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쓸 때와 내보낼 때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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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쓸 때와 내보낼 때

2016.12.14


전직 청와대 양식 조리장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섭섭한 소리를 했습니다. 청와대 직원은 그만둘 때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그는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채 수고했다는 말만 전해들었다고 합니다. 만나지 못한 이유는 대통령이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인터뷰한 신문은 이런 발언에 비춰 박 대통령은 머리 등을 손질하지 않으면 관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며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의 선정성과 무분별에 실망해온 한 여성은 머리 만지는 이야기까지 보도해야 하느냐고 분개했습니다. 자기 같은 사람도 부스스한 민낯으로는 남은 물론 남편 앞에도 나서지 않는데 여성 대통령이 그러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니냐, 언론이 그런 것까지 시비 거는 게 과연 옳으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의분이며 당연한 질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일을 나는 다른 각도로 살펴보려 합니다. 그날 조리장을 만나지 못한 대통령은 나중에라도 고마움을 표하며 격려했을까요? 그러지 않았거나 못한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쁜(최순실 사건 이후에는 이 말도 어쩐지 우습지만) 대통령이 그런 일까지 챙기는 건 무리일 테니 밑엣사람이라도 뭔가 했어야 하지만 대통령이 평소 신경쓰지 않는 일을 누가 일부러 나서서 하겠습니까? 조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근무해왔다는데 6년 넘게 일한 사람을 버림받은 듯한 기분으로 떠나가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가 청와대를 나가게 된 것이나 그 이후 이런 ‘폭로’를 하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쓰거나 버리는 일은 국가나 사회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박 대통령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의견도 아닌 남의 말을 그대로 옮겨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며 문체부 간부들을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경우 후임도 결정하지 않은 채 1차관도 없는 행정 공백상태에서 돌연 면직 조치했습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로 근 40일 만에 총리후보 지명자에서 자연스레(?)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 김병준 국민대 교수 기용과정도 참 어이가 없습니다. 야당의 압박 속에 개헌카드를 꺼내든 박 대통령은 반응이 나쁘자 김 교수를 일방적으로 총리 후보로 제시했습니다. 야당은 물론 각계 인사들의 의견을 폭 넓게 들어 인선을 해도 먹힐까 말까 한 상황에서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발표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다시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국회를 찾아가 “어디 그러면 총리 후보를 대보세요” 했는데, 일국의 총리 후보를 장기판의 졸쯤으로 알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습니다. ‘김병준 총리 후보’는 내 판단으로는 좋은 카드였습니다. 벼슬 욕심에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봉사하려는 충정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훌륭한 인적 자원을 이렇게 구기고 망가뜨려 '버리는 카드'로 만들었습니다.  총리 후보를 발표하면서 현직 황교안 총리에게는 문자메시지나 서면으로 해고 통보를 했다는 말까지 돌지 않았습니까? 

이명박 대통령 때도 외부 행사에 참석한 차관을 청사에 들어오는 도중에 내쫓은 적이 있습니다. 장관의 일방적인 고자질만 듣고 취한 경질조치였습니다. 또 민간인 불법 사찰로 비난을 자초했던 이명박 정부는 멀쩡한 기관장을 내쫓고 다른 사람을 앉히기 위해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무실을 뒤지거나 흠을 잡아 일방적으로 해직 통보를 하곤 했습니다. 
      
조선 시대 인사정책의 핵심은 인재를 등용할 때 친소(親疏)에 얽매이지 않는 입현무방(立賢無方), 오로지 재주만을 기준으로 등용하는 유재시용(惟才是用)이었다고 합니다. 기용할 때 예의와 정성을 다해 모시고, 그만두게 할 때에도 마땅한 품위와 대접을 잊지 않는 게 인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맹자 양혜왕장구 하(梁惠王章句 下)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가까운 신하들이 모두 ‘그 사람 어진 사람입니다’ 하더라도 아직 등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 대부들이 모두 ‘어진 사람입니다’ 하더라도 아직 안 됩니다. 온 백성이 다 ‘어진 사람입니다’ 하면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잘 살펴보아, 참으로 어진 인물임을 알게 된 뒤에 등용하십시오. 가까운 신하들이 모두 ‘그 사람은 안 됩니다’ 하더라도 듣지 마십시오. 여러 대부들이 모두 ‘안 됩니다’ 하더라도 듣지 마십시오. 온 백성이 다 ‘안 됩니다’ 하면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잘 살펴보아 그가 안 되겠음을 알게 된 후에 내쫓으십시오."

그런데 우리의 국정 책임자들은 사람을 너무도 함부로 대하고 편벽되게 다룹니다. 인재를 기르고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합니다. 특히 어쩌면 그렇게도 사람을 잘못 보는지 모자라거나 비뚤어지거나 되바라지거나 용렬한 사람들만을 골라 기용하곤 합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려 합니다. “어진 이는 자신이 등용되지 않는 걸 알면 원망하며 불초한 자는 천시당하는 걸 알면 원수로 여긴다. 어진 이가 원망을 갖고 불초한 자가 원수로 여기면 원망과 원수가 나란히 앞을 막는 것과 같은데, 망하지 않으려고 버틴들 가능하겠느냐?”

그런데, 이렇게 사람대접을 하지 않고 인물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가 박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 책임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임직원들을 자기 집 머슴이나 종처럼 부리고 다루는 대기업가들, 근본이 없는 못난 벼슬아치들, 큰 도장이든 작은 도장이든 권한을 가진 사람 모두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기꺼이 쓸 때와, 어쩔 수 없어 내칠 때 한결같고 진정성이 있는 태도를 갖춘 사람이 훌륭한 리더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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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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