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나?

카테고리 없음|2016. 12. 6. 22:34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요약 

집단 행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한다. 

현대 사회의 시위는, 아주 이질적인 사람들이 참여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질적인 참여자들은, 금새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게 된다. 

또한 수많은 익명의 리더들이 이러한 모임을 강력하게 조직해 나간다.


집단 효능감은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전체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다. 집단 효능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집단 행동은 보다 건강해지고 자발적인 경향을 띤다. 이들은 자신들이 마음 속에 정해 놓은 선을 넘는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출처 캠핑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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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절망한 사람은 집단 행동을 하지 않는다.

연구에 의하면, 완전히 자원이 박탈당한 사람들은 집단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용한 심리적 혹은 물질적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능동적인 집단 행동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죠. 이를 다른 말로 효능 이론(efficacy-theory)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 효능이라고 하면,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효능이란, 집단의 힘을 통해서 상황이나 정책이 바뀔 가능성에 대한 기대수준, 즉 집단적 효능감(group efficacy)을 말합니다.


집단 행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에, 이들은 개인의 삶에서도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개인적 효능감(personal efficacy)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집단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폭력시위나 불법 시위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 효능감은 우수하지만, 집단적 효능감은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주변에는 개인적인 삶을 대해서만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자기 일이나 잘 할 일이지!”라며 혀를 끌끌 차곤 합니다. 심리학자 베르트 클란더만스(Vert Klandermans)은 이들이 정치적 냉소주의의 희생자라고 말합니다. 개인적 효능이 우수하면서도 냉소적인 사람은, 정치적인 집단 행동에 무관심해집니다. 반대로 개인적 효능이 열악하면서 냉소적인 사람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집단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최근 집단 행동의 중요한 특징, 다양한 참여자의 강력한 결속.

과거에는 주로 대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보통 시민이 시위에 나서는 일은 별로 없었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시위에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같은 대학생들도, 전공에 따라서 참여도가 달랐습니다. 같은 노동자라고 해도, 생산직 노동자에 비해 사무직 노동자들은 집단 행동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체감하는 상황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 각기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에 순종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 SIT)라고 합니다.


사회적 정체성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 노력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회에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집단, 즉 하층 집단이나 사회의 외곽에 위치한 집단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속을 바꾸는 것이 더 현명한 것 아닐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집단 간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불법일 때, 주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인종 집단처럼 도저히 다른 집단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 혹은 거리의 갱처럼 집단 자체가 불법인 경우입니다. 이렇게 고착된 하위 집단의 결속은 아주 강력하고 오래갑니다.


최근의 시위는 독특하게도 거의 모든 집단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청소년과 성인, 노인 등 연령도 다양하고, 여성의 참여도 많이 늘었습니다. 고소득 전문직부터, 실업자까지 경제적 수준도 다양합니다. 지역적인 차이도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아기들도 유모차를 타고, 자발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결속시키고 있을까요? 진화적인 측면에서, 집단 변경이 불가능해지면 소속 집단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즉 낮아진 집단 이동성으로 인해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검은 것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와 같은 문화운동이 전형적입니다. 피부색을 바꿀 수 없으니, 차라리 검은 피부의 사회적 가치를 옹호하려는 것입니다. 금수저/흙수저 논란처럼, 집단 이동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발적으로 결속하게 됩니다. 아마 그 결속감의 핵심은 “사회적 소외감”일지도 모릅니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장수풍뎅이 연구회 깃발. 최근 한국 사회의 집단 행동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참여자들의 다양성이다. 물론 본 사진의 장수풍뎅이 

연구회 회원들은 사실 장수풍뎅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unknown 제공


이질적인 집단에서 일어나는 정체성의 통합.

사실 이렇게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집단적인 행동을 하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저 들떠 있는 사람들이 놀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화인류학자 마크 판 퓌흐트(Mark van Vugt)에 의하면, 이렇게 이질적인 군중이 집회를 하면서 신속하게 하나의 정체성으로 결속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유동성의 가능성이 줄었을 때, 이러한 형태의 강력한 내집단 결속이 발생합니다.


사회적인 불만을 가지고 뛰쳐나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들 이질적입니다. 심지어 홧김에 혼자 집회에 나갔다가 어디 끼어야 할 지 몰라서 데면데면 서성거리다 그냥 돌아왔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차 반복되는 집단적 경험이,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시켜 줍니다. 심리학자 스테판 스튈머(Stephan Sturmer) 등에 따르면, 공유된 감정과 향상된 효능감, 다른 사람과의 일체감 등을 통해서 “좋은” 구성원이 되겠다는 내적 의무감이 생겨납니다. 자신이 어떤 집단을 대표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적극적인 집단 행동의 참여자는, 집단 효능감이 우수한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변화 가능성을 밝게 보고, 집단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죠. 게다가 다양한 연령, 집단, 계층에 모인 사람들이 여러 번의 집단적 결속을 통해서 강한 내적 규율과 정체성을 공유해 가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계속 해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큰 불상사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대한 집회를 이끄는 수많은 익명의 리더들

월가 점령 시위나 최근의 촛불 시위와 같은, ‘신종’ 집회에 대해서 그 효과를 의심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는 하지만, 지도자도 없고 누가 참석했는지도 모르고 통제되지도 않는 집단 행동은 도무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실 최근 등장한 이러한 형태의 자발적 시위는, 익명성을 가진 불특정 다수가 산발적으로 참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일수도 있습니다.


군중에는 비공식적인 리더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들은 평소에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동료 집단에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조직화하는 능력을 가진 일종의 자원봉사자입니다. 특히 SNS의 발달은, 이러한 비공식적 리더의 영향력을 크게 키워주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적인 대가나 실질적 보상을 구하지 않는, 수많은 익명의 자발적 리더들. 이들이 100만 명 이상이 모이는 거대한 집단을 평화롭게 이끄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집단 안에서 등장하여, 건강하고 자발적인 익명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다시 군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4일 오전 박근혜퇴진 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집회를 마무리하고 

귀가길에 쓰레기를 임시로 마련한 봉투 속에 넣고 있다 - 포커스뉴스 제공


에필로그

지금까지 큰 집회가 6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집회가 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집단적 희망을 가진, 즉 집단 효능이 충만한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시작으로, 이질적 집단의 사람들이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해가고 있습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익명의 리더들이, 건강한 시위와 집회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는 시위의 심리학 마지막 편, 시위는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전문]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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