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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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2016.12.06


지난 주말에도 200만에 가까운 시민들의 항의 행진과 촛불 모임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있었습니다. 지방 여러 도시에서도 비슷한 모임이 열려, 한 달 넘게 주말마다 이 시민항의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90줄인 필자는 4·19  학생 혁명을 비롯하여 1987년 여름의 시민 민주화운동까지 수많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일선기자로서 취재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시민 저항운동과 오늘날의 전국적 국민운동 사이의 커다란 변화를 읽고, 오래 산 보람이 있다고 크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관계(官界)와 정계의 제자리걸음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여러 민주화운동 취재에는 문자 그대로 개인의 안전을 걱정할 정도의 위험한 고비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공안당국이 시위군중을 진압하는 데 최루가스 사용이 빈번했고 최악의 경우 발포까지 있었습니다. 무자비한 강제 연행과 피의자에 대한 혹독한 고문도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419혁명을 비롯한 광주민주화운동 등 시민항쟁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부상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민항쟁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물리적 충돌이 없었습니다. 100만 이상의 군중이 지나간 자리는 시위 전과 거의 비슷하게 깨끗하고, 경찰에 연행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에 세계의 많은 언론매체가 찬사와 놀라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시위가 유혈 충돌과 시위자의 연행으로 끝나는 많은 외국과는 전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권력 행사를 자제한 공안당국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높은 시민의식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중의식은 이미 1917년 전후, 일본 강점에 항의하는 ‘만세운동’을 통해서도 널리 외국에 알려졌지만, 가깝게는 1960년, 4·19 혁명으로 탄생한 허정 과도정부가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6월에 갑자기 일정을 앞당겨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빛을 나타냈습니다.

일본의 반미 학생운동의 폭동화로 일본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한국을 방문하게 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맞아, 김포공항에서 서울에 이르는 연도와 서울시청 광장에 도합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이 모여 두 나라 국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그러나 아무런 사고 없이 환영식을 마쳤습니다.

한국의 4·19사태와 일본의 반미 폭동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미국 경호진의 권고를 무릅쓰고 승용차에서 내려 열광하는 시민과 악수를 나누기도 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자신이 크게 감격하였을 뿐 아니라, 양국 관계자들도 한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높이 칭찬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피어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하한 외신이 지금의 평화로운 시민항쟁을 전하며, 한 매체는 ‘만장일치의 시위’라고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민항쟁의 원인을 제공한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평을 가했습니다.

도덕과 명예를 중시하는 우리 전통의 선비정신이 우리 관계와 정계에서 존재가치를 잃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외국 매체의 박 대통령에 관한 최근 보도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듣기에 창피한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질서정연한 시위를 ‘만장일치 시위’로 표현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최순실을 ‘그림자 대통령(shadow president)'으로 지칭하고, 그녀의 부친 고 최태민 씨를 20세기 초까지 제정(帝政) 러시아 궁정에서 암약한 파계 수도사 ‘그리고리 라스푸틴’에 비유하는 등의 묘사는, 진위(眞僞)를 고사하고 국민으로서 듣기에 부끄러운 보도들입니다.

우리 동양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지만, 영·미인들은 도덕이나 품위에 어긋난 사람을 향하여 'Shame on you(부끄러움을 깨달아라)‘라는 표현을 잘 씁니다. 미국 대통령 지명전에서 거의 모든 미국 매체의 신랄한 비판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자, 필자는 ‘Shame on you, America!'라는 글을 쓸까하다가, 혹시나 해서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미국은 보란 듯이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그 ‘shame on you'라는 욕을 이제 한국인 전체가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젊을 때 한때 혁신계를 지지했던 필자도, 지난번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찍었습니다. 두 사람밖에 없는 주요 정당 후보자명단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이제 한국의 보수주의는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김정은 정권과 맞서야 할 긴급한 시기에 거의 회생불능의 궁지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못 찾고 있습니다. 지리멸렬한 야당 진영도 국민의 여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를 가려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Shame on you'라는 비난을 외국 친구들이 하지 않도록, 전 국민이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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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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