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바이칼호보다 소양호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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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바이칼호보다 소양호

2016.12.09


지금 대한민국은 우울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탄핵안이 오늘 국회에서 결판납니다. 가부간에 불행한 일입니다. 경제도 심란합니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수출과 내수경기, 소득이 모두 내리막입니다. 실업률과 물가는 올라가고 빈부격차는 커집니다. 무능한 정치에 대한 탄핵민심의 바닥에는 경제의 주름이 짙게 깔려있습니다.

내년은 정유(丁酉)년이자 IMF사태의 20주년입니다. 정유재란처럼 제2의 IMF사태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습니다. 외국의 신용평가 회사들도 국가적 리더십 공백에 빠진 한국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숱한 시련을 헤쳐서 오늘에 왔습니다. 5,000만 명의 인구가 9만9,000여㎢의 부존자원도 빈약한 좁은 땅을 개척해 세계10위권의 경제 강국을 일궜습니다. 탄핵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우리가 역경 속에서 체득한 시련 극복의 노하우와 DNA를 살려야 할 때입니다.

필자는 올해 여름과 가을에 걸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수가 있는 두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빅토리아 호수가 있는 아프리카 우간다와, 바이칼 호수가 있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였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선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대평원도 봤습니다.

외국을 여행하며 지평선을 볼 때마다 나는 지평선이 없는 조국의 비좁은 땅을 생각하며 부러워했습니다. 3면이 바다여서 수평선은 바다에 가면 볼 수 있지만 호수에서 바다 같은 수평선을 보는 감회도 컸습니다. 그러나 두 곳의 지평선과 수평선이 더 이상 부럽진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숲이 우거진 우리의 산하와 소양호가 생각났습니다. 땅이 넓고 호수가 바다 같기로 그것을 이용해 인간의 삶에 유익을 주어야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호수의 면적은 빅토리아호수가 6만8,800㎢로 3만3,000㎢의 바이칼호수보다 배 이상 크지만 저수량은 바이칼이 약 10 배나 많습니다. 빅토리아호수의 평균수심이 40m, 최저수심 83m인 데 비해 바이칼호수는 750m, 1,523m에 이릅니다. 그 결과 바이칼 호의 저수량은 2만2,000㎦로 빅토리아호수의 10배 가까이 되고 전 세계 담수저수량의 20%를 차지합니다.

한국 최대의 인공호수인 소양호는 면적이 70㎢, 저수량 2.9㎦로 이들 두 호수에 비교가 안 될 만큼 작습니다. 그러나 이 호수 물은 아래로 춘천, 의암, 청평, 팔당 댐으로 이어지면서 1,000만 명의 서울 시민을 포함해 주변도시들에 마실 물을 공급하고, 주변의 농경지와 공장지대에 물을 댑니다.

빅토리아호의 물은 나일강의 원류가 돼 북쪽으로 우간다와 수단 이집트를 관통, 지중해를 향해 6,600km를 흐릅니다. 나일강은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 문명을 꽃피운 젖줄이 되었으나 현재 이 강의 양쪽 지역은 풍요와는 거리가 멉니다.

바이칼의 물은 먼저 앙가라강으로 1,825km를 서북쪽으로 흐른 뒤 예니세이강(총연장 5,539km) 중류에서 만나 북극해로 들어갑니다. 이르쿠츠크로부터 북쪽은 동토지역으로 인구밀도도 낮습니다. 바이칼의 물이 나일강과 달리 문명사적인 기여를 하지 못한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바이칼호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은 이르쿠츠크라는 인구 70만 명의 도시를 만든 것이 고작이 아닐까 합니다. 앙가라 강을 막아 건설한 수력발전으로 러시아에서 이르쿠츠크의 전기료가 가장 싸다고 했습니다. 공상 같은 얘기지만 이 강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흘러 아무르 강과 만났다면 몽골과 중국, 만주, 연해주 일대에 문명사적인 기여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앙가라강 어귀에 있는 샤먼바위의 전설은 나에겐 그런 공상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바이칼 아버지에게 앙가라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북쪽에 사는 청년 예니세이를 연모해 야반도주하게 되자 딸의 길을 막으려고 던진 샤만 바위에 앙가라가 맞아 죽었고, 그녀의 눈물로 강이 되었다는 겁니다.

빅토리아호는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시절 영국인들이 호수에 대형 민물고기인 나일 농어를 이식함으로써 토종 물고기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선 하수처리 시설이 안 된 생활하수가 도처에서 그대로 호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빅토리아호와 연접한 케냐, 탄자니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겨졌습니다. 빅토리아 호수는 수자원의 보고이자, 3국간 물류의 요충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를 고동치게 할 심장과 같은 존재이지만, 이 세 나라는 모두 1인당 GDP 600달러 대의 국가들입니다. 천혜의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르쿠츠크의 평원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농부 파홈이 생각날 만큼 광활했습니다. 파홈은 하루 동안 걸어서 돌아온 만큼 땅을 차지하라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 욕심으로 너무 멀리 갔다가 지쳐서 죽었습니다. 열차로 며칠을 가도 끝이 없는 평원은 거의가 지을 사람이 없어 묵혀두는 비옥한 땅입니다.

보훔의 얘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을 생각하게 합니다. 극동에서 서유럽까지 시차지점이 11곳이나 되는 러시아는 영토의 크기로 세계 최대의 국가입니다. 주체 못할 만큼 땅부자이면서 전략적 중요성 운운하며 크림반도를 침공해 국제분쟁을 만들고 있으니 파홈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 땅, 그런 호수가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좁은 땅을 가꾸고 다듬어서 풍족하게 활용하는 대한민국이 더욱 자랑스럽게 여겨집니다. 탄핵정국의 불행 속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자랑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100만, 200만 명의 군중이 펼치는 평화적인 시위가 그것입니다. 세계가 한국인의 절제력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절제력을 잃지 않는 한 지금의 진통 뒤에 보다 나은 미래가 탄생될 것입니다. 비관의 먹구름 시대에 낙관을 꿈꾸는 이유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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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대한언론인회 주필,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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