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장의 진풍경들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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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장의 진풍경들

2016.11.10


아침 산책을 마치고 나면 대중탕이나 사우나장에 가서 샤워를 하는 것이 일상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아침 대중탕의 탈의실에서 옷을 벗어 걸던 중, 옆쪽에서 점잖은 모습에 나이가 지긋한 사람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옷장에서 색깔이 화사한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모자를 쓰고 나서 다시 한참 동안 모양새를 냅니다. 

진풍경은 다음에 벌어진 그 사람의 행동에서 나타났습니다. 옷장 아래쪽의 신발 칸에서 색깔이 화려한 가죽구두를 꺼내 옷이나 수건을 놓는 평상에 올려놓더니 목욕 수건으로 문질러 윤기를 냅니다. 더 가관인 것은 닦은 구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난 다음, 지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는지 구두에 침을 뱉어 바르고는 수건으로 다시 문지릅니다. 구두 두 쪽을 다 그렇게 한 다음 수건을 평상에 그대로 팽개쳐 두고 구두를 들고 나갑니다. 대중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지한 행동이었습니다.  

산책 후 자주 이용하는 ‘24시 사우나’에서도 진풍경들이 목격됩니다. 주말 아침 걷기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장에 들어가 옷장 문을 여는데, 찜질방에서 지낸 것으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찜질복을 벗어 바닥에 팽개친 다음 옷을 갈아입더니 훌쩍 나가버립니다. 물론 몸을 닦은 수건 몇 장도 그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채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찜질복과 수건을 팽개치고 나간 옷장 옆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옷을 벗어 옷장에 걸고 난 다음, 그들이 벗어 던진 찜질복과 수건들을 수거함에 집어넣고 욕실로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진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샤워기 선반 위에 일회용 샴푸 봉지들과 사용하고 난 비누질용 수건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선반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분리해 수거함과 쓰레기통에 넣고 있는데, 옆에서 샤워하던 사람이 바닥에 던져진 수건 몇 개를 주워 분리함에 넣는 것이 목격되어 기분이 다소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청소는 당연히 종업원의 몫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서 자기가 사용한 물건들을 제대로 분리해 수거함에 넣어준다면 종업원들의 일하는 시간이 절약되고, 그 시간이 고객들을 위한 다른 서비스에 이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샤워를 하며 옆쪽에 놓인 쓰레기통에서 본 진풍경도 소개합니다. 쓰레기통의 안을 살펴보니 칫솔 5개와 면도기 3개 그리고 일회용 샴푸 봉지 5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칫솔 중 두 개는 분명히 일회용이 아닌 새것으로 보였습니다. 일회용이라고 해서 꼭 한 번 사용하고 버려야 하는 걸까요. 나는 목욕탕에서 일회용 칫솔이나 샴푸를 사서 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일회용 면도기를 사서 쓰는 경우에는 사용한 다음 주머니에 넣고 나와 다시 사용하는데, 수염이 적어서 그런지 보통 3회 많으면 5회를 사용해도 면도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우나장에서 아직도 수건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수건을 사용하며 보니 한쪽에 ‘엄마! ㅇㄷ사우나 수건인데요’ 그리고 반대쪽에는 ‘~제발~제발~ 가져가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찍혀 있습니다. 예전에 비행기에서 담요나 수건 심지어는 수저나 포크 등을 몰래 싸가지고 내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진풍경은 벽에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게시되어 있는 깊이 1m 정도 되는 냉욕 수조에서도 목격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그 수조를 수영장으로 생각하고, 큰소리로 떠들며 심한 물장난과 다이빙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호자들 중 시끄럽게 떠들며 수영하는 아이들을 자제시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우리 사회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사우나장의 진풍경들만 아니라 난폭 운전과 무질서한 주차, 사회 폭력, 학교 폭력 등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만연된 상식 밖의 진풍경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우리 사회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역대미문의 진풍경들이 이른 시일 안에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밤잠이 설쳐지기도 합니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오늘 지켜야 할 약속’ 그리고 ‘사소한 규범’과 ‘평범한 규칙’을 잘 지켜나가는 상식 문화 정착에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요. 그 바탕에는 당연히 서로 믿고 배려하는 ‘신뢰’가 자리해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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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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