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에 대한 기억들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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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에 대한 기억들

2016.12.15


요즘에도 시골에 가 보면 대청마루나, 안방에 걸려 있는 사진액자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액자 안에는 집안의 중요한 행사, 이를테면 회갑잔치나, 자식들의 결혼식 사진, 대학교를 졸업하며 학사모를 쓰고 있는 사진들이 모자이크 형태로 들어 있습니다.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어디를 가나 면소재지 규모의 동네에는 사진관이 있었습니다. 사진관의 쇼윈도에는 사진기사가 정성 들여 찍은 사진 몇 장이 걸려 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대처로 시집 가 아줌마가 된 여성,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고등학생 등 주로 흑백사진이며 더러 사진기사가 보정을 한 컬러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동네에서 결혼식이 있거나 회갑잔치 같은 것이 있으면 사진사를 부릅니다. 사진기사는 자전거에 삼각대며, 카메라를 싣고 출장을 갑니다.

그 시절에는 수명이 짧아서 환갑 때 기념사진은 필수였습니다. 환갑기념사진은 나중에 영정사진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후손들은 장수하는 부모를 모시고 찍은 귀한 사진이 됩니다.

환갑사진은 대개 오전에 찍습니다. 환갑 잔칫상을 앞으로 하고, 환갑을 맞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자손들이 빙 둘러섭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잔뜩 긴장해 있습니다. 사진기사가 웃으라고 하면 잠깐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긴장한 얼굴로 되돌아갑니다.

사진기사는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와도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같은 경우는 앨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운동회나, 소풍, 수학여행, 졸업식 등 주요 행사가 있으면 달려와서 사진을 찍습니다.

소풍을 가서는 학급단체 사진이며, 노래자랑 등의 사진을 찍습니다. 학생들은 사진기사 앞으로 가서 친구들과 혹은 담임 선생님과 같이 있는 모습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사진기사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선금을 받거나, 이름을 적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찍어 달라면 무조건 찍어주고 나중에 사진관으로 찾으러 올 때 돈을 주면 됩니다. 그래도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외상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사와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월남에 다녀온 동네 형님뻘 되는 분한테 올림포스 카메라를 빌려서 소풍을 갔었습니다. 필름 값이 비싸던 시절이어서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몇 번이나 자세를 바로잡거나 장소를 옮겨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24방짜리 후지카 필름으로 기억이 됩니다. 24방을 다 찍었는데 친구가 카메라 뚜껑을 열어 버렸습니다. 빛이 들어가면 사진 인화가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친구 덕분에 필름 값만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소풍날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관을 찾기도 합니다.
사진관의 배경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얼굴만 크리스마스카드 형태의 그림에 넣는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카드에는 ‘참사랑’, ‘우정’, ‘인내’에 관한 짧은 시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 사진은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의 사진을 교환하기도 하고, 앨범에 붙여 간직합니다. 친구가 보고 싶을 때는 사진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슬그머니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80년대 들어서 컬러 사진이 등장합니다. 컬러 사진이 등장하면서 카메라의 보급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웬만큼 사는 집에서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필름을 인화만 했습니다.

칼라사진은 흑백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빈부의 격차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가격이 비싼 브랜드 옷을 입은 사람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속의 얼굴들도 흑백사진처럼 잔뜩 굳어 있거나, 어설픈 웃음이 아닙니다. ‘김치’, ‘치즈’ 라는 말을 대뇌며 찍은 사진들의 표정은 모두 비슷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입니다.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은 특별한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한 다음에 ‘김치’, ‘치즈’ 라고 대뇌는 것도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사진의 대상이 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혼자서도 사진을 찍을 수가 있습니다. 사진을 현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 혹은 컴퓨터에 보관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사진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 시작합니다. 사진은 추억의 길목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면만 간직하고 있기를 거부하고 일상과 하나가 되면서, 협박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내밀하게 간직해야 할 사진을 무차별적으로 SNS에 올려서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일도 흔하게 벌어집니다.

인터넷에는 죽어가는 사람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눈을 찡그리고 봐야 할 험악한 사진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반드시 아름답고 소중한 장면만 사진을 찍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잔뜩 굳어 있는 얼굴의 흑백사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은 한 컷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흑백사진에서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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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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