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입은 왜 막나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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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입은 왜 막나

2016.11.30


지난주 여러 신문과 방송에 실린 두 사람의 발언에 관한 기사 두 꼭지와 관련 속보가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로 유명한 천호식품 회장 김영식 씨와 의류유통업체인 자라코리아 사장 이봉진 씨의 발언입니다.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뚝심이 있어야 부자 된다’에 촛불 시위를 비난하는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가 호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김씨는 “뉴스 보기가 싫어졌다. 촛불시위 데모 등 옛날이야기 파헤치는 언론들 왜 이런지 모르겠다. 국정이 흔들리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이게 문제라는 거지요.

자라코리아의 이씨도 어느 특강에서 말한 게 불씨가 되어 천호식품 김씨와 싸잡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역시 촛불시위와 관련한 발언입니다. “여러분이 시위할 때 다른 4,900만 명은 무엇인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했다는데, 이씨에 대해서도 비난과 댓글이 넘쳐났습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본의가 아니었다’는 등 사과를 하고 게시물을 내리면서 싹싹 빌었지만 이미 험하고 사나운 댓글로 인격은 만신창이가 됐고, 경영하는 회사도 불매운동 같은 심각한 후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특히, 김씨는 바로 며칠 전 로또 2등 당첨금 4,000여만 원을 출산장려금으로 내놓아 미담의 주인공으로 언론에 소개됐는데 찬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비난과 악담, 저주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런 것-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한 사람을 떼 지어 공격하고, 댓글로 인격을 짓밟고, 나아가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는 것은 옳은 건가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하지 마라.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멋진 말은 어디로 갔나요? 왜 ‘네티즌’들은 자신들처럼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 그들로 하여금 “나는 틀린 말을 했습니다”라고 자백하도록 몰아붙이는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묻겠습니다. 정말로, 요즘 뉴스 보기가 싫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언론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믿습니까? 국정이 이미 흔들려 나라가 위험해진 걸 모른단 말입니까?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4,900만이든 4,800만이든-이 있는 게 사실 아닙니까? 그들은 그 시간에 나름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옮기고, 말했는데 왜 그렇게 모진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몇몇 노인들이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 여기에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노인 폄하, 인격모독적인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 시위를 하는 건 벌레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분들에게 묻습니다. 시위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습니까? 대통령 퇴진 혹은 하야를 주장하는 사람만 시위를 벌일 수 있는 겁니까? 그 노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표출하기 위한 시위를 하면 안 됩니까?

의견이 다양하고 그걸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하고 발전하는 사회라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왠지 이번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획일적으로, 전체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순과 이율배반이라니!!

200만 명 가까이 모인 촛불시위의 비폭력성을 대견해하고 자랑하려면 이런 태도도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인의 ‘성숙한 시민의식’, ‘품격 있는 시위문화’를 인정해달라고 세계만방에 요구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수제자인 베드로가 그리스도 추종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며 ‘소요’를 일으키자 그리스도 탄압에 앞장섰던 바리새인들은 이들마저 처벌하려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지도자 가말리엘은 내버려두라고 지시합니다. “(베드로 등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면 너희가 무너뜨릴 수 없지 않겠느냐?”고 물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기독교적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은 못 무너뜨리지만 틀린 것은 스스로 드러나 언젠가는 허물어지지 않겠습니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그래서 드러난 것 아닌가요? 

한마디 하고 싶을 때는 다른 이들도 한마디 하게 하십시오. 그들의 말을 경청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비웃지는 마십시오.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 입을 막지는 마십시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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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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