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국내 첫 회고전



현대 건축 패러다임 바꾼 

건축 모형 등 미공개작 140여점


   1965년 9월 1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치러진 장례식 영상이 펼쳐지고, 생전 자신의 장례식 곡으로 정해뒀다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2번 '장송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림으로 매일 창조의 근육을 다졌다”고 말한 르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 사진과 그가 썼던 이젤이 전시장에 나왔다. /김미리 기자


*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 또는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작가이며 현대 건축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30대에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다. 그는 현대 디자인의 이론적 연구의 선구자이며 밀집 도시의 거주자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는 5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중앙유럽, 인도, 러시아에 자신의 건물들을 만들었으며, 아메리카에도 하나씩 건축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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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붙은 소설가 앙드레 말로의 추모사에 눈길 머문다. "그는 오로지 인간을 위한 건축만을 위해 싸웠다."


대규모 공동주택(현대식 아파트)을 고안해 현대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의 국내 첫 회고전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 전(展): 4평의 기적'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마침 올해 7국에 있는 그의 건축물 1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터라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됐던 전시다.


건축 전은 작품인 '건물'을 전시할 수 없는 한계 탓에 주로 모형, 도면 같은 요소로 구성되지만 이번 전시는 회화 전에 가깝다. 르코르뷔지에가 그린 그림이 큰 줄기를 이룬다. '곡예사가 매일 근육훈련하는 것처럼 매일 그림 그리며 창조의 근육을 단련했노라' 고백했던 그다.


르코르뷔지에는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 라 쇼드퐁의 예술학교에서 시계 세공을 배우다가 스승의 권유로 건축으로 전향했다. 스승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결정적인 그림 '숲의 도안화 연구'(1905년)가 전시됐다. 손바닥만 한 이 한 점 그림이 없었다면 위대한 건축가는 없었을지 모른다. 1911년 '동방 여행' 때의 드로잉을 포함해 미공개작 140여점도 처음 나왔다. 동방 여행은 그가 건축가의 길을 확고히 하고 프랑스로 건너간 계기가 됐다.


건축물을 함께 둘러보고 있는 르코르뷔지에(오른쪽)와 

피카소. /르코르뷔지에 재단


미술가로서도 꽤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입체파에서 나아가 장식을 더 배제해야 한다며 1920년대 '퓨리즘(순수주의)'이라는 미술운동까지 창시했다. 이 무렵 만든 건축 작품이 '사보아 저택'. '필로티(건물 1층을 띄우는 방식), 옥상 정원, 자유로운 파사드,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으로 요약되는 르코르뷔지에의 '현대 건축 5요소'가 구현된 기념비적 작품이다. 유리병, 물잔 등을 조형 자체에만 집중해 그린 그림과 사보아 저택 모형을 번갈아 보면 그의 그림은 결국 건축을 위한 설계도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아파트의 시초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함께 둘러보는 피카소, '모듈러 이론(천장의 높이 등 사람이 움직일 때 불편함 없는 건축의 황금비율)'을 검증해 준 아인슈타인 등 장르를 넘나들며 그를 지지한 동시대 천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지막을 보냈던 16㎡(4.8평) 통나무 집을 크기로 재현한 모형은 그의 간소한 건축 철학을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된 설계 도면이 모두 복사본인 건 옥에 티. 문화유산 등재 건축물을 보유한 7국 국기만 생뚱맞게 걸렸을 뿐 각각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그의 건축을 심층적으로 보려는 이들에겐 아쉬운 대목이다. 전시 내년 3월 26일까지. (02)532-4407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5/20161215001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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