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랑을 느낄 때"


  두 명의 남자가 진정한 인격완성을 목표로 가혹한 시험에 도전한다.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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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계율을 준수하고 고통을 참아내며, 최후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왕자 타미노는 이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지만, 새잡이 파파게노는 불평불만이 가득이다. 그들의 모험은 한 편의 판타지 영화와도 같아서 마법의 아이템인 피리와 마술종이 주어지고, 숲 속에선 새와 들짐승들이 인도해준다. 사막에선 선지자들이 지친 두 사람에게 나태함을 꾸짖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는 용기를 전해준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이중적인 드라마이다. 어떤 이는 이 오페라를 밝은 동화로 해석하여 가족용 오페라로 소개한다. 또 다른 이른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 불리는 비밀결사의 입회과정이 내재된 상징주의 오페라로 해석한다. 모험과 도전의 동화 오페라 혹은 음모와 밀교의식으로 가득 찬 ‘모차르트 코드’식의 복잡한 상징 오페라. 어느 쪽이 이 작품의 진실된 모습인지는 그 누구도 단정하기 힘들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오페라가 우리에게 정말 재밌고 깊은 감동을 주는 명작이라는 사실이다.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들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일종의 캐릭터 오페라라 할 수 있는데, 왕자 타미노와 공주 파미나 커플은 단정하고 성실한 인물의 전형이다. 거기에 완전히 반대되는 코믹 캐릭터가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커플이다. 파파게노는 온갖 계율을 모두 어기고, 성실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중도포기를 마음먹는 나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그에게 모차르트는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일까.




자애로운 어머니에서 사악한 마녀로 돌변하는 밤의 여왕은 그로테스크하며, 사이비 교주로 소개되다가 나중에는 참 진리를 이끄는 선각자로 밝혀지는 자라스트로의 모습은 따뜻하고 자애로움이 넘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재기발랄하고, 또한 엄숙하며 동시에 지극히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자주 듣다보면 어느 캐릭터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어떤 때는 타미노의 그 정갈한, 독일 리트처럼 맑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테너 음성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다가 자라스트로의 깊숙하고 자애로운, 독일 베이스 특유의 자연스런 저음에 깊은 위로를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새잡이 파파게노에게는 별로 동화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콘서트에서 완전히 파파게노에게 반하게 되었다. 1998년이었다. 당시 베를린필의 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매년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송년음악회(질베스터콘체르트)를 이끌던 때였다. 그해는 세계적인 성악가 네 명을 초청하여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을 가로지르는 오페라 아리아와 중창의 향연을 선보였다.


모차르트 음악도 나왔다. <마술피리> 1막에서 파파게노와 파미나가 처음 만나 부르는 2중창이다. 프랑크푸르트 태생의 독일 소프라노 크리스틴 쉐퍼가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약간은 보이시한 목소리의 정갈하고 서정적인 파미나를, 상대편 파파게노는 런던 태생으로 캠브리지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엄친아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가 한없이 아름다운 파파게노를 불렀다. 두 사람의 연기와 노래가 너무도 절묘해서, 아직도 <마술피리>하며 콘서트의 이 장면이 생각날 정도다. 


파파게노는 파미나 구출의 임무를 띠고 자라스트로의 왕국으로 잠입한다. 뜻밖에 초장부터 파미나 공주를 만난다. 그럼 당장에 구출을 해야될 텐데, 그는 엉뚱하게 연애비법이나 물어본다. “저...공주님. 제가 아직 여친이 없는데요. 여자친구 만들려면 뭘 어떻게 해야해요?”. 이 한심한 특공대원(?)에게 또한 따뜻한 말로 조언을 해주는 게 파미나 공주다. 그래봐야 공주도 연애경험은 없지만. 둘 다 바보처럼 착하고 순수해서, 그래서 참으로 아름답다.


(<마술피리>, 파파게노와 파미나의 2중창, 크리스틴 쉐퍼와 사이먼 킨리사이드)


사실 가사를 몰라도 좋다. 여느 모차르트 오페라의 음악들처럼 그저 목소리로 노래하는 목관 앙상블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도 괜찮다. 굳이 말하자면, 이 곡은 파파게노와 파미나의 2중창 “남자가 사랑을 느낄 때(Bei Männern, welche Liebe fühlen)"이다. 모차르트가 쓴 가장 아름답고 담백한, 사랑의 찬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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