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 독립(Calexit) 부추기는 미국 대선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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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독립(Calexit) 부추기는 미국 대선

2016.11.24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는데 이번 11월은 4월을 무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의 현직 대통령이 주연인 헌정 위기 드라마 못지않게,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과정과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선거 이틀 전 뉴욕타임스 (NYT)지의 '11월 9일 미국을 상상하며' 사설은 미국이 역사적으로 전쟁, 정치적 위기 등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한 일도 보아왔지만, 이런 역사도 만약 선거 다음 날 트럼프가 당선자로 판명된다면 기다라고 있을지 모르는 재앙에 대비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 할 것이다”라고 시작했습니다. 11월 9일 트럼프가 당선자가 되었고 내년 초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합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적의 저명인사들이 그의 자질 미달을 지적하는 가운데 트럼프는 선거 기간 아랑곳없이 막말을 쏟아내며 미국 사회를 전례 없이 갈라놓았습니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인구, 경제력 등 주세(州勢)가 제일 센 캘리포니아는 기가 막혀 미국과의 결별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제일 많은 선거인단(55명)을 지명하는 캘리포니아에서 클린턴후보 지지율이 약 62%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EU 탈퇴운동 Brexit에 비견되며 Calexit (California Exit의 줄인 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트럼프후보의 대표적으로 선정적인 공약은 밀입국자를 차단하기 위해 (멕시코에게 비용을 물리며!) 멕시코와의 국경에 높은 장벽을 쌓고, 천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자들을 대거 추방하겠다는 것입니다. 인종주의자 (racist)들에게 특히 달콤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불법체류자가 제일 많은 캘리포니아에서는 쥐약입니다. 거기에도 인종주의자 쓰레기들이 없지 않겠지만 이미 인구 구성비에서 백인이 소수자입니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약 3천 9백만 영 인구 중 히스패닉(Hispanic)계 백인 38.3%, 非히스패닉계 백인 38%, 아시아계 14.7%, 아프리카계 6.5%입니다. 생물학적 인종(race) 분류와는 다른 인종집단(ethnicity) 분류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계통의 히스패닉계, 또는 라틴 아메리카계 사람을 일컫는 라티노(Latino)가 다수입니다. 인종주의자들은 히스패닉을 백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총생산액으로 보면 미국 전체에서 캘리포니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15%로 인구 비중 12% 보다 더 높습니다. 할리우드,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고부가가치 산업뿐만 아니라 식량생산액도 제일 큽니다. 우수한 학교와 연구소가 많아 첨단 기술력의 마르지 않는 원천을 보유한 곳입니다. 경제규모로 세계 6위 수준으로 러시아, 인도보다 크며 영국과 비슷한데, 미국 내에서 정치적 성향이 상극인 규모 2위인 텍사스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작은 주들이 패거리 행태를 보이며 이번 선거에서처럼 캘리포니아가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한다면 Calexit의 가능성은 더 커지겠죠. 

그런데 굳이 문제가 많은 분리를 추진하지 않아도 트럼프가 내세웠던 불법체류자 추방, 자유무역 및 환경관련 국제협약 파기, 연방 대법원 여성 낙태권리 판결의 번복을 유도하여 낙태 불법화, 오바마 의료보험 무효화 등의 큰 공약들이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전망입니다. 미국의 주는 국방과 외교 분야 외에서 명실상부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주 정부가 이 사안들에 대해 연방정부와 다른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불법체류자문제는 이미 캘리포니아 주 전체가 ‘도피처’를 자처하며 연방정부의 시도를 무산시키고 있습니다. 연방정부는 많은 인력을 갖춘 전국 경찰조직이 없기 때문에 대규모 구금을 하려면 지자체 경찰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협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의 불법체류자 추방 공약은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려워집니다. 

주 정부가 복잡한 절차와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 다른 공약들도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재정 자립도가 높기 때문에 (주의 세금 기여와 교부받는 예산 비율이 약 1대 0.8) 예상되는 연방정부의 예산상 불이익 조치를 감수할 여력이 있습니다. 환경규제의 분야에서도 미국 어느 지역보다 앞서 있고 브라운 현 주지사는 유명한 환경보호 강경파입니다.   

대선 다음 날 캘리포니아 주 상원과 하원의장 (모두 라티노)이 공동으로 선거 결과를 비판하고 주 의회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민들과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날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총장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보냈습니다. 

“ ... 이번 선거 기간 나라 전체에 걸쳐 편협함을 부채질하는 구호가 난무하여 특히 우리를 걱정스럽게 했습니다. ...학교공동체 모두가 이 기회에 상호존중과 포용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학문의 자유와 망설임 없는 연구, 다양성에 대한 추구를 계속합시다.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하며, 또 혹시 앞날 일을 두려워하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과 하나임을 천명해야 합니다“.

이 사진은 지난주 지인이 찍은 한 버클리 캠퍼스 사무실에 창에 걸린 ‘불법체류자 학생 피난처’ 표지판입니다. 

저는 개방과 포용의 태도가 승승장구하는 캘리포니아의 저력이라 생각합니다. 로마가 역사에 남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확장기에 분쟁 상대들을 포용했던 전략이 주효했다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있습니다. 지금의 캘리포니아가 지금까지 미국 전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듯합니다. 

중장기적으로 경제 분야도 전망이 불안합니다. 1994년 이후 북미국가 경제협력의 틀이 되어온 캐나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NAFTA)을 뒤집겠다 하고, 오바마 정부가 여러 해 동안 공을 들여 마련한 환태평양경제파트너십(TPP) 협정을 취임 즉시 탈퇴하겠다고 합니다. 발작적 보호무역주의가 좋게 끝난 사례가 없습니다. 또 미국의 고립주의로 만들어지는 공백은 중국이 채워갈 것입니다. 다 제쳐놓고 백인 다수를 보존하는 것만이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캘리포니아를 응원하며 앞으로 4년이 빨리 가길 빌고 있습니다.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총장의 메시지 전문) 
http://news.berkeley.edu/2016/11/09/chancellor-election-message-to-campus/ 
(New York Times 11월 7일 사설 'Imagining America on Nov. 9' 전문) 
http://www.nytimes.com/2016/11/06/opinion/sunday/imagining-america-on-nov-9.html?_r=0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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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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