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진실의 세상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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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진실의 세상

2016.12.12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를 대표하는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를 선정했습니다. ‘탈(脫) 진실’로 번역된 이 단어는 사실이나 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게 사회에서 더 잘 통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캐스퍼 그래스월 옥스퍼드 사전 대표는 “소셜미디어가 뉴스의 원천으로 부상하고 기득권에서 나온 팩트(fact:사실)에 대한 불신이 늘어났다”며 “이 단어가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단어가 된다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포스트 트루스는 지난 6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입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사회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던 진실과 사실이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정황입니다. 그 중심에 언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브렉시트 찬반투표 과정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분담금이 너무 많다’고 한 탈퇴파의 주장과 보도는 잔류가 유력할 것이라는 여론조사를 뒤엎는 결정적 변수가 되었습니다. 분담금 액수가 부풀려졌고 언론이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한 결과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SNS 가짜 기사 제작자가 “트럼프가 백악관에 가게 된 것은 내 덕분”이라며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나선 일입니다. 제작자 폴 호너(38)는 광고 수입 등으로 한 달에 최소 1만 달러를 벌었다고 했습니다.

호너는 대선 기간 중 “반 트럼프 시위대가 3,500달러를 받고 시위했다”는 가짜 기사를 썼는데 트럼프의 차남과 선거대책본부장까지 이 가사를 SNS에서 공유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짜 기사가 회자할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마구 막말을 했지만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부합하면 그냥 믿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트럼프에게 유리한 가짜 뉴스를 무분별하게 유통시켰다는 비난에 부딪힌 페이스북과 구글이 ‘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나섰지만 사후약방문 격입니다.

가짜 뉴스의 위력은 기원전에도 있었습니다. 전국칠웅의 한 사람인 중국 위(魏)나라 혜왕(惠王 AD400~AD334)이 전쟁에 져 조(趙)나라에 인질로 태자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태자를 시종하게 된 방총(龐)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방총-“왕께서는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왕-“누가 믿겠는가!”
방총-“두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역시 의심스럽지!”
방총-“그럼 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도 믿으시 겠지요?”
왕-“그때는 믿지!”

방총은 왕에게 간청했습니다. “애당초 시장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씩이나 같은 말을 하면 시장에 틀림없이 호랑이가 나온 것이 됩니다.(고사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저는 태자를 모시고 조나라로 갑니다. 조나라는 위나라 시장보다 훨씬 멉니다. 아마 제가 떠난 뒤 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자가 세 사람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왕께서는 그들의 입방아에 제발 귀를 기울이지 말아 주십시오.”

왕은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안심하게! 나는 말이지, 내 자신의 눈 밖에 믿지 않으니까.”
이런 언약을 받고 방총이 위나라를 떠나자마자 바로 왕에게 참소하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뒷날 인질이 풀려 귀국한 사람은 태자뿐이었고, 방총은 왕의 의심을 받아 끝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입과 실록으로 전해졌을 뿐이지만 참언(讖言)은 어리석은 백성뿐만 아니라 똑똑한 왕까지 눈멀게 하는 위력이 있음을 알려준 사례입니다.

죽(竹)의 장막에 가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수난에도 언론이 앞장서거나 이용당했습니다. 모택동은 1919년 자신이 편집책임자인 상강평론(湘江評論)지를 통해 공맹의 도(道)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공맹의 길은 2,000여 년에 걸쳐 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한 반동지배계급의 독재사상으로, 인민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자의 예교(禮敎)라는 족쇄를 분쇄해야 한다”고. 공자의 첫 번째 수난이었습니다. (이채주 <중국 문화혁명 연구> 참조)

두 번째 수난은 문화혁명 때였습니다. 1966년 11월 28일 언론의 선동을 받은 홍위병 1만여 명은 산동성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의 무덤을 훼손하고, 공자상(像)을 밧줄로 묶어 마을로 끌고 다녔습니다. 또한 공자묘(孔子廟) 대성전에 걸린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현판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사람 모두가 숭상해온 공자가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공산국가에서는 반봉건(反封建)의 타도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수난은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 시절이었습니다. 1974년 2월 2일 인민일보는 ‘임표 비판, 공자 비판 투쟁을 최후까지 밀어붙이자’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모택동이 후계자로 지목했던 임표(林彪)를 두고 “부르주아계급의 야심가, 배신자, 매국노 임표는 공자를 숭배하고 공맹의 도로 당을 탈취하여 자본주의를 부활하려는 사상적 무기로 삼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이론지 홍기(紅旗)도 “노예제도를 옹호한 공자는 교활하고 음흉했다”고 공박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탈 진리뿐만 아니라 탈 양심, 탈 도덕, 탈 윤리, 탈 전통, 탈 정의 시대로 치달을지도 모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그런 현상들이 속속 불거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권이나 정당, 재벌이나 이해집단의 지배를 받는 언론은 지금도 많습니다. 그 언론이 사실과 진실을 왜곡한 채 깨춤을 추면 백성은 어지럽습니다. 상식과 가치가 흔들리면 나라가 혼란해집니다.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그것을 남용하려는 인간 뿐’이라고 한 괴테의 말이 귓전을 맴돕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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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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