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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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2016.12.02


함께 일하던 후배와 지하철을 탔습니다. 비교적 한산해서 경로석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두어 정거장을 지났는데 20대의 젊은 여성 둘이 우리 앞에 와서 섰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 건네려는 듯했는데 다른 하나는 한사코 말리는 눈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우리가 무슨 실수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한편 궁금하고, 또 한편 걱정되었습니다.

드디어 젊은이 하나가 결심한 듯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저기요. 제가 머리 염색을 시켰는데 이런 색깔이 나왔어요? 너무 흉하지 않나요?”
순간 안도의 숨과 함께 쿡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희에 대한 질책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이의 머리털 색깔은 어느 서양 영화에서 본 여주인공처럼 푸른빛이 도는 노란색이었습니다. 꽤 야성적이고 매력적인 색깔이었습니다.
“전혀! 아가씨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려요.”
“정말이세요? 저는 원하던 색깔도 아니고 너무 이상해서 배상해 달라고 할까 생각했었는데…”
의외라는 듯, 안심했다는 듯 젊은이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연신 차창에 머리를 비쳐 보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한사코 말리던 젊은이의 머리털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금빛 염색 머리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외양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합니다. 머리 염색쯤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금발은 보통이고, 다갈색, 회백색 등 색깔도 다양합니다. 한민족의 본 모습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 민족의 머리색깔이 원래 저렇게 다양한가, 의아해 할 정도입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다소 엉뚱하고 당돌한 질문에 한동안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어른에게 의견을 구하는 젊은이의 용기가 가상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은근히 고마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내린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 아들이나 딸이 머리를 저렇게 노랗고 파랗게 염색해도 괜찮다고,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도 남의 경우와 내 경우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판단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우리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어느 날 귓불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아내가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듯 놀라서 난리를 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성의 귀고리는 그리 흔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저 역시 그런 아들의 모습이 마뜩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내 편을 들어 귀고리는 안 된다고 말렸던 기억이 납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들에 대해 가질 편견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아들을 둔 아비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적잖이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아들의 친구 하나는 머리를 처녀처럼 길게 기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깎아야겠다고 생각할 때 깎을 테니 말리지 말라”고 일찌감치 집에다 선언했답니다. 그의 장발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들도 친구들에게 좀 유별나 보이고 싶고, 뭔가 과시하고 싶었겠지요. 아니면 뭔가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요. 어쨌거나 그 속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극구 반대했으니 아들은 꽤나 서운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제 생각에 조금이라도 엉뚱하다 싶으면 또다시 반대하고 나서겠지요. 그렇게 한사코 반대만 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무슨 일이건 상의하고 싶을 리 없습니다. 귀를 닫은 사람에게 할 말이 있을 리 없으니까요. 바로 소통의 부재입니다. 마음과 뜻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비극은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습니다. 

염색 머리 두 젊은이들과의 조우가 뒤늦게 노소간(老少間) 소통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어른에게 다가와 자신의 용모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런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제 의견을 들려주어야 했습니다. 늦었지만 아들에게도 그 젊은이를 대했듯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좀 더 객관적인 기준으로 응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옳고 아들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질 리 없으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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