)하는 빈 필의 통렬한 연주와 음악 속의 서사를 완벽하게 포착해내는 거장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압도적인 지휘가 더없는 감동을 안겨다 준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전곡,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세 번째 곡. 베르디 <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신중현이 1972년에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은 뒤틀린 시대를 살아가던 한 예술가의 절규요, 피울음 섞인 희망의 송가(頌歌)였다. 최근에는 이 곡을 금지곡으로 만들었던 모 정치인 세력의 개인 팬클럽이 몰려 다니며 ‘건전가요’처럼 불러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군가로 바꿔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 벌거벗은 천박함은 곧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전 유럽을 휩쓴 반 오스트리아 혁명의 열기에 맞닿아 있는 곡이다. 수 백 년 간 오스트리아의 강고한 정치군사적 압력 아래서 신음하던 북이탈리아의 민중들은 곧장 이 합창에 열광했다. 이탈리아 독립투쟁의 신화적 지도자 주세페 마치니 또한 런던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도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자유와 독립, 조국애의 영원한 상징과도 같은 음악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극우정당 ‘북부연맹’이 이 곡을 무슨 애국가인양 불러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평생 전체주의를 혐오했던 휴머니스트 베르디가 본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매년 1월 1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는 성대한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공중파를 통해 전국에 중계도 해준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매년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곡이다. 망향과 조국애가 뒤섞인 이 노래는 이제 전 세계인들을 위한 자유의 송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베르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베네치아 라 페니체 합창단



마지막 곡.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 제2번 

마치 비올라 다 감바처럼 울리는 피에르 푸르니에의 은은하고 고상한 첼로 소리, 그리미요의 따뜻한 격조의 바이올린, 니키타 마갈로프의 정밀하면서도 엄격한 피아노가 한데 어우러진다. 


하긴, 연말이면 온종일 슈베르트의 실내악만 듣고 싶어진다. 슈만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슈베르트의 3중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인간사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슈베르트 <피아노3중주> 제2번 2악장. 아르투로 그리미요, 피에르 푸르니에, 니키타 마갈로프. 

1972년 12월 스위스 실황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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