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립스틱을 바른 조선 선비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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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립스틱을 바른 조선 선비

2016.11.11

조선 시대 초상화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많은 문화 콘텐츠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쳇말로 스토리텔링감이 무궁무진하다고 할까요. 그것도 그러할 것이조선 시대 여러 문화 장르 가운데 하나인 초상화처럼 500년 넘게 변함없이 지속성을 견지해온 예가 동양은물론 세계 미술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는 조선 시대를 초상화의시대라고 합니다.

필자는 조선 초상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초상에 나타난 다양한 피부 병변에 대해 밝혀낸 바 있습니다. 안면에 다양한 점(母斑, 혹)이 있는 선비는 허다하고, 실명(失明)한 선비, 오늘날 의료 기술로도 치료하기 녹록지 않은 루푸스(Lupus)병으로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선비, 다모증(多毛症, Hypertrichosis) 때문에 얼굴이 온통 털(毛)로 뒤덮인 선비, 백반증(白斑症, Vitiligo)으로 고생하는 선비, 주량(酒量)과는 무관한주사비(딸기코)로 고생한 선비 등 증례가 즐비합니다.

그런 가운데 병적 증상은 아니지만 빨간 립스틱을 바른 듯 입술이 빨간 조선 선비의 초상화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초상화의 피사인, 주인공은 족자에서 방바닥에 앉은 자세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조선 시대 여느 초상화와 다르다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사진 1,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다시말해 우리 초상화가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다른 부분이기도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에이야스(德川家康)의 초상이 그러하듯이 피사인이 반석에 앉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본 초상화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이 보였습니다. 한가지는 조선 선비의 얼굴색을 단색인 흰색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일본 초상화가 그렇듯 얼굴을 흰색으로처리하다 보니 흔히 보는 우리 초상화보다 훨씬 평면적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조선 초상화를 대표하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자화상(사진 자료 2, 해남 녹우당 소장)과 비교해 보면 안면을 연한 노란색으로 처리함으로써색조의 강약을 통해 좀 더 입체적 느낌을 더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두 초상화의 입술 색이 완연히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결정적인 것은 선비의 입술이 생각보다 빨간 것입니다. 마치 립스틱을 바른 듯.

그래서 초상화의 주인공에 관심을 갖고 좀 더 깊이 살펴보았더니 안면을 흰색으로 처리하고 입술을 붉게 한 주인공은조태억([趙泰億, 1675~1728)이었습니다. 자는 대년(大年), 호는겸재(謙齋)와 태록당(胎祿堂)을 썼으며, 병조판서(兵曹判書)와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저서로는 《겸재집(謙齋集)》을 펴낸 학식 높은문신이었으며, 사후에는 문충(文忠)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실로 걸출한 조선 후기 인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숙종(肅宗) 37년(1711), 조태억은 조선통신사절단 단장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그때그의 모습을 일본 화가 가노 쓰네노부(狩野常信)가 그린 것임을알았습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니 초상화의 입술이 빨간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왜 일본 초상화는 우리 것과 달리 얼굴은 하얗게, 입술은 붉게그렸는지 의문이 듭니다. 동양 삼국의 초상화 연구로 저명한 조선미 교수는 일본 초상화는 “귀족은 서민과 달리 고매한 존재여서 품격 있는 얼굴 표정, ‘실눈과매부리코(히기메가 기하나, 引目鉤鼻)’라는 얼굴 표현법, 즉 아랫볼이 불룩한 둥근 얼굴에 두꺼운 눈썹, 가늘게 일선으로 그려진 눈, ‘く’자 모양 코, 그리고 조그마한 주점(朱點)을 찍은 입으로 이루어진 얼굴 묘사법”에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 얼굴처럼 천태만상인 것이 없는데, 화가가 지침에 따라 초상화를그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을 알고 나면 빨간 립스틱을 바른 듯한 조태억 선비의 초상화를 이해하게됩니다.

반면 우리 초상화가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그대로’ 정신을 초상화에 철저히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뒷받침이라도 하듯 숙종 14년(1688) 《승정원일기》에 “한 가닥의 털(一毛), 한올의 머리카락(一髮)이라도 달리 그리면 아니 된다”라고 명쾌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문화가 있을 뿐, 좋거나 나쁜 문화는 없다(There are just different cultures. They are neither good nor bad ones)”라는명문구를 생각하면서 일본이나 중국의 초상화가 지닌 미술사적 우열의 의미를 떠나, 우리 초상화는 그들의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을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 초상화에 담긴 조용하고도 깊은 선비 정신을 되새기게 됩니다. 왜냐하면우아하지 않은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도있는 그대로 그리게 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조금도 미화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그린 조선 초상화는 자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게스트칼럼 / 박대문

어이할까? 체포령 내린 외래식물을

포도청에서 범죄인을 색출, 포획하고자 공개 수배하는 방(榜)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아 이름도, 성도 모르고 얼굴도 아는 이가 없습니다. 범죄인을 모르니 신고할 수도 없고 숙식을 제공하거나 도망과 은닉을 아무런 생각 없이 도와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범죄인을 체포하겠다는 방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인은 누가 어떻게 잡을까요?
  
이와 같은 일이 초고속 인터넷 일등 국가이며 버스, 지하철, 커피 방, 식당에서까지 Wi-Fi 가 펑펑 터지고 SNS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일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정부에서는 생태계 등에 미치는 위해가 큰 외래생물을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생태계 교란생물로 지정ㆍ고시 했습니다. 이들 생물은 누구든지 자연환경에 풀어 놓거나 식재(植栽)해서는 안 되며, 이를 수입 또는 반입하고자 할 때는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 땅에서 제거, 퇴치하고 번식을 억제하여야 하는 종으로서 국민 참여와 협조가 절대로 필요한 외래생물입니다.
 
현재 지정 고시된 생태계 교란생물은 20종입니다. 그 낱낱을 보면 황소개구리, 꽃매미 등 식물 아닌 것이 6종이며 식물은 다음의 14종입니다. 즉,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가시박,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가시상추, 갯줄풀, 영국갯끈풀입니다. 이들은 말하자면 정부에서 체포령이 내린, 지명 수배된 식물입니다.
 
이들 14종 생태계 교란식물은 번식력이 뛰어나고 생명력도 매우 강해서 주변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을 만큼 급속하게 번져 나가 고유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등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는 종(種)입니다. 신토불이 정신에 따라 우리의 토종 식물을 보호하고 고유 자생식물의 서식지보존과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서는 제거해야만 하는 식물입니다. 주변의 다른 식물이 살 수 없도록 휘어 감거나 뒤덮어 햇볕을 차단함으로써 죽게 하거나 급속한 번식력으로 서식지를 독점해가고 있어 생태계의 균형질서를 교란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생태계 교란식물로 14종을 지정, 고시하였지만, 국민은 알지도 못하고 식별도 못 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반인은 그렇다 치고 환경보전운동에 열정을 다하고 전국 방방곡곡의 대규모 사업장을 찾아가 환경보전을 외치는 열성 환경운동가와 시민 환경단체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재의 실상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들 교란식물은 맨 처음 발견된 곳에서 주변으로 번져나가 전국적으로 퍼져 이제는 우리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어가고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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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서울 주변에서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생태계 교란식물로서 서양등골나물과 가시박의 실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북미가 원산인 서양등골나물은 서울 시내 공원과 야산 등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어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식물은 햇볕이 잘 들지 않은 나무 그늘 밑에서도 목화송이처럼 잎줄기 마디마다 하얀 꽃송이가 무더기로 피어나 마치 눈이 내린 듯 가을 숲속을 하얗게 뒤덮습니다. 꽃이 고와 일부러 주변에 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1978년에 서울 남산과 워커힐에서 발견된 이후, 서울의 북한산, 청계산, 아차산, 남한산성 등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빠른 속도로 번져가면서 토종 고유식물의 서식지를 점령해 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생태계 교란식물로서 북미가 원산인 가시박입니다. 1990년 전후에 강원도 철원과 경기 수원에서 발견된 이후 최근 들어 강변을 따라 우리나라 곳곳에 급속히 퍼져 번식하고 있습니다. 가시박은 덩굴손으로 사방에 가지를 뻗고 밀생해 주변 풀과 나무를 뒤덮어 햇볕을 차단하고 생장을 방해하며 큰 나무도 칭칭 감아 올라가서 결국 고사시키고 맙니다. 서울에는 한강 변 일대뿐만 아니라 워커힐 언덕, 하늘공원 경사면 등에 널리 퍼져 있고 전국적으로는 북한강, 남한강, 한탄강, 금강, 낙동강 등의 강변과 하천 변에 기하급수적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지방환경청을 비롯하여 몇몇 지방자치단체와 일부 환경단체가 ‘국민 참여 생태계 교란식물 퇴치행사’를 개최하는 등 생태계 위해 및 교란식물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언론매체의 보도를 보았습니다.
 
사실 1960년대 경제개발에 따른 환경 피해를 인식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한 범국민 환경보전활동의 시초는 자연보호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7년 10월 구미 금오산에서 시작한 비닐봉지, 깨진 병 등 쓰레기 줍기 운동이 새마을운동과 함께 자연보호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각 공공기관과 단체, 심지어 일부 기업들까지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매주 수요일 오후면 인근 산이나 하천의 쓰레기 줍기 활동으로 오후 근무를 대신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환경 보호 운동은 환경 시민운동으로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이 언제부터인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사업과 기업의 사업 활동을 주 대상으로 변질하였습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보전활동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보전활동은 전국적, 조직적으로 하면서도 시름시름 앓고 쇠잔해가는 생태계 훼손과 교란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낮고 활동대상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솔잎혹파리와 재선충이 극성을 부려도 별로 무관심이었습니다. 송충이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의 송충이 잡기 운동 등 범국민적 환경보호 활동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시민 환경단체, 지역 단위에서 전국 단위의 환경보전단체가 있습니다. 대부분 활동은 환경생태를 이해하고 보전하기 위한, 자연과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실천 활동이 아닙니다. 정부나 기업의 사업 활동을 대상으로 "하세요', '마세요.' 하는 환경보전운동입니다. 이것은 내가 아닌 제삼자, 즉 다른 사람에게 환경보전을 하라는 타인에 대한 실천 요구와 구호일 뿐입니다.  최소한 자신이 포함된 '합시다','맙시다'와 같은 구호와 이에 따른 실천이 아쉽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작한 생태계 교란 식물 퇴치활동이 시민 환경단체의 주요 활동으로, 나아가 범국민적 환경보전 활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자연환경의 가장 기본이고 원천은 식물생태계 보전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만 생물 다양성과 건전하고 지속적인 자연환경이 유지될 수 있고 그 속에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하며 우리의 쾌적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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