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 '부산신항', 우리나라 항만 맞나?


터미널 운영사 대부분 외국계 자본 장악

운영사 5곳 중 4곳 대주주

싱가포르 PSA, 아랍에미리트 DP월드 등

각종 하역 장비 중국산 일색

부산 북항은 적자, 신항은 륵자

수익 대부분 해외 유출


   2006년 1월에 개장한 부산신항은 우리나라 수출입화물의 관문이자 동북아시아 환적 거점항이다.

 

부산 신항 전경  출처 한국항만물류협회


부산 신항 전경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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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와 시설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과연 우리나라 항만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기반시설을 짓고 항로를 만들었지만 정작 그곳에서 장사하는 터미널 운영사는 대부분 외국계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선박에 실린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안벽크레인, 부두 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트랜스퍼크레인 등 각종 장비는 중국산 일색이다.

대당 가격이 최고 100억원에 이르는 이런 장비들을 들여오느라 엄청난 돈이 빠져나간다.


부산신항 5개 터미널 운영사 가운데 4곳의 대주주는 싱가포르 PSA, 아랍에미리트의 DP월드 등 외국계 회사이다.

외국계 대주주의 지분비율은 적게는 29%대, 많게는 50%를 넘는다.


한진터미널 한곳만 국내 기업인 ㈜한진이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한다.


외국계 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4개 터미널이 지난해 처리한 컨테이너는 20피트 기준 1천30만천개로 부산신항 전체 물동량(1천946만개)의 53%, 신항 전체(1천285만개)의 80%에 해당한다.


부산 북항의 터미널 운영사들이 적자를 내는 것과 달리 신항 운영사들은 대부분 연간 수백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구조이다.


외국계 기업의 터미널 운영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다국적 터미널 운영업체인 PSA와 DP월드는 자체 네트워크를 활용해 많은 물동량을 유치하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자기 터미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 항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저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로 벌어진 물류대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진 선박에 실린 화물을 부산항에 내려 다른 선박에 실어 목적지로 보내는 것이 시급했지만 일부 민자 부두 운영사가 한진 선박과 컨테이너의 수용을 거부해 항만공사가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부두 운영권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것은 정부가 국가기반시설인 부두를 민자를 유치해 지은 데다 항만공사의 부두 운영 참여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신항에서 가장 규모가 큰 2부두(5개 선석·운영사 PNC), 5부두(3개 선석·운영사 BNCT)는 민간자본이 건설했다.

부산항의 운영을 책임진 항만공사는 5부두 운영사 한곳에 9%의 지분을 갖고 있을 뿐이다.


항만공사는 현대상선이 신항 터미널 지분(50%+1주)을 매각할 때 처음에는 전체, 나중에는 그 중 10% 인수를 추진했으나 정부 관련 부처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다.


행정권한이 없는 항만공사는 터미널 운영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 항만 전체 운영 효율을 높이는 통합조정 기능을 하지 못하고 '부두를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임대업자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부산신항 터미널의 하역장비들은 대부분 중국 제품이다.

운영사들이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국내 기업 제품을 외면하고 중국 제품을 도입한 때문이다.


신항 5개 터미널에 설치된 컨테이너 크레인 67대는 모두 중국업체가 만든 것이고, 트랜스퍼 크레인 218대도 대다수 중국 제품이다.


부산신항 1-1단계 개장을 앞둔 2005년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운영사들이 도입한 안벽 크레인의 가격은 최고 1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랜스퍼 크레인 등 다른 하역장비들까지 포함하면 1조원대의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신항 개장 당시만 해도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국내 업체들이 안벽 크레인, 트랜스퍼 크레인 등 장비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었으나 부산신항을 시작으로 싼 가격을 앞세운 중국제품이 광양항 등 국내 다른 항만까지 장악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업체들은 생산을 포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항만업계에서는 "누구를 위해 지은 항만이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균 전 국토해양부 차관은 31일 "항만공사가 애초 설립취지대로 부두를 직접 운영하며 한진해운 사태 같은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지만 각종 규제에 묶여 임대업자 노릇에만 머무는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전 차관은 "현대상선 터미널의 경우 흑자를 내는 상태였고, 신항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공영 터미널이 필요하므로 항만공사가 인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음에도 정부가 이를 막아 외국계로 운영권이 넘어갔다"며 "항만공사가 터미널을 직접 운영하면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해 국산 크레인을 도입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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